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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May 29. 2022

사회파 미스터리는 '4분의 공백'에서 시작했다.

점과 선(1958) 마쓰모토 세이초

[세계 추리문학전집] 20/50


잘 알려진 일화. 일본 '추리소설'의 위대한 이름 마쓰모토 세이초가 처음 받은 큰 상은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이 아닌 '순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이다. 실제로 수상작인 단편 「어느 [고쿠라 일기]전」에서 미스터리의 요소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작품은 오싹한 공포를 전달한다. 세상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 안에서 인간 존재는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운명의 냉혹한 본질을 뼈저리게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의 문학 범주로 한정되지 않는 총괄의 작가로 출발하여 단편만을 발표하던 마쓰모토 세이초는 1958년 첫 장편소설 『점과 선』을 내놓는다.



이야기는 '도쿄', 정확히는 도쿄 역에서 시작된다. 15번 플랫폼에서 출발한 특급열차를 탄 한 쌍의 남녀가 6일 후 '후쿠오카' 해변에서 동반 자살로 추정되는 시체로 발견된다. 의혹을 느낀 주인공 미하라 경위가 지목한 유력 용의자는 사망 시점 당시 '홋카이도' 출장 중이었다. "무대가 일본의 끝에서 끝으로 확대되었다." 본문처럼 사건 해결을 위해서 미하라는 일본 전역을 종횡무진으로 활약한다. 이처럼 넓게 뻗어나가는 호쾌한 규모가 작품의 주요 인기 원인 중 하나다. 작가 자신 여행광이었고, 작품이 연재된 잡지사의 이름도 '여행'이었다. 


열차, 배, 비행기까지 온갖 운송 수단들이 이동하며 만든 '선'들은 소설의 역동감과 낭만성을 높인다. 반면 '점'은 추리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트릭이다. 그 핵심인 도쿄 역 열차 시간표의 비밀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 폭넓게 뿌려진 수수께끼들을 논파해야 한다. 점들을 이어 하나의 선을 완성해야 하는 미하라와 도리카이 콤비의 고군분투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필치로 서술된다. 심지어 분량을 더 늘려도 괜찮았을 마지막 해결 부분은 편지 형식으로 정리해버린다. 최대한 압축하지만 갑작스럽지는 않다. 담백하다. 정갈하다. 돌파감이 뛰어나다.


빼어난 문예성, 본격 추리로서의 강점과 함께 세이초를 말할 때 반드시 추가해야 하는 요소인 사회파 미스터리의 비중은 물론 높다. '추리의 재미와 인간 내면 성찰 중 무엇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 세이초 월드의 기조는 작가가 왕성한 창작욕을 바탕으로 평생 남긴 수많은 작품 속에서 한결같이 이어졌다. 특히 『점과 선』은 범죄의 발생에 사회가 미치는 영향을 주목한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의 초석을 다진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그 시작점인 '도쿄 역 13번 플랫폼의 4분'은 짧지만 강렬한 일본 현대 미스터리의 중요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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