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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Aug 08. 2021

외로운 사람은 전장에서도 편지를 쓴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왜 많이 팔렸지' 궁금한 이번 주 급상승 도서

[2021년 7월 5주] 7/26~8/1


"난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 그리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둘이서 함께 알아내고 싶어."(레드) "레드, 난 널 사랑해. 레드, 난 그렇게 적은 편지를 매 순간 너에게 보낼 거야."(블루) 대만 청춘물 혹은 할리퀸 로맨스의 한 부분 같은 대화. 그러나 SF 로맨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속 교환 편지 내용이다. 이 작품은 휴고상, 로커스상, 네뷸러상, BSFA상, 오로라상 등 내로라하는 SF상을 넝마주이 하듯 쓸어 담았다. 그랜드마스터 테드 창, 라이징 스타 켄 리우 다음 이 책을 읽어야지, 팬들은 기대했다.



문제가 하나 있다. 상황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지 않는 이 책은 처음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도입부에 흐름을 올라타 따라가기 어렵다. (물론 두 번 읽은 독자나 SF 마니아라면 '이게 뭐 어렵다고 그래?'라고 말할 것이다.) 첫 시도에 이해할 수 있는 것. 시공간을 넘나드는 전장에서 대립하는 두 진영의 요원 블루와 레드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다. 둘은 먼 만큼이나 서로 가까워진다. 관심에서 시작한 감정은 사랑으로 변모한다. 둘의 관계는 편지에서도 언급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계를 빼닮았다. 위기감의 농도가 서서히 짙어진다.


중반을 넘어서며 한 챕터에서 서신의 비중이 줄고 배경 해설이 늘어날 때, 소설은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둘의 사랑이 맺어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시간 전쟁의 패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관심거리다. 제목을 통해 레드와 블루는 전쟁에서 (일시적인) 패배를 선택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요원의 존재 이유인 승리를 포기하고서라도 이루고 싶은 '사랑' 때문이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먼 미래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변하지 않고 원형대로 남을 것이라는 단순 강력 메시지를 전한다. 두 연인이 '편지'로 소통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공저자 맥스 글래드스턴, 아말 엘모흐타르


SF 소설 속 연인이라면 텔레파시를 주고받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도 편지를 택했다. 책의 주제인 '사랑'만큼이나 고전성과 영원성을 동시에 지닌 수단인 것이 이유다. 편지를 실제로 쓴 두 작가의 표현력은 현란하며 유려하다. 아름다운 단어 선택과 섬세한 묘사. 전쟁의 스펙터클보다는 편지가 빚는 분홍빛 무드에 초점을 맞춰 읽는 것이 좋은 개성 있는 SF다. '외로운 사람만이 편지를 쓴다.' 에이젠슈타인의 생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말이다. 편지로 외로움을 떨쳐내는 데 성공한 연인은 '이번에는 이겨야 할' 전쟁을 새롭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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