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欲望), 무언가를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깃들어 있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없다고 한다면 아직 자신의 욕망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서로 다른 욕망을 꿈꾸다
영화 "무간도 II(無間道 II, Infernal Affairs II)"는 느와르라는 장르 아래 등장인물들의 욕망이 얽히고설켜 혼돈의 시대를 빚어낸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고 뒤얽혀 예상하지 못한 비극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는 아비지옥, 즉 무간지옥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업보를 치르는 세계이다 ... 無時間(시간의 제약 없이) ... 時間(시간)
영화는 무간지옥에 대한 설명이 조용히 흐른 뒤, 경찰서에서 식사를 하는 한침(증지위)에게 황지성(황추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장 먼저 욕망이 드러나는 인물은 황지성이다. 선배가 처참한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잡아넣었던 예가 조직의 부하들은 희생을 치른 보람도 없이 몇 년 뒤 다시 사회에 나와 떵떵거리며 길거리를 활보한다. 세상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며 그 불합리함에 분개하는 황지성의 눈빛 속에는 위험해 보일 정도의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자신의 선택한 업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가 오직 바라는 건 범죄자-그중에서도 예가의 소탕이었다.
예가의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골몰하는 황지성의 눈빛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이 같은 조직원인 한침이라는 사실이 의외로 다가오는 건, 황지성과 한침 둘 사이의 분위기가 "무간도 I"에서와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라. 아직 황지성이 국장이 되기도 한참 전, 한침은 "아직 때가 묻지 않은" 건달에 불과했다. "식사를 마주 보고할 수 있는" 사이인 한침을 예가에서 발을 빼게 하고자 황지성은 은근히 회유하지만, 한침의 두목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했다. 반면, 그의 부하였던 유건명(진관휘)는 그러지 못했다.
유건명의 욕망은 단순했다. 그러나 단순한 만큼 얻기 어려운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보스인 한침의 여자인 메리(유가령)의 마음을 얻는 일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보스의 보스, 즉 예곤도 서슴지 않고 처리하며 자신의 애정을 섬뜩한 방식으로 증명한다.
그런 유건명을 메리는 제 욕망을 이루고자 교묘히 이용한다. 경찰에 잠입하라는 한침의 지시가 싫다면 얘기하라며 유건명을 신경 쓰는 듯하다가, 유건명이 기대를 품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올라 치면 돌연 차갑게 돌변한다.
그도 그럴 것이 메리에게는 한침이 세상 전부였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메리였지만, 그녀와 달리 한침은 딱히 야망도, 권력욕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한침이 안타깝기만 했던 메리와 예가를 일망타진하려는 황지성의 욕망이 맞아떨어져 일을 벌이고 만 것이었다.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한침과 메리. 한침이 바라지도 않던 일을 메리가 벌이지 않았다면 둘은 서로를 사랑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졌을까.
그 결과 아버지를 잃고 조직마저 분열될 위기에 처한 예영효(오진우)는 두 가지의 욕망을 품게 된다. 하나는 아버지의 복수요, 다른 하나는 혼란스러운 조직을 잠재우고 더 나아가 "양지"로 나가고자 했다. 무섭도록 차분하고 냉정한 예영효는 치밀하게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착실히 실행하기 시작한다.
"인생은 돌고 돈다." 아버지 예곤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말을 곱씹으며 예영효는 비장함에 가득 차 있었다.
예가의 핏줄임을 속이고 경찰 학교에 입학한 진영인(여문락)은 조용히 두각을 드러내며 촉망을 받는 인재였다. 허나 아버지 예곤의 부고를 전하러 온 예영효로 인해 자신의 출신을 들키고 만다. 퇴교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잔뜩 굳은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이 그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출중한 그의 능력이 아까웠던 황지성은 진영인에게 배가 다르지만 형제인 예영효를 잡을 수 있냐는 질문을 무심히 던진다. 무거운 핏줄의 굴레를 벗어나 "좋은 사람"으로서 경찰이 되길 바랐던 진영인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개인적으로는 더없이 소박한 꿈을 품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식은 잔인했고 모질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냉정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은 진영인의 기질은, 예영효의 그것과 닮아 보였다. 이래서 핏줄이 무섭다고 하는 걸까.
사람의 마음을 능히 얻는 재능이 있었는지 아니면 형제애가 마음을 녹인 건지, 진영인이 예가의 조직에 들어온 지 4년이 되어가던 해에 예영효는 그를 불러 가족 일을 함께 하자며 권유하고 딸의 생일에도 초대한다. 그렇게 진영인은 조직에 녹아들어 가며 그의 배다른 형을 체포하기 위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나간다.
욕망의 업보를 치르다
이렇듯 저마다 자신의 욕망을 충실히 추구하던 이들은 조금씩 쌓인 업보에 대한 대가를 하나둘씩 치르게 된다.
