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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Nov 12. 2020

<델마와 루이스> - 벗어나기 위해, 끝까지 가는 거야

[영화 후기,리뷰/왓챠 신작, 여성, 버디 영화 추천/결말 해석]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

개봉일 : 1993.11.27. (한국 기준)

감독 : 리들리 스콧

출연 :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브래드 피트, 하비 케이들, 마이클 매드슨


벗어나기 위해, 끝까지 가는 거야


우리는 친구의 우정 이야기, 또는 여행기를 담은 영화를 ‘버디 무비’라 칭한다. <델마와 루이스>가 나오기 이전, 버디무비는 주로 ‘남자들의 우정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칭하는 단어였다. <델마와 루이스>가 제작된 건 1991년, 남성 서사가 대부분을 이루던 영화계에서 2명의 여자 주인공과 그들의 일탈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니. 정말 파격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칭하기도 한다. 여기서 페미니즘의 사전적 정의는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운동과 이론’인데, 사실 이 영화를 완전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소개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억압하던 사회의 벽을 파괴하는 영화임은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 온갖 참견과 제재 속에 살아온 델마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 두 인물은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2일의 여행을 계획하고, 델마는 처음으로 남편의 곁을 벗어난다. 델마와 루이스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른 휴게소에서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 이후 델마와 루이스의 여정은 평범한 2일의 여행이 아닌 끝나지 않을 추격전으로 변하게 된다.


델마와 루이스는 끝나지 않을 듯 길게 뻗은 도로 위를 달린다.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해방감이 몰려오는 여정 속에서 그녀들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델마와 루이스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내 안에 해방감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 시놉시스


보수적인 남편을 둔 가정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수잔 서랜든).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함께 휴가를 떠난 두 친구는 휴게소에서 그녀들을 강간하려는 한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고, 즐거웠던 여정은 순식간에 끝을 알 수 없는 도주가 되어버린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길목에서 매력적인 카우보이 ‘제이디’(브래드 피트)가 나타나게 되고,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델마’를 지켜보며 ‘루이스’는 조금씩 불안감이 커진다. 한편, 강력범으로 수배가 된 그녀들은 좁혀오는 수사망과 함께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그는 네 아빠가 아니야 델마


델마와 루이스는 일탈을 위한 2일간의 여행을 계획한다. 루이스는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델마는 보수적인 남편 대릴을 만나 이른 결혼을 한다. 현 남편 한 명만을 만나봤다는 델마는 자신을 억압하는 보수적인 남편의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루이스는 잔뜩 주눅 들어있는 델마에게 대릴의 낚싯대를 가져오라며 “네 남편도 하는데 못할 거 뭐 있어?”라고 묻는다.



1박2일의 휴가가 시작되는 날이다. 루이스는 차를 몰고 델마의 집으로 향하고, 델마는 짐을 한가득 챙겨 루이스의 차에 올라탄다. 남편에게는 비밀로 하고, 쪽지만 남긴 채 도망쳐왔다는 델마는 잔뜩 신이나 보인다. 처음으로 남편 없이 떠나보는 여행. 델마와 루이스는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고 길을 떠난다. 하늘은 맑고, 두 친구를 막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게 즐거운 순간이다. 바람이 머리를 헝클여도, 물청소차가 옆을 지나가며 물을 튀겨도 그저 좋다.



완벽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예상대로만 굴러가던가? 날은 루이스의 예상보다 빠르게 저물고, 델마의 앞엔 음흉한 남자 할랜이 집적대고 있다. 대릴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던 델마는 새로운 남자 할랜에게 흥미를 느낀다. 델마는 할랜과 어울리고, 루이스는 두 사람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정말 상상도 못한, 예상외의 사건이 펼쳐진다.


할랜을 살해한 루이스는 델마에게 차를 몰고 오라고 소리친다. 일은 벌어졌고, 되돌릴 수 없다. 신고를 받은 경찰들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몰려들고, 델마와 루이스는 텍사스를 향해 차를 몰기 시작한다.


