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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18. 2023

커플손님은 콘돔을 남기고 아기손님은 똥기저귀를 남긴다

오전 11시 체크아웃시간이다.  서둘러 퇴실하는 팀도 있지만 시간을 꽉 채우다 못해 나갈 생각도 없는 팀도 있다. 콕 다 집어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주로 커플이 늦은 체크아웃이 많은 편이다.  우리 부부는 대략 퇴실 시간에 맞춰 외부 cctv를 확인 후 펜션에 도착한다.  남한테 청소를 맡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내 입맛에 쏙 맞는 사람 찾는 게 쉽지가 않다.  부부 둘이서 육수 뚝뚝 흘리며 청소하는 덕분에 주인장이 직접 관리하는 티가 난다는 둥, 정말 깔끔했다는 리뷰가 많은 편이고 그 덕에 더욱 꼼꼼하게  꼬부랑 털 하나조차 용납 못할 만큼 열청소 중이다.  



퇴실 후 객실에 들어가 보면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그 흔적들이 정말 각양각색이다.  전날 뭘 먹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이 일정동안 이만큼 먹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온 날에는 화장실 변기도 걱정이 된다.   소화력 갑이 아닌 이상 수도 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렸으리라.  술병이 가득 나온 날에는 내일 낮까지 여행은 힘드시겠다 싶을 만큼 술병 걱정 나는 손님도 있다.  소주파인지 맥주 파인 지. 와인을 좋아하는지 아닌지까지도. 



펜션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쓰레기통을 비운다. 분리수거되어있는 비닐을 빼고 새 비닐로 교체하며 잘못된 분리수거를 다시 수정하며 쓰레기통을 탐험하게 된다.   일반쓰레기는 사실 온갖 것들이 다 있기에 크게 터치하지 않는 편이지만 잘못분리된 재활용쓰레기는 꺼내야 하기에 부득이하게 내용물을 더 봐야 할 때도 많다. 일반쓰레기에 추가로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는 게 다음차례.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화장실 쓰레기통을 만날 때면 안 보고 싶지만 참 다양한 것들을 보게 된다.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역시나 다양한 냄새가 난다.  보는 것도 괴롭지만 사실 냄새도 한몫한다.  순위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독한 냄새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콘돔의 흔적과 똥기저귀의 흔적.   커플이 다녀가거나 아기손님이 다녀가면 고약한 두 놈이 나를 반길 때가 많다.  커플이 다녀가면 싸하게 화장실 쓰레기통을 오픈할 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며 아기손님이 다녀갔을 때에는 화장실 들어가면서부터 숨 참기는 필수다.   쓰레기통 안에 혼자 덩그러니 놓인 콘돔을 보고 민망한 것도 내 몫이고 수많은 폭탄처럼 모인 똥기저귀 수거도 내 몫이다.   그래도 침대 옆에 버려주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두 가지 중에 무엇이 더 괴롭냐 묻는다면 글쎄. 차라리 똥기저귀가 낫다고 해야 하나?  센스 넘치게 냄새나지 말라고 비닐에 싸서 버리는 엄마가 있는 반면 거실 일반 쓰레기통에 똥기저귀를 가득 모아 청소하는 내내 쓰레기통을 밖으로 뺐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냄새가 날 때도 있다.  누가 잘했고 못했다의 차이는 없지만 비닐에 싸서 버려주는 센스는 사실 뒤에 청소하는 입장에서 참 감사하다.  쓰레기통을 오픈했을 때 덩그러니 혼자 버려진 콘돔은 버려진 콘돔도 눈 마주친 나도 서로 민망한 걸로.   



손님들의 남겨진 흔적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바싹 마른 일회용 렌즈.  탈모가 걱정될 만큼 수도 없이 많은 긴 머리카락들.  개인적으로 나 역시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늘 고민인 사람이기에 이 손님 역시나 걱정이 많이 된다.  머리카락 많이 빠지는 여자 모임이라도 가져야 하나 싶은 게.  한 명 한 명 어떤 사람인 지는 모르지만 그 습관부터 꼼꼼함까지 두루두루 보인다.  서비스로 드리는 간단한 먹거리들과 커피제품들도 아예 손도 안 대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 먹은 흔적도 없이 기념품처럼 싹 다 가져가는 손님도 있다.  서비스로 드리는 것이라 가져가는 게 아깝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손 안 대고 가시는 손님은 우리의 웰컴푸드가 마음에 들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다녀간 손님들의 흔적들로 손님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저 다들 재미있게 놀다가셨기를 바랄 뿐이다. 아기 손님은 넘어지지 않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거울에 가득 손자국을 남겨놓아 허리 숙여 거울을 닦아야 하지만 본인 얼굴, 엄마아빠 얼굴 보며 방긋 웃고 갔겠지.  커플은 우리 숙소에서 잊지 못할 뜨밤이 되셨길 바라며다녀가신 모든 분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던 숙소가 된다면 그저 바랄 게 없겠다.   오늘은 과연 어떤 손님의 흔적이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을까.  가끔 무섭고 가끔은 흥미진진한 그들의 흔적을 오늘도 만나러 가야겠다. 오늘 손님은 커플이던가 가족손님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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