가장 먼저, 그리고 처참하게 업보를 치른 이는 황지성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가를 무너뜨리려던 그는 예영효의 교묘한 계략으로 살인교사를 사주한 것이 드러나 정직 처분을 받는다. 그에 그치지 않고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절망을 안겨주는 예영효의 잔인함을 황지성은 탓할 자격이 없었다.
황지성보다 몇 수나 앞질러간 예영효의 계략에 황지성은 공개적으로 물을 먹고 만다.
한편, 살인교사의 공모가 완전히 들통이 나 메리가 걱정된 유건명은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 그녀를 돌보는 일에만 몰두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그동안 잘 참아온 마음을 메리에게 드러내버리고, 그 결과 메리는 그와의 연을 끊겠다며 차갑게 돌아서며 유건명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한침의 행방마저 숨기고 자신과 함께 숨어 있으면 안전하다며, 유건명은 기를 쓰고 메리의 관심을 자기에게 돌리려 하지만 메리의 시야에 유건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순간의 충동으로 업보를 치르게 된 유건명은 제대로 비뚤어져 버리고 만다. 내가 가지지 못할 바에는 누구도 갖지 못한다. 그토록 사랑하던 메리의 행선지를 예가에 흘린 유건명의 고발에 메리 또한 자신의 업보를 치르게 된다. 태국에서 돌아오지 않는 한침을 찾아 떠나려던 그녀는 영원히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그로부터 2년 뒤-.
황지성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청문회에서 자신은 죄가 있고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고장 난 기계처럼 반복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상관의 노력이 빛을 발해 마음을 고쳐먹은 황지성은 예영효를 잡을 증언을 부탁하러 한침이 있는 태국을 다녀오고, 그동안 버려두었던 진영인에게도 연락을 취한다.
황지성의 잠수로 고립되어 당장 눈앞의 일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은 진영인이었으나, 그는 굳건히 버티며 예영효를 잡아넣기 위한 증거를 착실히 모으고 있었다. 황지성과 연락이 다시 닿아 증거를 건넨 진영인은 일이 마무리되어 하루라도 빨리 경찰로 복귀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자신이 복귀하면 황지성에게 눈앞에 보이지 말라며 농담을 건네던 진영인은 굳건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예영효는 진영인이 뒤통수를 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이루지 못할 이상을 좇고 있었다. 조직의 위계질서를 바로잡은 그는 "양지"로 나갈 마지막 단계로 노동자 체육대회에 참석한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한 경찰이 들이닥쳐 그동안의 노력이 허무히 아스러져 버린다. 한침이 배후에 있음을 바로 간파한 예영효는 보험으로 들어 둔 한침의 가족을 태국에서 데려와 한침과 협상을 하고자 했으나, 이마저도 한침의 계략이었다.
그 결과 하와이로 피신시킨 가족마저도 몰살 당하고, 죽기 직전 동생 진영인이 경찰의 첩자임을 알게 된 예영효가 가장 큰 업보를 치른 걸까. 아니면 끔찍한 상황을 맞이한 채 살아가야 할 진영인이었을까.
인생의 걸림돌이었다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형제인 예영효를 상사인 황지성이 사살하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체포를 바랐을 뿐이지 죽음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쓰러진 예영효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진영인의 감정은 진실되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예영효를 체포하면 경찰로 복귀하려던 꿈 또한 무산이 되어 버린다. 더 나아가 혈육을 모두 잃게 만든 한침의 밑에서 또다시 첩자 생활을 해야 하게 되었으니, 말 그대로 무간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을 처지에 놓이게 된 듯했다.
욕망이 없던 이가 욕망을 갖게 된 경우:
고통을 알게 되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더라면 한침은 자신이 존경하는 예곤에게 충성하며 평온한 삶을 연명할 기회가 있었다. 조직원이라는 신분에 따르는 위험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는 그에게 고통이 되지 못했다. 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 메리를 잃기 전까지는 욕망 한 자락 내비치지 않았던 이가 바로 한침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어긋난 바람으로 인생이 완전히 뒤틀려 버렸으니 어떻게 보면 가장 불행한 처지의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손쉽게 메리의 복수를 실현하고, 황지성과의 사이가 틀어진다는 가장 약한 업보만을 치른다. 당장의 업보는 가벼워 보이나, "때"가 묻어버린 한침은 서서히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변질되어 간다.
언뜻 보면 삶을 영위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죽음"이 제일 중한 벌로 여겨질 수 있으나, 죗값을 치른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할 인생이 가장 무거운 업보가 아닐까. 이를 보여주 듯, 영화는 남은 이들의 미래를 예견하는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무리된다.
무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시무간(時無間), 공무간(空無間), 인무간(人無間). 누구라도 세상의 법도를 어기면, 이 무간에 떨어져 다시는 벗어 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