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1963) 존 르카레
스파이 소설의 그랜드마스터 존 르카레는 지난 2020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영국 외무부에서 근무했다고 하는 공식 약력과 달리 실제로 스파이로 활동했다고도 알려진 그는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을 써냈다. 첨예한 냉전의 시대인 1960년대 초 첫 소설을 발표했다. 세 번째 작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로 꿈꿨던 대성공을 맛보았다. 사실적인 스파이 세계 묘사에 독자와 평단 모두 지지를 보냈다. 권위 있는 미스터리 상인 영국 추리 작가 협회상과 미국 추리 작가 협회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소설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스파이 소설의 셜록 홈즈' 수준으로 인지도가 높은 존 르카레의 대표 캐릭터 조지 스마일리. 그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서는 보조 역할로 잠시 등장한다. 주인공은 앨릭 리머스다. 영국 정보부의 베를린 담당 첩보원인 그는 조직이 괴멸되어 위기에 처한다. 배신자로 연기하여 동독 정보부에 거짓 투항된다. 목표는 부하들을 몰살한 숙적 문트의 제거. 영국과 동독 정보기관 사이 치열한 공작, 공작을 내다본 반격, 반격을 예상한 역습이 물샐틈없이 이어진다. 양국의 공방 중 무엇이 위장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분간하기 매우 어렵다. 당연한 일이다.
일국의 최고 두뇌들이 모여 상대국을 제압하기 위해 짜낸 전술, 전략의 총합이 첩보이기 때문이다. 존 르카레는 복잡다단한 국제 관계의 복마전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충실하게 재구성한다. 결론은 모든 스파이는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낭만 따위는 없다. 순진함의 대가는 죽음이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책에서 인용된 정보부 활동의 도덕률이다. 이 같은 냉혹하고 비정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압축하여 보여준 마지막 도주 중의 대화는 이 소설의 백미다.
독자는 주인공인 리머스과 영국 정보부에 동조하여 책을 읽게 된다. 그러나 영국과 동독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남는 것은 환멸이다. 그렇다면 전체 안에서 개인의 존재는 무의미한가? 작가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주인공 리머스와 리즈는 인간 존엄성의 숭고함을 상징한다. 리머스의 원래 목표는 문트를 제거하고 추운 나라(동독)에서 따뜻한 나라(서방)로 무사히 이동하는 것이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는 마지막에 목표를 수정한다. 사상과 집단주의(추운 나라)가 아닌 개인과 휴머니즘(따뜻한 나라)을 선택하는 것으로. 리머스는 임무를 완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