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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Dec 05. 2020

<본 투 비 블루>-'떨쳐내지 못한 본 투 비 블루'

[영화 후기,리뷰/쳇 베이커, 넷플릭스 재즈 영화 추천/결말 해석]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개봉일 : 2016.06.09. (한국 기준)

감독 : 로버트 뷔드로

출연 : 에단 호크, 카르멘 에조고, 칼럼 키스 레니, 토니 나포


떨쳐내지 못한 본 투 비 블루


굴곡진 인생을 그대로 읊어내듯 울적한 느낌의 트럼펫 연주곡과 노래를 남긴 음악가 ‘쳇 베이커’의 일생을 담은 영화 <본 투 비 블루>. 그의 목소리엔 푸른빛이 감돌고, 말하지 못할 비밀이 가득 담겨있는 듯하다. 진한 사랑과 그보다 더 깊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잔뜩 깃든 노래를 듣다 보면 온몸이 푸른빛에 조금씩 젖어드는 느낌이다.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라는 인물의 생애를 담은 전기 영화지만, 쳇 베이커라는 인물을 잘 모르더라도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주인공 쳇 베이커를 맡은 ‘에단 호크’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 위태로우면서 건조하고, 그와 동시에 단단하고 굳건하다. 타고난 천재로 불리던 쳇 베이커가 마약을 하며 망가지는 과정, 순식간에 추락한 천재가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집념을 불태우는 순간.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던 연인 제인과의 행복한 시간. 이 모든 것이 <본 투 비 블루>에 기록되어 있다.



에단 호크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비포 시리즈>의 주인공 제시를 떠올릴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비포 시리즈>의 제시 또는 <내 사랑>의 주인공 에버렛을 연기한 배우’라고 말이다. 근데 본 투 비 블루를 본 후, 그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에단 호크는 <본투비 블루>의 쳇 베이커다. 마치 쳇 베이커의 일생을 함께 지켜본 듯, 에단 호크의 눈빛은 상상이상으로 짙고, 검고, 파랬다. 쳇 베이커의 음악엔 그가 가진 사랑의 색이, 열정의 색이, 집념의 색이, 나약한 마음의 색이 섞여 만들어진 짙은 푸른색이 스며들어있다.




본 투 비 블루 시놉시스


청춘의 음색을 지닌 뮤지션 '쳇 베이커' 모두가 그의 음악을 사랑했지만,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어진 순간 연인 ‘제인’과 트럼펫만이 곁에 남았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도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다 살아보고 싶은 인생이 있다 다시, '쳇 베이커'만의 방식으로...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트럼펫을 불지 못하면 곧 죽을 거라 말하는 트럼펫 연주가(트럼펫터) ‘쳇 베이커’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시절, 마약에 손을 대고 그는 ‘아내와 자식을 버린 약쟁이’가 된다. 화려한 과거를 뒤로한 채 한참이나 트럼펫을 멀리하던 왕년에 잘나가던 연주가 쳇 베이커. 모든 걸 포기하고 나니 남은 건 우울감과 무력감, 눈앞에 널브러져 있는 트럼펫뿐이다.



딕은 꼼짝없이 누워있는 쳇을 다시 카메라 앞으로 데려온다. 쳇과 딕은 새로운 영화를 통해 쳇의 재기를 꿈꾼다. 쳇은 영화를 촬영하며, 전 부인과 많이 닮은 여인 ‘제인’을 만나게 된다. 아주카 제인, ‘과거의 영광’이라는 뜻의 성을 가진 그녀는 쳇의 새로운 뮤즈가 된다.


쳇은 감옥을 벗어나 다시 카메라 앞에 섰지만, 전과 같이 트럼펫을 불 수 없었다. 입에 힘을 줄 수 없는 트럼펫터라니, 손가락을 잃은 피아니스트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제인이 쳇에게 “트럼펫 못 불면 세상이 끝나?”라고 묻자, 쳇은 그렇다고 답한다. 약에 빠지기 이전까지 나의 전부였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악기 트럼펫을 다시 부는 건 ‘쳇 베이커’라는 인물을 다시 전처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져”  “난 자기를 믿어.”


쳇의 뜨거운 집념과 열정을 알게 된 제인은 그의 옆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게으른 천재 쳇 베이커는 애쓰는 아마추어 쳇 베이커가 되었지만, 그는 이전보다 더욱 진실하고 간절하게 트럼펫을 연주한다. 피자집 라이브 공연을 첫 시작으로 쳇은 다시 트럼펫 공연을 시작한다. 어쩌다 보니 손에 쥐어진 헤로인을 보며 갈등하던 그는 “자기를 믿어.”라는 제인의 말을 듣고, 헤로인을 맥주병 안에 넣고 자리를 뜬다.



