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벵거 자서전
한 축구팬이 철로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목격한다.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낸다. 곧바로 다음 기차를 탄다. 아스널 홈경기에 늦지 않기 위해서다. 이 정도로 '아스널 정신'에 충성하는 열광적인 서포터들이 모인 클럽을 22년 동안 이끄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긴 아스널 생활을 마무리한 뒤 축구 인생을 되돌아보며 직접 쓴 『아르센 벵거 자서전』에서 저자는 말한다. '아스널은 나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와도 같았고'(246쪽), '아스널을 떠나는 것은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253쪽)고. 축구는 그의 삶이고, 아스널은 그의 집이었다.
한때 모두가 '지루한 아스널'이라고 불렀던 클럽은 1996년 가을 아르센 벵거의 부임과 함께 제로부터 다시 시작한다. 벵거는 단순한 '그다음 새 감독'이 아니었다. 패싱 위주의 날렵하고 아름다운 축구를 도입했다. 선수단이 승리를 갈망하게 했다. 무패우승을 일궜다. 초코바와 탄산음료를 금지하는 등 식단을 철저하게 관리한 첫 번째 감독이었다. 유소년 육성과 선수 영입에 깊이 관여했다. 새 홈구장의 건설을 포함, 재정과 수익 업무를 챙기는 경영자의 면모까지 보여줬다. 'NEW 아스널'을 창조한 제1 매니저이자 제1 디렉터였음을 서술한다.
해외축구 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역자가 책 판매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았다. 2003-2004 시즌을 끝으로 프리미어 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벵거. 책으로 정상 기록을 추가했다. 구너들의 화력에 힘입어 분야 1위를 차지했다. 축구를 모르거나 아스널과 벵거의 팬이 아니라고 해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문학성이 돋보이는 잘 쓴 에세이다. 더 과장해도 괜찮을 업적과 기록을 '교수'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차분하게 회고한다. 또한, 비즈니스 북클럽의 필독서다. 경영자, 관리자라면 훔치고 싶을 지침들이 가득하다.
원제의 '레드와 화이트'는 벵거가 거쳐 온 팀들의 컬러를 의미한다. '광기와 품위'로 바꿔도 적절하다. 광기(레드)는 축구와 승리를 향한 열정이다. 품위(화이트)는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택한 노력, 겸손, 존중 같은 태도다. 저자는 아스널이 가진 핵심 가치로 '함께하라, 품위 있게 행동하라, 앞으로 나아가라' 세 가지를 제시한다. 모든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슬로건이다. 현대축구에서 신화를 쓴 위대한 감독들은 많다. 그러나 'CEO의 서재'에 단 한 감독의 자서전만 꽂을 수 있다면 이 책은 그 영예를 차지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