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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Oct 14. 2020

<미쓰 홍당무> -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면..'

[영화 후기,리뷰/왓챠 코미디, 위로, 힐링, 한국 영화추천/결말 해석]

                                                                              

미쓰 홍당무 (Crush And Blush)


개봉일 : 2008.10.16.

감독 : 이경미

출연 : 공효진, 이종혁, 서우, 황우슬혜, 방은진, 배성우, 서보익, 라미란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면, 나라도 나를 사랑해야지


“지금까지 이런 여성 히어로는 없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제작한 ‘이경미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 <미쓰 홍당무>.

안면 홍조증을 겪고 있는 29살 양미숙. 그녀의 인생은 삽질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양미숙을 사랑하지 않는다. 19살, 고3 수학여행 사진 속 그녀는 첫째 줄, 둘째 줄도 아닌 맨 마지막 줄에서 홀로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다.



<미쓰 홍당무>는 이 독특한 29살 양미숙의 상처 극복기다. 로코 장인, 공블리라고 불리는 공효진 배우는 29살 양미숙 그 자체가 되어 영화를 이끌어간다. 달달한 로맨스 대신 삽질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열등감이 가득한 양미숙은 밉기보단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녀가 열등감에 찬 낮은 발길질을 할 때면 애틋한 마음이 차오른다.




사회에서 소외되어본 경험이 있다면, 나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본 적이 있다면 양미숙이라는 인물의 행동에 공감할 것이다. 반대로, 너무 완벽하고 나르시시즘이 가득해 나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면.. 조금 공감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미쓰 홍당무>는 2008년도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12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빛바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상큼하고, 귀엽고, 톡톡 튄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연출이, 작품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미쓰 홍당무>를 추천하겠다. 꿋꿋하게 사랑의 삽질을 하고, 얼굴을 붉히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29살 양미숙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미쓰 홍당무 시놉시스


시도 때도 없이 얼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에 걸린 양미숙은 비호감에 툭하면 삽질을 일삼는 고등학교 러시아어 교사. ‘지지난해 회식자리에서도 내 옆에 앉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내 옆에 앉은 걸 보면 서 선생님은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해!”라고 생각하던 그녀 앞에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사랑받는 모든 여자의 적 이유리 선생이 나타났다.


열심히 해도 미움받는 양미숙, 대충 해도 사랑받는 이유리. 미숙은 자신이 영어교사로 발령 난 것도, 서 선생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도 모두 그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급기야 질투와 원망에 사로잡힌 양미숙은 서 선생과 이유리 사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서 선생의 딸 이자 싸가지없는 전교 왕따 서종희와 모종의 비밀스러운 동맹을 맺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돼
- 양미숙


“이제는 달라지고 싶어요.”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수학여행의 기념사진을 찍는 순간, 양미숙은 맨 뒷줄에서 홀로 점프를 한다. 담임 선생님 서종철은 미숙이 점프하는 방향을 쳐다본다. 미숙과 종철의 인연은 10년 전, 사제지간부터 시작된다.


10년이 지나고, 미숙은 러시아어 선생님이 된다. 자신이 다니던 그 학교에서 말이다. 미숙과 종철은 이제 사제지간이 아닌 같은 학교 선생이다. 미숙은 다정한 선생님이었던 종철을 짝사랑하고, 그의 사소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왜 내 전화를 씹는지, 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지. 미숙은 종철을 앞에 두고 힘찬 삽질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피력한다.



하지만 종철을 포함해, 미숙의 주변은 미숙을 좋아하지 않는다. 종철은 미숙이 아닌 유리를 좋아했고, 아이들은 똑같은 러시아어지만 유리의 수업을 더 좋아했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 없는 러시아어 선생님’ 미숙,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러시아어 선생님’ 유리. 남자친구도, 남자인 친구도 없는 미숙, 남자가 끊임없이 생기는 유리. 유리는 미숙과 다르게 숨만 쉬어도 주변인들의 사랑을 잔뜩 받는다.



