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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May 22. 2022

150일 짜리 악몽을 남기고 사라진 여인

환상의 여인(1942) 윌리엄 아이리시

[세계 추리문학전집] 19/50


인기 세계문학전집 브랜드를 보유한 출판사는 시선을 넓혀 미스터리 같은 장르문학 시리즈를 펴내기도 한다. 민음사 임프린트 황금가지는 「밀리언셀러클럽」을, 문학동네는 역시 임프린트인 엘릭시르를 통해 고전 추리소설 전집 「미스터리 책장」을 전개하고 있다. 2012년 론칭한 「미스터리 책장」은 첫 번째 책으로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선보였다. 추리소설 역사에서 이 책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선정이다. 부여받은 '세계 3대 추리소설' 타이틀은 사실 공신력이 높지 않다. 그러나 세 작품이 걸작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추리소설 팬들은 누구나 이 책의 줄거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해설과 달리 윌리엄 아이리시는 3대 소설 중 다른 두 작품을 쓴 애거서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에 비해 낯설게 느껴진다. 나만 안 읽은 것 같은 추리 명예의 전당 소설을 '실제 읽는다'는 점이 처음 『환상의 여인』을 펴들 때 흥분을 느끼게 되는 요소다. 어쩌면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였던 작가의 미스터리 세계를 초행하는 즐거움은 제목을 접할 때부터 시작된다. '환상'은 Fantasy가 아닌 Phantom이다. 미지의 여인, 사라진 여인, 아무도 보지 못한 여인을 찾아야 하는데, 설마 여인은 유령일까?


주인공 스콧 핸더슨은 아내와 다투고 집을 뛰쳐나간다. 처음 눈에 들어온 여자와 무작정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온 뒤 아내가 살해된 것을 알게 된다.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유일한 사람은 살인 추정 시간에 그와 함께 있었던 여자, 혹은 이 동행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그가 사형을 면할 수 있도록 친구 롬바드가 목격자를 찾아 동분서주한다.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도와줄 사람들을 간신히 찾아내지만, 그들은 거짓말같이 죽음을 맞는다. 사형 집행일은 하루 이틀 가까워진다. <누명 쓴 사나이>가 연상되는 더없이 히치콕적인 상황. 기댈 곳은 기적뿐이다.


헨더슨이 '150일 동안의 악몽'에서 헤어 나올 수 있도록 나서는 인물은 천재 탐정이나 전능한 영웅이 아니다. 주변 보통 사람들이 필사의 노력을 모아 실낱같은 단서들을 쌓아간다. 기적을 꿈꾸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고 평범한 개인의 과감한 도전은 숭고함을 자아낸다는 교훈을 남긴다. 모험의 결과가 성공일지 실패일지 추리하며 읽다 보면 어느덧 결말에 다다른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속도감, 변화무쌍한 전개, 명작이라는 권위에 억눌리지 않고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쉬운 서술은 『환상의 여인』을 돋보이게 하는 차별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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