                                                                        

엿 먹어요


사건이 일어난 직후, 델마는 경찰서로 가자며 눈물을 흘리고, 루이스는 단호하게 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지미를 통해 돈을 구하고, 대릴에게 전화를 건다. 대릴은 여전히 델마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어디에 있냐며 화를 낼뿐이다. 델마는 처음으로 대릴에게 “엿 먹어요.”라며 욕을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자동차에 앉아 울다 번져버린 화장을 고친다. 그 후, 델마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T-버드를 타고 막힘없이 달리는 델마와 루이스의 모습은 평화롭고 즐겁기 그지없다. 경찰에 쫓기고 있을 것이 뻔하지만, 둘은 어딘가 후련하고 행복해 보인다. 할랜을 쏘고, 텍사스를 향해 도주하는 이 여정은 범죄자의 신분으로서 도주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두 사람이 범죄자임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이라는 틀로 자신을 억누르던 사회의 규범을 벗어나 도주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남자를 만나본 적 없이 18살에 결혼한 델마, 웨이트리스 일을 하며 비슷한 매일을 보내고 있는 루이스. 두 인물은 이 여정에서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낀다. 얌전하게 집안일을 하며, 남편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 일상. 여자에게 성희롱을 일삼는 옆 차선 운전자를 애써 무시해야 하는 일상. 함께 술 한 잔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이 성폭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일상. 루이스가 할랜을 쏘고, 몰상식한 트럭 운전사의 트럭을 폭파시키는 순간, 뭉쳐있던 것이 싸악-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속이기에 가능한 참교육(?)이지만.. 델마와 루이스가 부당한 일에 정면으로 맞서는 장면들이 정말 좋았다.



델마와 루이스는 할랜을 쏘면서 범죄자가 된다. 총을 쏜 직후, 델마는 자수를 하자며 눈물을 흘리지만 루이스는 단호하게 자수를 해도 우리의 말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루이스의 예상이 맞았다. 경찰은 급하게 고속도로로 향했다는 T-버드를 쫓기 시작하고, 델마와 루이스의 신분을 알아낸다. 모두가 델마와 루이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둘은 수배자가 된다.



모두가 델마와 루이스를 믿지 않는다. 델마의 남편까지도 말이다.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델마와 루이스를 믿는 인물은 사건 수사를 맡은 할 슬로컴 형사뿐이다. 슬로컴 형사는 할랜이 쓰러져있던 차 트렁크에 델마의 지문이 찍혀있다는 사실에 이상함을 느끼고, 델마와 루이스에게 대화를 요청한다. 그는 루이스의 돈을 훔치고 잡혀온 제이디를 보며 “그 여자들에겐 기회가 있었어.”라고 말하며, 제이디가 그 기회를 망쳐버렸다고 화를 낸다. 슬로컴 형사는 수많은 군 병력들이 델마와 루이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순간에도 발포를 하지 말라며 T-버드를 쫓아 달린다. 만일 델마와 루이스가 슬로컴 형사에게 강간의 위협을 느껴 발포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면 이 사건의 끝은 지금과 달랐을까?


                                                                        

계속 가는 거야


델마와 루이스의 뒤엔 총을 든 경찰들이, 앞에는 그랜드 캐니언이 있다. 앞으로 달리면 끝없는 낭떠러지가 있고 뒤로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3일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여정의 끝이 눈앞에 다가왔다. 깨어있음을 느꼈던 3일, 마지막이지만 최고였던 3일의 휴가. 델마와 루이스는 절대 잡히지 말자고 다짐하며 절벽을 향해 달린다. 그 끝엔 추락이 아닌 영원한 비행이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녀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을 향해 후진을 하는 것이 아닌 자유로의 비행을 택한다. 마지막 비행을 앞둔 델마와 루이스에게 밝은 빛이 내리쬔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남편이에요


델마와 루이스를 이렇게 만든 건 자신들일까, 아니면 그녀들을 통제하고 믿지 않았던 사회였을까? 두 사람이 살인범이자 강도인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다. 되새기고 싶지 않은 텍사스에서의 기억을 갖고 살아가던 루이스는 델마를 해하려는 할랜을 보고 그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총을 쏜 건 분명한 잘못이지만, 할랜을 완전한 피해자라고 말할 순 없다. 델마와 루이스의 일탈은 두 사람을 옥죄던 사회의 규범, 사회가 준 상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의 관점으로 보아도, 사회 속에 눌려있는 한 사람의 관점으로 보아도 좋다. 어린아이를 벗어난지 오래지만, 여전히 나를 옥죄는 사회와 주변 환경 속에서 지쳐가고 있다면 <델마와 루이스>를 보며 잠시나마 현실을 피해 달아나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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