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숙소에서 대만 여행을 시작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동생에게 남겨진 연락은 더욱 황당했다. 우리가 눈 떴을 때 비행기는 날아오고 있을 것이고 대략 아침 먹고 만날 수 있다고 했던 우리의 계획과는 달리 동생은 아직 김해공항이었다. 왜에?
태어나 첫 해외여행 첫날 숙박을 김해공항에서 진행한 친정 아부지. 해외여행은 고난의 연속이라지만 환갑된 할배한테 너무 큰 해외여행의 출발 아니던가? 세상 등 아픈 공항 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이면 가겠거니 기대했건만 항공사 측에서는 당일 오전 안개와 날씨의 이유로 언제 이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빅펀치를 날렸다. 오기 싫은데 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 이기는 척 따라온 김해공항인데. 큰딸은 사위랑 손자랑 먼저 가고 없고 잔소리 많은 마누라에 둘째 딸은 울고만 있으니 기가찰 노릇이다. 몇 시간 자고 나면 비행기 탈 줄 알았는데 폐소공포증 환자 퇴근하니 이제 날씨가 못 가게 막는다. 이미 배앓이가 꼬일 대로 꼬인 아빠는 결국 여행 포기선언을 했다.
"난 안 간다! 난 집에 가니까 너희끼리 가든지 말든지!! "
대만에 먼저 와있는 나 또한 헝... 이게 아닌데 아빠한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이미 고집불통 아빠의 결심을 막을 수 없었다. 아빠 그래도 이게 첫 여행인데 이제 곧 비행기가 뜰 텐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타고 올 수 있다고 보내면 뭐 하나. 소귀에 경 읽기. 겨우 3박4일 여행 일정에 1.5일은 공항에서 날렸으니 그래 화가 날 만도 하지. 아빠가 가면 엄마는 어째? 어쩌긴 뭘 어째 ~ 할배 비위 맞추려면 잔소리쟁이라도 의리있게 남편 따라 돌아가야지.
심지어 엄마역시 불안해서 못가겠다며 환상의 궁합을 보여준다. 아 이럴땐 엄청 의리좋은 부부사이네.
결국 친정 아빠 환갑 기념 빙자 여행은 개판이 되었다. 정작 주인공 없는 대만 환갑여행. 들러리들로 가득한 우리끼리 환갑 여행이 되어버렸다. 다 같이 101타워 야경을 보며 야시장에서 취두부에 맥주를 마실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현실은 세수 못 하고 꼬질꼬질하게 혼자 나타난 동생 그리고 우리 가족 셋뿐이다. 어렵게어렵게 가게문을 닫고, 안간다안간다 하는 아빠를 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환갑 핑계 대고 우리만 여행 온 꼴. 민망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효녀 코스프레를 했는데 참 어렵다. 이번 생애 효녀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엄마·아빠는 김해공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첫 김해공항 숙박을 체험하고. 항공사 측에서는 최소한의 배려로 무료 취소와 교통비 5만 원을 주었다. 숙박, 투어 상품에 대한 뒤 보상 따위는 없더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지연에 결항 소식 속에 천불 나는 건 그저 승객뿐이더라.
결국 그렇게 아빠의 첫 해외여행은 김해공항 구경이 전부였다. 누가 생각인들 했겠는지 김해공항 그것도 아빠가 탈 비행기에 폐소공포증 환자가 탔으며 모든 승객이 내리고 공항에서 노숙하게 될 줄. 밤에 못 가는 것도 새벽에 첫 비행기로 갈 수도 없게 될 줄. 결국 화가 나서 집에 돌아가는 첫 해외여행이자 환갑여행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아빠의 첫 해외여행 도전기는 폭망이었고 술자리마다 아빠의 해외여행 이야기는 매번 안주가 되어 올라왔다. 다시는 안간다한국이 제일 좋다. 거기 볼거 뭐가 있노? 하면서도 첫 해외여행의 속상함은 분명 있었을거다. 아닌척 가기싫은척 해도 노는게 싫을리가 없단말이다.
그래 아빠 칠순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 설마 또 칠순 기념 여행에 폐소공포증 환자가 또 타기야 하겠어? 그래 칠순 전에 우리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 일단 한번 가보자고! 그래 꼭 환갑, 칠순이어야해? 그냥 62세 기념, 63세 생일 기념 이름 붙이면 되는거지머. 우리 내년에 다시 한번 더 도전해볼까? 해외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