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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Oct 23. 2020

<미스테리어스 스킨> - '고통 속에 갈라진 기억'

[영화 후기,리뷰/왓챠, 조셉 고든 레빗 영화 추천/결말 해석]

                                     

미스테리어스 스킨 (Mysterious Skin)

개봉일 : 2017.11.23. (한국 기준)

감독 : 그렉 아라키

출연 : 조셉 고든 레빗, 브래디 코베, 미셸 트라첸버그, 메리 린 라즈스쿠브, 제프리 리콘                                                                         

고통 속에 갈라진 두 갈래의 기억


<미스테리어스 스킨>의 주인공, 브라이언은 인생에서 잃어버린 5시간의 기억을 찾고 싶어 한다. 조각난 기억은 흐린 실루엣만 갖춘 채 악몽이 되어 10년째 브라이언을 괴롭힌다. 고통받고 있던 브라이언의 기억 속에 나타난 야구단 유니폼을 입은 남자아이 ‘닐’. 브라이언은 진실을 찾기 위해 자신과 같은 기억을 지니고 있을 닐을 찾아간다.



보통은 그리움과 아련함의 감정을 품고 어릴 적 기억을 찾아가게 된다. 내 키가 하루가 다르게 커갈 때, 키를 재며 흔적을 남겼던 집, 어릴 적 친구들과 뛰놀았던 놀이터, 해가 질 때면 나를 찾던 엄마가 서있었던 길 등.. 추억이 깃든 물건과 장소를 찾아보며 오래된 기억을 맞춰봤던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좋은 기억들을 오래도록 품고 싶어 한다. 그리고 반대로, 아픈 기억과 고통은 되도록이면 빨리 잊고 싶어 한다. 큰 충격을 받으면 기억의 일부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말,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브라이언은 코피를 흘리며 지하실에서 눈을 뜬 ‘그날’. 5시간의 기억을 잃는다. 그게 어떤 충격이었을까? 오래도록 진실을 찾지 못한 채 헤매던 브라이언은, 조금씩 왜곡되기 시작하는 기억 속에서 본 실루엣과 자신에게 일어난 증상을 중심으로 추리를 시작하고, 이 모든 게 외계인의 짓일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외계인의 짓이 아니었다. 진실은 무엇일까? 파헤쳐 볼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저릿해진다.



스포가 될 수도 있지만, <미스테리어스 스킨>은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어른의 무관심한 태도, 소아성애자가 벌인 용서할 수 없는 만행. 그리고 영원히 기억될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답답하고, 슬프고, 화가 난다. 만일 이런 감정들을 견디기 힘들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 멘탈이 와장창 부서질 수도 있으니, 이 부분을 고려해서 감상하길 추천한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시놉시스


어릴 적 기억의 일부를 잃은 ‘브라이언’은 기억을 되찾기 위해 계속 노력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갈수록 선명해지는 의문의 잔상들로 괴로워하던 브라이언은 당시 자신이 외계인들에게 납치당했고, 그 결과 기억상실증이 생겼다고 믿기 시작한다. 결국, 브라이언은 같은 야구팀 멤버였던 ‘닐’도 그날 그곳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사라진 기억에 대한 키를 쥐고 있을지도 모르는 닐을 찾아 나서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8살 때쯤, 5시간을 잃어버렸다.


브라이언은 8살 때쯤, 야구단 벤치에 앉아 비오는 걸 지켜보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5시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눈을 떴을 땐 코피를 흘리며 지하실에 앉아있는 내가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5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브라이언은 그 후로도 가끔씩 쓰러지고, 코피를 흘렸다. 브라이언의 부모님은 아이가 야구를 하다 다쳤을 것이라 예상하고 당장 야구단을 그만두게 한다. 그렇게 흔적도, 증거도 없이 잃어버린 5시간은 끝없는 악몽이 되어 10년째 브라이언을 괴롭힌다. 푸른빛과 얼굴을 다 감쌀 만큼 긴 손가락,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괴로웠던 시간. 브라이언은 외계인이 자신의 기억을 앗아갔을 거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냥 그렇게 됐다.


브라이언과 같은 야구단 출신인 닐은 엄마의 권유로 야구단에 들어가게 된다. 야구단에서 마주친 코치는 닐을 최고의 선수라고 칭하며 애정을 쏟는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닐을 픽업하고, 닐의 엄마가 바쁜 날이면 자신의 집에 데려가 TV를 보여주고, 함께 게임을 한다. 어린 닐은 코치의 관심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상대를 아낀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판단하기엔 닐은 너무 어렸다. 시리얼이 바닥에 흩뿌려지고, 닐은 천장을 바라본다. 어린아이는 코치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몇 시간 동안 천장을 바라보는 날을 반복한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시리얼이 얼굴을 두드리던 감각은 너무도 선명하게, 오래도록 닐의 기억에 남는다. 닐은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내게 일어난 일을 알아야 했다.


흩어진 기억은 악몽이 되어 브라이언의 곁을 맴돈다. 브라이언은 반복되는 악몽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어린 내가 소리를 지르고, 꿈이 끝나면 서둘러 그림을 그려 기록을 남긴다. 브라이언은 ‘미스터리의 세계’라는 TV 프로에 나온 아발린에게 엽서를 보내고, 외계인에게 실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그녀는 브라이언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함께 정보를 공유한다. 어느 날은 아발린이 급히 브라이언을 불러 반으로 절단된 소 시체를 보여준다. 외계인의 흔적이라며 브라이언의 팔을 잡아끈 아발린은 브라이언의 손을 소의 생식기관 안으로 밀어 넣는다. 브라이언은 엉겁결에 손을 집어넣지만, 이내 실신하고 만다.



