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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Jun 05. 2022

동기를 잡아야 진짜 잡은 것이다.

악의(1996) 히가시노 게이고

[세계 추리문학전집] 21/50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첫 번째는 '미스터리의 신'이다. 100편에 가까운 작품 대다수가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 두 번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한국에서 보낸 호응은 남달랐다. 작가의 국적과 장르를 한정하지 않고 2010년대 10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책이 판매된 소설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2010년대 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인기 원인 중 하나는 세 번째 닉네임과 연관이 있다. 메시지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한 국내 독자에게 '기적과 감동을 추리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별명을 하나 더 추가한다면 '다작의 성인'을 골라야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빨리 많이 쓴다. 독자가 읽는 속도보다 그가 쓰는 속도가 빠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많은 작품이 모두 고르게 높은 완성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경이롭다. 사회파 미스터리, 본격 미스터리, SF, 판타지, 로맨스, 휴먼 드라마까지 색과 결도 다양하다. 히가시노 게이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악의』도 고유한 개성을 지닌 작품이다. 작가가 이 책에서만 시도한 서술 실험은 찬사를 얻었다. 1인칭 '수기'와 '기록'의 형식으로 전개한 것이다.


두 주인공 중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가 포문을 연다. 1장 '사건'은 그가 오랜 친구인 소설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살해 현장을 목격한 뒤 전후 경위를 정리한 글이다. 반면 노노구치 오사무를 유력한 용의자로 점찍은 담당 형사 가가 교이치로는 사건의 전모를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다. 사건 조서에 해당하는 가가의 글과 달리 노노구치의 수기는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단순히 사실의 옮김인지 창작이 들어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악의』를 읽는 묘미다. 형사와 용의자가 먼저 말(취조)로 맞붙고 글로 다시 한번 다투는 구조가 신선하다.


약 3분의 1지점에서 범인이 체포된다. 그러나 진짜 범인은 누구이고 진짜 동기는 무엇일까? 가가는 의문을 파고들어 간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전환이 일어난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요동치는 격변이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예상하기 쉽지 않은 설계가 숨어있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사건 해결만큼 범행 동기와 사연을 중시하는 작가 특유의 시선이 깊게 반영된 더할 나위 없이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소설. 데뷔 후 두 번째 작품인 『졸업』(1986)을 시작으로 작가의 페르소나로 활약한 '가가 형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자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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