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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23. 2019

어설프지만 마냥 신났던 첫 번째 홍콩 방문기

운이 따라주지 않은 첫째 날

작년 연말부터 뜬금없이 홍콩영화에 빠져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홍콩 앓이가 시작되었다. 푹 빠진 영화들이 198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영화였기에 지금의 홍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모니터 뒤로 비친 홍콩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시간이 지났다고 사라질 부분은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기에, 여행을 가자 마음을 먹고 바로 3월 말 홍콩 가는 비행기표와 호텔을 예약했다. 그 뒤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신나는 기분으로 홍콩에 도착했는데 안타깝게도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첫 여행의 설렘은 여전했다. 홍콩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처음 온 여행지의 신선함은 그대로이지만 긴장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초행이라 생각보다 길을 오랫동안 헤맸다. 센트럴에 위치한 크리스탈 제이드(chrysyal Jade) 음식점을 찾느라 IFC mall을 몇 바퀴 빙빙 돌고 층수도 잘못 찾아가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는 만큼 맛은 있었다.


점심과 저녁의 애매모호한 시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대기를 좀 해야 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 모니터에 해당하는 번호가 뜬다. 2인석에 혼자 앉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온 할아버지와 합석을 했다. 합석 문화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미리 알아는 두었지만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다.


식당이 넓기도 했지만, 분업이 정말 칼 같아서 신기했다. 주문받는 사람, 음식 갖다 주는 사람, 계산해주는 사람 각자 자기의 영역이 아니면 일체 상관을 하지 않는다.


탄탄면과 샤오롱바오를 시켰는데, 탄탄면은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대로 진한 땅콩 향이 나면서도 매콤한 게 입맛에 잘 맞았다. 샤오롱바오는 외관은 평범한데 속에 든 육즙이 감탄 나올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이렇게 배를 채우고 어디로 갈까 하다가 스타페리를 타고 구룡반도로 넘어가기로 했다. 10여분이면 도착하는 작은 페리였는데, 정겨운 느낌이 풀풀 드는 아담한 페리였다.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던 홍콩 시내 경치. 빌딩 숲으로 가득 차 있다.

구룡반도에 도착해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의도치 않게 스타의 거리를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파워 워킹한 셈이 되었다. 바람도 불고 비도 추적추적 내렸지만 그런 건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페리 선착장.
스타의 거리-양조위의 핸드프린팅.
유덕화의 핸드프린팅. 생각보다 손 크기가 아담했다.
스타의 거리를 지키고 있는 이소룡 동상.

한 30여분을 걸었을까, 캐리어 대신 배낭에 꽉꽉 욱여넣은 채로 걸어 다니다 보니 체력에 한계가 와서 일단 호텔에 짐을 버리고 다시 밖으로 나오기로 했다.

호텔은 호텔스닷컴에서 열심히 검색한 결과  코즈웨이베이 부근에 있는 '에코트리 호텔 코즈웨이베이'를 골랐다. 호텔은 약간 주택가 같은 분위기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1층에 방이 4개밖에 없는데 위로는 거의 40층 가까이 올라가는 길고 얇은 형태의 구조 참 특이했다. 땅덩어리는 좁고 빌딩은 무수한 홍콩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구나 싶기도 했다.


후기에 하수구 냄새가 있었는데, 허용 가능한 수준이었고, 방은 일본 호텔을 연상하게 하는 작은 사이즈였지만 깔끔했다.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센트럴 역으로 향했다. 버스 15번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를 가기 위함이었는데, 빅토리아 피크는 트램과 버스로 갈 수 있다. 트램은 대기만 기본으로 1~2시간 한다고 해서 빅토리아 산도 구경할 겸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는 정말 빅토리아 산을 뱅뱅 돌면서 올라가는데, 경치가 생각보다도 좋았다. 보통 산을 깎거나 밀고 건물을 세운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산 위에 건물을 올려놓은 듯한 형태여서 묘하게 산과 고층 빌딩들이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2층 버스의 2층에 맨 자리를 잡았는데 반쯤 꺾인 커다란 나뭇가지가 버스 앞유리를 강타해서 깜짝 놀랐다. 버스 기사님은 익숙한지 그냥 밀고 열심히 올라가기 바쁘셨다. 빅토리아 산의 우거진 녹음은 진짜 풍성해서 원시림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1시간 남짓 걸려 빅토리아 피크에 도착했는데, 불행히도 맞이하고 있던 건 자욱한 안개였다. 전망대인 스카이 테라스 428에 올라가려 하니 안개가 심한데 정말 가겠냐며 직원이 재차 물었지만, 2박 3일 안에 또 오기는 촉박해서 선택지가 없었다.

이렇게 자욱한 안개는 살면서 처음 봤다. 불빛을 제외하면 한치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다들 인증샷을 찍는데, 홀로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할 용기그 나지 않아 사람 없는 사진만 찍고 말았다.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피크룩아웃 레스토랑은 개인이 통째로 빌리는 바람에 문을 열지 않았고, 시내로 내려가는 길에는 길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 30분을 길거리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그래도 못 본 야경은 버스 타고 내려가는 길에 조금이나 맛본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빅토리아 피크부터 시작된 불운은 그대로 이어졌다. 영화 천장지구에 나온 가스등은 하나는 작년 태풍 영향으로 아예 실종됐고, 나머지 가스등도 공사가 한창이라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숙소 가는 길에 완탕면이라도 먹고 가려했건만 영업시간보다 일찍 문을 닫아서 헛걸음을 한 셈이 되어 버렸다.


잔뜩 허기가 진 상태라 하는 수 없이 옆에 있 밀크티 집에서 블랙밀크티를 먹었는데 별로 안 달면서도 진한 게 맛이 좋았다.

오밤중인데도 불야성이어서 안전한 기분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서울보다도 더 왁자지껄한 홍콩의 밤 거리가 어쩐지 정겹다.

예전에는 밤 10시까지 돌아다녀도 멀쩡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체력이 급감한 건지 9시가 다 되어가자 급 피곤함이 몰려와 호텔 근처에서 쇠고기 힘줄 쌀국수를 먹고는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제 여행을 하려면 일단 체력부터 좀 키우고 봐야지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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