브라이언이 그려둔 외계인은 대부분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동그랗고 큰 얼굴, 마르고 긴 팔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림을 훑어내려가다 보면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다. 상체까지는 흔히 생각하는 외계인의 이미지지만, 하체는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다. 짧은 바지, 또는 속옷으로 보이는 하의와 운동화. 다부진 종아리 근육. 운동을 즐겨 하는 사람의 하체다. 브라이언의 기억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외계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외계인이 아닌, 코치였다. 푸른빛은 코치의 집이 내뿜던 조명 빛이었고, 누워있는 어린 브라이언의 얼굴을 쓰다듬던 긴 손가락은 어린아이의 손보다 훨씬 컸던 어른의 손이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던 아발린이 바지춤에 손을 대는 순간, 엄청난 거부반응을 보인다. 기억을 잃었던 그날, 자신의 옷 춤을 끌어내리던 손길이 무의식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반으로 갈라진 소의 뱃속에 손을 넣은 후 기절했던 건, 닐이 얘기한 5달러 게임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브라이언에게 일어난 일의 진실은 외계인의 실험이 아닌, 외계인만큼이나 낯설고 무서웠던 어른이 벌인 만행이었다.


                                                                        

그가 우리를 보고 있을 것 같아. 유령이 돼서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외계인의 실험 피해자라고 말하는 아발린과 몇 사람들은 외계인이 인간을 실험하고, 상처를 남긴 후, 자신들을 추적한다고 말한다. 코치도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데려와 마음대로 신체적 해를 가하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코치가 남긴 트라우마는 피해자들을 평생토록 따라다닌다. 크리스마스 이브, 닐과 브라이언은 10년 만에 다시 만나 코치의 집으로 향한다. 브라이언이 기억을 잃은 그날, 코치가 닐과 브라이언을 데리고 갔던 집. 닐은 여길 잘 안다며 능숙하게 창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두 아이에게 잊을 수 없는 악몽을 만들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두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닐은 그냥 그렇게 됐다며 현실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많은 남자들과 밤을 함께한다. 웬디는 닐에게 심장이 아닌 깊은 블랙홀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안정적인 박자로 뛰는 심장이 아닌,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은 블랙홀 말이다. 닐은 아름다운 외면 속에 끝없는 어두움을 숨기고 있다. 닐은 기억을 외면한 채, 고향을 떠나 뉴욕에서 여러 사람들과 밤을 보낸다. 웬디와 에릭은 ‘안전하게 하라’며 닐을 설득하지만, 닐은 친구들의 말을 깊이 새기지 않는다.



평소처럼 처음 만난 사람의 집에 함께 들어가 문을 닫고, 침대에 무릎을 붙인 순간, 상대가 피임기구를 닐에게 내민다. 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닐은 평상시에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피임기구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건, 자신의 첫 경험을 빼앗았던 코치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닐은 샌드위치 가게 일을 끝내고 집에 가던 중 한 남자를 만난다.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남자에게 폭행을 당한 후 현관에 버려진 닐은 피를 잔뜩 흘린 채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닐은 크게 울음을 터트리지도 못한 채 욕실 구석에서 몸을 웅크릴 뿐이다. 그저 낮은 소리로 엄마를 불러볼 뿐이다.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한 어린 시절에도, 지금도, 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하실에서 그 일을 알고 계세요?


브라이언은 2년 만에 찾아온 아버지에게 연락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다며 화를 낸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을 잃던 그날, 지하실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긴 하냐고 소리친다. 지하실에서 코피를 흘리고 있는 우리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어른들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야구를 하다 다쳤겠지- 하고 말뿐이다. 브라이언과 닐의 부모님은 항상 바빴다.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리던 ‘그날’,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닐과 브라이언의 부모님은 오지 않았다. 코치는 남겨진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물론 바빠서 아이들을 데리러 오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아이들의 이상행동과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무관심한 부모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이후로 악몽을 꾸고, 코피를 흘리며 자주 쓰러지던 아이. 공허해진 눈빛을 내뿜는 아이의 변화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 세계를 떠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닐은 그날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브라이언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준다. 브라이언은 작은 곰인형을 껴안은 채 닐의 어깨에 기대고, 무릎을 베고 눕는다. 닐은 코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브라이언을 껴안는다. 닐은 브라이언을 다시 만난 첫 순간, 우린 공통점이 많지?”라고 묻는다. 같은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은 서로를 감싸 안고 다시 상처를 마주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지만,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을 위해 다른 아이를 상처받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코치가 남긴 상처를 갖고 있는 ‘닐’, 버거운 상처를 담아두지 못해 기억의 일부를 지워버린 ‘브라이언’. ‘그날’의 상처는 두 사람의 기억을 흐리고 날카롭게 만든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참 동안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흘리고, 참는 일뿐이었다. 



난 이 이야기를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강제로 지워버렸던 기억의 진실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잔인했다. 진실을 마주한 브라이언이 흘리던 눈물과 같은 상처를 감싸 안던 닐의 어깨가 너무도 연약하게 느껴진다. 어디부터 드러내야 할지, 어떻게 없애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 트라우마 속에서 평생을 살아갈 그들을 보며 마음이 너무도 저렸다. 특히, 흩뿌려지는 시리얼 속에서 눈을 깜빡이던 닐의 모습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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