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경김웅기 Apr 10. 2020

죽음을 기억하는 꽃처럼

고정희 시인을 만나다



뜻하지 않게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는 것을 '요절'이라 한다. 문학판에서 요절은 종종 신화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일찍 죽은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천재적인 면모가 부각된 글이나 책을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시인 중에서 김수영과 기형도가 이 말의 의미를 적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요절을 했다. 그의 목소리는 대부분 역사와 현실을 에두르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지리산 절벽에 핀 위태로운 찔레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주 먼 옛날(이라 하고 싶은 2016년 왠지 가을이었던 듯), 문학을 하겠다는 어린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떤 녀석이 '나도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녀석이 은근 걱정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요절을 하면 천재 시인이 될지도 모르니까'라고 답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말이 정말 오묘하게 들렸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을 스리슬쩍 뒤바꾸어 놓은 듯한 그 문장이 문학을 비꼬는 것같이 느껴지기까지 해서 술을 더욱 많이 마시게 됐다. 사실 그렇다. 수영에 대한 논문을 쓸 때도 나는 항상 그의 신화적인 면모가 아니라 작품이 가지고 있는 현재성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수영에게 매료되었던 것도, 수영을 존경하는 것도, 수영을 생각하면 언제나처럼 문학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랐던 것도 다 그의 문학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인했다. 수려한 작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찍 죽었다는 '사실' 자체는 그의 문학을 미완성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타당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었다.

각설하자. 오늘의 주인공은 수영이 아니라 시인 고정희니까. 고정희라는 이름이 대중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을까 싶다. 그는 산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산에서 죽었으니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바쁘지만 않으면 매주 도봉산을 타내리던 사람이었는데, 산이 좋아서 아예 산자락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 사람을 만난 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다. 나처럼 연구를 하면서도 시를 쓰는 사람이었는데, 마지막으로 했던 연구가 아마 동주였지 싶다. 그 사람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제 동주보다 내가 더 나이가 많아졌어" 동주도 참 일찍 간 시인이다. 광복을 못 보고 가서 더 안타까운 요절시인 동주보다 조금 더 오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술자리에서 만났던 '녀석'의 말과는 또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진한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


성전의 두 기둥처럼 붙박인 것이
어디 우리들 마음뿐이랴
가을산에 올라 들을 내려다보면
흐르는 모든 것은
어제 있던 그 자리에서 흐르고
작은 풀꽃 하나가
지구의 회전을 다스리기 위해서
하늘과 땅 사이 뿌리박고 섰나니

내가 그대 춤 속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그대가 나의 근심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우리들 뿌리의 참담한 정돈을 어찌 외롭다 말할 수 있으랴
오솔길에 지는 것은 낙엽뿐,
뿌리 있는 것들은 뻗어 뿌리로 손잡으리니
우리가 한잔에서 목 축이지 못하는 오늘은
그대여, 우리들 겸허한 허리를 구부려
서로의 잔에 그리움을 붓자
서로의 잔이 넘치게 하자

<가을을 보내며 - 편지 8> 전문


고정희 시인의 시를 많이 알지는 못했다. 읽음이 더디고 배움이 게으른 탓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가을을 보내며-편지 8>를 꼽곤 한다. '서로의 잔에 그리움을 붓자'는 저 말이, 그래서 '서로의 잔이 넘치게 하자'는 저 의욕이 감당이 안 되어서 좋다.

나는 애인에게 종종 시를 읽으라고 권하거나, 아예 시집을 사주곤 했다. 그런데 시라는 것이 참 느끼는 대로 느끼는 것이라서 어렵다고 말해도 맞고 싫다고 말해도 맞으며, 울었다고 말해도 맞는 말이로다. 그래서 말인데, 시집은 선물로는 적절한 게 못 된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시집 <지리산의 봄>을 꺼내어 애인에게 그 시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애인은 풀꽃과 호빗을 예로 들면서 그 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마구마구 설명을 했다. 사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때의 감각은 분명, '엄청난 해석이야! 정말이지 멋진 해석이 아닐 수 없어!'였다. 애인의 좋은 점은 시를 읽으면 좋다, 나쁘다, 어렵다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최대한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시 너머로 애인을 보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때로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보다 알쏭달쏭한 말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어떤 지점에선 달라붙고 어떤 지점에선 떨어지는 이런 이해가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든다.

애인과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실은 시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어느 순간 우리의 이야기로 넘어왔지만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그냥 계속했다고 치자. 중요한 기억은 이런 대화였다.


"이 시인은 산에서 낙사했대. 슬프지."
"아 진짜? 응 슬프다."
"나도 떨어질 뻔 한 적 있어! 산에서."
"아 진짜? 정말 다행이다."


의도치 않은 죽음은 슬픈 것이고,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다행인 것. 그렇게 이 대화의 핵심을 정리해본다.

시인에게 있어 문학을 떠나서 생각을 해본다는 말은 불가능하다. 시를 떠날 수 없어서 시인이 된 사람들에게 시는 인생 그 자체일 테니까. 고정희가 그날 산에 가지 않았다면, 또는 사고는 당했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면, 그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바보 같아서 접었다. 말해서 무얼 할까, 시인이라면 분명 시를 쓰고 있겠지. 그러고 보면 문학판에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눈을 감고 호흡을 하지 않으며, 더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할 수 없음(하지 않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고정희의 죽음이 결코 영원한 죽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그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봄만 되면 한 번씩 꺼내보는 이 시처럼, 그는 작품 속에서 충만하게 살아온다.


"요절을 하면 천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지나
오늘은 내가 시인보다 하루를 더 살았어, 라는 그리움 지나
나도 그렇게 죽을 뻔 했어, 라는 우리의 현실을 지나"


내가 요즘 생각하는 '죽음'이란 운과 불운이 뒤섞여 어지럽기만 하다. 왜 하필 문학을 해서 쉽게 보내줄 수도 없고 마냥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걸까? 이런 의문은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하나같이 운이며 불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존의 층위를 나누면 나눌수록 복잡해지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나를 말할 때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말할 때가 더 무섭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한 삶을 부여받는다는 건 문학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 있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의 나를 만족할 수 없음이 차라리 행복인 순간이 있다. 그러니 이제 복잡한 생각은 그만 하고, 말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살아 있으라는 당부로 오늘의 결을 짓고 싶은데. 이해해주려나?

두서없어도 오늘 당신은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고정희(1947-1991)
그의 시집 <지리산의 봄>을 읽으며 한 많은 봄을 해소하고 있다. 아름다움 글자와 글자 밑에 핀 그림자를 그리워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형의 생활, 나의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