종철은 와이프를 두고 유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종철 부부는 이혼을 앞두고 있다. 그 소식을 들은 미숙은 종철의 이혼을 막으려 노력한다. 내가 갖지 못하면 유리도 그를 가질 수 없다! 미숙은 종철의 자기애가 강한 딸 종희를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인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 없는 (전)러시아어 선생님과 싸가지가 없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공주 같은 종희. 둘은 각자의 이유로 종철의 이혼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축제 무대를 핑계로 엄마의 출국을 미루자!’ 미숙의 계획이다. 종철의 아내가 늦게 출국을 하게 만들고, 시간을 벌어 종철과 유리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다. 하지만 축제 무대는 1+1, 즉 2명 이상만 참여할 수 있었다. 미숙은 인기 없는 선생님이고, 종희는 왕따다. 함께 무대에 설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두 사람은 무대에 서기 전, 일을 끝내겠다고 다짐하며 종철과 유리의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혹시 모를 무대에 대비하기 위해 연습을 이어간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고맙습니다.’ ‘아니, 천만에.’, ‘고마워요.’라는 대사를 반복하며, 번갈아 서로의 몸을 지탱하는 두 사람. 둘은 연습과 유리, 종철의 사이 이간질을 함께하며 서로의 비슷함에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학교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미숙과 종희. 미숙의 아버지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그 후 어머니마저 미숙의 곁을 떠난다. 종희는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있지만, 생각해보니 엄마 아빠의 임신 스토리(?)가 어딘가 이상하다.



미숙과 종희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공통점은 ‘꿋꿋함’이다. 언젠간 내가 부끄러울 수 있을지언정, 나 자신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미숙은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돼.”라고 외치며 돈을 모으기 위해 교무실에서 숙식을 하고, 건강을 위해 반신욕을 하며 후줄근하지 않은, 통통 튀는 패션을 유지한다. 종희는 동급생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그 아이들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어디서나 당당하고, 숨김없는 말솜씨를 뽐내는 종희의 생활기록부엔 ‘자기애가 강함’이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주변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숙은 가끔 “나도 알아, 내가 별로라는 거!”라고 외치면서도, 다시 자신만의 중심을 잡는다.



기껏 열어젖힌 커튼 앞에 두꺼운 벽이 있어도, 영어학원을 다니는 영어 선생이어도 미숙은 자신을 아낄 줄 안다. 다른 아이들이 싸가지없는 전따라고 해도 종희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미숙은 종철, 은교, 유리의 앞에서 종철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을 다짐하고 교실을 나선다. 그저 매일매일 전화하고 싶었던, 욕심 없는 작은 사랑을 포기한 것이다. 그 순간 ‘찐따와 찐따 애인’팀을 부르는 방송이 다시 들려온다. 종희는 미숙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종희는 “나는 내가 창피해”라며 무대를 피하려는 미숙에게 “난 선생님 하나도 안 창피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숙과 종희는 아이들의 야유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둘만의 무대를 완성한다. 둘의 표정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후련하고 행복해 보인다.


                                                                        

우리 전체적으로 괜찮았어


사실 둘의 무대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미숙과 종희에게 음식물과 쓰레기를 던졌고, 두삿람은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미숙은 우리의 무대가 꽤 괜찮았다며 웃는다. 미숙과 종희를 미워하던 사람들은 둘을 놀리기 위해 ‘찐따와 찐따애인’이라는 팀명으로 몰래 무대를 접수한다. 종희는 그 놀림에 질 수 없다는 듯 무대를 향해 달린다. 그리고 미숙은 그런 종희의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은 그들의 조롱에 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이겨냈다. 미숙과 종희는 나 자신을 창피해하며 어딘가 숨는 게 아닌, 나를 부끄럽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앞에 서서 등을 기댄다.



고3 수학여행, 미숙은 단단한 팔짱으로 자신을 막아선 아이들에게 대적하듯 맨 뒷줄에서 힘차게 도약한다. 그리고 미숙은 유리의 인기에 밀려 중학교 영어교사가 됐을 때도 교직을 포기하지 않고 영어 학원을 등록한다. 그녀는 자신을 계속해서 밀어내는 세상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지쳐 쓰러지기보단 부끄럽고 얼굴이 빨개지는 한이 있어도,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미숙도 알고 있을 것이다. 타고난 사랑둥이와 자신의 차이를 말이다. 유리 선생은 뭐 괜찮은 사람이고, 나는 뭐 별론가?”라는 미숙의 한마디엔 허탈함과 원망이 깃들어있다. 하지만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나라는 인물을 나까지 포기할 순 없다. 더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이 생기겠지.



부끄러움과 여러 감정으로 붉어진 미숙의 얼굴은 밉거나 바보 같아 보이지 않는다. 얼굴이 붉어질 만큼 자신을 아끼려 노력하는 미숙의 모습은 밉기보단 사랑스럽다. 미숙을 보며 ‘얘는 왜 이렇게 나랑 닮은 거야?’싶었다. 나도 안다, 내가 저 타고난 사랑둥이보다 별로라는 거. 누군가는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거, 그리고 나는 예쁜 패키지 속에 포장된 공주 같은 바비 인형이 아니고, 찬장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못난이 인형과 더 가깝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렇다면 나라도 나를 더 아껴야지.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지. 남들이 나를 예쁜 패키지 속에 포장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감싸 안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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