쳇은 타고난 천재다. 결국엔 음악을 포기했지만, 유능한 연주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 들었던 아버지의 주법을 참고해 ‘본 투 비 블루’를 녹음해 큰 성공을 거둔다. 그에 반해 제인은 타고난 천재가 아닌, 계속해서 애쓰는 아마추어다. 쳇의 전 부인 역을 맡았을 때 제인의 캐릭터는 그저 ‘쳇의 전부인’일 뿐, 극의 중심이 되진 못한다. 오디션 결과는 항상 낙방이었고, 영화의 마지막쯤이 되어서야 겨우 기회를 잡게 된다.



쳇과 제인은 제인의 차에 함께 살며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끝없이 도전한다. 쳇은 딕을 통해 처음으로 세션 녹음을 시작한다. 카우보이 의상을 입고, 작은 볼륨을 가진, 묻어가는 트럼펫 세션맨으로 말이다. 딕과 제인은 다른 세션맨들과 녹음실 마이크 앞에 서있는 쳇을 바라본다. 쳇은 이전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열정적으로 연주를 한다. 한차례 추락을 겪고 다시 만들어낸 그의 연주는 전보다 개성 있고 깊어졌다는 평을 받는다. 녹음실 유리창 너머로 쳇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쳇은 다시 많은 사람들 앞에 설 기회를 잡게 된다.



아버지가 처음 사준 트럼펫의 밸브링이야.
목에 차고 있어, 그래야 안 잃어버리지


운명이 기적적으로 약을 끊은 쳇을 칭찬해 주는 듯, 쳇에겐 기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버드랜드 공연 성사, 제인의 임신까지. 좁은 차 안에서 보내는 밤이지만, 쳇과 제인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린다. 쳇은 아버지가 처음 사준 트럼펫의 밸브링을 제인에게 선물하며 청혼을 한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자 그의 영혼과 같은 트럼펫의 부품, 밸브링을 제인에게 선물했다는 건, 그의 진심과 영혼을 모두 제인에게 맡기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혼자 가면 되지.


이렇게 모든 게 행복하게 마무리될 것 같았지만, 쳇과 제인은 새로운 위기를 마주한다. 공연을 위해 내일 뉴욕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쳇, 내일 있을 중요한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는 제인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다. 쳇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장식장 유리를 깨버린다.



쳇은 제인 없이 무대를 준비하게 되고, 재즈 뮤지션들은 천재의 재기 무대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하지만 뉴욕엔 쳇의 마음을 안정시켜줄 제인도, 약의 유혹을 줄여줄 메타돈도 없었다. 불안에 시달리던 쳇은 다시 약을 찾게 되고, 딕은 쳇을 설득한다. 약은 쳇의 풍부한 영혼을 끝없는 우울의 늪으로 이끄는데, 제인은 그런 쳇의 심경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인물이다.



제인은 쳇이 약을 끊길 바라며 “자기는 맨 정신에서 좋은 연주가 나와.”라고 말하고, 약을 끊으면 청혼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오디션 날짜를 바꿔 쳇의 공연을 보러온 그녀는 다시 약을 선택한 쳇의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밸브링 목걸이를 풀러 딕에게 건넨 후 공연장을 떠난다. 쳇은 무대를 앞두고 자신의 손으로 약을 선택했고, 제인과 쳇의 인연은 쳇의 손으로 깨버린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난 채 바닥으로 떨어진다.



약을 먹은 후 무대에 올라간 쳇은 재기에 성공했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잃는다. 소중한 연인과의 이야기를 나의 청춘을 남기기 위해 음악에 대한 집념을 불태운 쳇이었지만, 그의 집념은 결국 한 꼬집의 헤로인보다 나약한 것이었다. 단단한 신념도, 평생을 바친 꿈도 해로운 흰 가루 한 스푼 앞에 무너져버린다.



그의 음악은 우아하지만 우울하고, 무겁지만 공허하다. 그가 연주했던 음악만큼이나 ‘쳇 베이커’라는 인물의 일생은 참으로 기구했다. 생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도 말이다. 누군가는 그를 천재 뮤지션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약을 벗어나지 못한 문제적 사람으로 기억한다. <본 투 비 블루>라는 자신의 곡처럼 푸른빛을 타고난 쳇 베이커는 자신 안에 깊이 스며든 푸른빛을 떨쳐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오늘은 우울할래”라고 말하는 제인에게 “난 우울하고 싶지 않은데.”라고 답하던 쳇 베이커. 그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마약을 통해서라도 우울이라는 감정을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약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져내린 그도, 그를 나약하게 만든 우울도 모두 원망스러울 만큼, 완벽하게 아름답고 우울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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