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초심 수필] 행복

by 오초심 수필집

행복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주된 이유는 좌우의 주변을 둘러보거나 아래를 보지 않고 위만 보고 살기 때문이다.


죽음을 하루 앞둔 말기암 환자는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게 보인다. 이 세상을 하직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요양보호사는 오늘도 무척 바쁘다. 살을 저미는 고통에 이젠 이 세상 삶에 대한 미련이 없을 듯도 하건만, 그래도 병상에 누운 그녀는 힘없는 눈가에 눈물을 떨구며 속으로 이렇게 되내인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차디찬 지하철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는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게 보인다. 오늘도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얼음장 같은 콘크리트 바닥에 신문지로 잠자리를 편다. 바쁘게 귀가 길을 재촉하는 수많은 사람들. ‘나도 저들처럼 돌아가면 나를 반겨주는 가족과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안내견을 동반하고 무거운 길을 나선 시각 장애인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게 보인다. 꿈과 같은 캄캄한 어둠이 아침에도 이어진다. 자동차 경적 소리와 길을 오가는 행인들의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안내견이 옷자락을 잡아끌며 길을 재촉한다. 차와 충돌하지 않기 위하여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하여 연신 지팡이로 땅바닥을 두들겨 본다. ‘아! 단 하루만이라도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거리에 나선 실업자는 출근하는 직장인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 오늘도 가짜 양복을 입고 유령회사에 출근하지만 갈 곳이 없다. 대합실 승객이 다 떠난 터미널 허름한 벤치에 토스트 한 조각 베어 물고 벼룩신문을 펼친다. 오전 9시! ‘8시간을 어디서 보내야 하나!’ 가족들 생각이 난다. 고개는 떨구어지고 어깨는 자꾸 좁아진다. 충혈된 눈에 눈물이 흐른다.


자식이 없는 부부는 아이가 있는 부부가 가장 행복하게 보인다.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가 서로 마트에서 만났다. 남편이 카트를 밀고 아내가 뒤를 따른다. 맞은편에 아이 띠를 목에 두른 젊은 아빠가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가득 담은 채 그의 아내와 함께 지나간다. 반대편 남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내가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남편이 아기 신발을 파는 코너에 섰다. ‘나에게도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는 부모 키보다 더 큰 아들과 함께 길을 걷는 부부가 가장 행복하게 보인다. ‘그 때 그 교통사고만 아니었어도, 우리 아이가 저 정도 나이는 되었을 텐데’ 길에서 본 아이가 세상 떠난 아들과 많이도 닮았다. 힘없이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아내. 아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드러누웠고 남편은 냉장고를 뒤져 소주를 찾는다. 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가물었던 눈물샘에서 빗물 두세 방울이 술잔 위로 떨어진다.


아내를 잃은 남편은 아내와 함께 거리를 지나가는 남자가 가장 행복하게 보인다. 퇴근길에 동네 마트에 들러 반찬거리를 산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 손길이 오늘따라 무척 무거워 보인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한기와 고독이 얼굴을 때린다. 오늘따라 아내가 무척 그립다. ‘매정한 사람. 왜 그리 먼저 갔어!’


남편을 잃은 여자는 남편과 함께 길을 걷는 여자가 가장 행복하게 보인다. 살아있을 때는 넓은 어깨만큼 든든하게 아내를 지켜주었던 남편. 그가 없자 세상의 찬 바람은 사정없이 그녀를 후려 갈겼다. 여자라고 얕보이고 무시당할 때마다 든든했던 남편이 그립다. 살아 있을 때 좀 더 따뜻하게 잘 해 줄 걸. 그땐 왜 그리도 다투었는지. '오늘 밤 꿈속에서라도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고아원에 있는 아이는 부모 손 맞잡고 거리를 걷는 아이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는 ‘엄마’ ‘아빠’란 이름. 부모가 있는 저 아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나에게도 아빠· 엄마가 있다면 놀이동산도 같이 가고 맛있는 짜장면과 햄버거도 사주실 텐데. 이 때 들려오는 고아원 원장님의 날카로운 호출 소리.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원장님 앞으로 간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건강한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을 할 수 없는 불행한 처지. 햇볕이 유난히도 따사로운 4월의 어느 날.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집 베란다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은백색 햇볕이 한꺼번에 통유리 안으로 쏟아진다. 너무도 좋은 날씨. ‘나도 건강한 두 다리가 있다면 밖으로 나가 마음껏 봄 향기를 맡으면 돌아다닐 텐데!’

거리 노점상은 점포 안에서 일하는 사장님들이 가장 행복하게 보인다. 오늘도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 자리를 깔고 생계 밑천을 푼다. 2월 어느 날,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섶을 파고든다. 간이 의자를 깔고 핫팩을 비벼본다. 잠시 후 완장을 찬 단속원이 보인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오늘도 매정한 단속원에게 매달려 통사정을 해본다. 건너 편 점포 사장이 이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두 끼를 굶은 사람은 밥 먹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보인다. 아침· 점심을 굶고 순대국집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걸인. 돼지처럼 볼 살이 오른 50대 아저씨가 맛나게도 순대국을 먹고 있다. 걸인의 뱃속에서 위장과 내장들이 요동을 친다. 양쪽 호주머니를 털어본다. 백 원짜리 동전 두 개. 조금 걸으니 현기증이 난다. 달동네 한쪽 담 모퉁이에 구겨진 담요처럼 몸을 던진다.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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