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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Dec 12. 2020

<아무도 모른다>- '덤덤하게, 그저 살아가는 아이들'

[영화 후기,리뷰/왓챠, 넷플릭스 일본,서정적인 영화 추천/결말 해석]

                                                                              

아무도 모른다

(誰も知らない, Nobody Knows)

개봉일 :2005.04.01. (한국 기준)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키무라 히에이, 시미즈 모모코, 칸 하나에, 유


덤덤하게, 그저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른이 아닌, 아직 어린 4남매다. 가장 나이가 많은 장남 아키라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아이들의 엄마는 남편의 부재 속에서 아이들을 키워나가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미혼모라는 시선과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아이들. 엄마는 무거운 책임을 벗어나 혼자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그곳에 남겨진다.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생기에 힘을 얻기도 했고, 그에 반해 시시각각 조여오는 현실에 한숨이 나기도 했다. 세상에 태어나 유일하게 알고 있던 어른인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사실 이 이야기가 어른들의 도움이, 기적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다는 건 지레 짐작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해피엔딩도, 진한 슬픔도 벅차오르는 감동도, 극적인 반전도, 기적도 없다. 아이들은 그저 버티고, 의지하고, 살아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과잉된 감정을 전부 배제하고, 아주 덤덤하게 아이들의 일상을 담아낸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기승전결, 인과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렇게 매우 자연스럽고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 이 영화는, 이렇다 할 잡음 없이 보는 이의 마음을 낚아챈다.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아무도 모른다 시놉시스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약간의 돈을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린 엄마 열두 살의 장남 아키라, 둘째 교코, 셋째 시게루, 그리고 막내인 유키까지 네 명의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키라는 동생들을 돌보며 헤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빨리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네 명의 아이들은 감당하기 벅찬 시간들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보내기 시작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지금 가족은 둘뿐이에요.’라는 거짓말 뒤로 캐리어 두 개가 지나간다. 캐리어엔 어린 시게루와 유키가 웅크린 채 숨어있다. 아키라를 제외하고는 존재를 들키면 안 되는 3명의 아이들은 큰소리를 낼 수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엄마는 장남 아키라에게 동생들을 맡기고 생계를 유지한다.



풀잎 냄새가 나는 새 다다미, 햇볕을 쬘 수 있는, 세탁기를 놓을 만큼 쾌적한 베란다. 나름 커다란 2개의 방. 4남매는 새로운 집에 꽤나 만족한 눈치다. 아키라는 엄마를 대신해 장을 보고 동생들에게 밥을 차려준다. 눈이 맵지 않냐는 동생들의 걱정에 가볍게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하는 어엿한 장남. 능숙하게 세탁기를 돌리는 둘째 교코.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동생 둘. 아이들은 집안에 머물며 하루 종일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아키라와 교코는 또래에 비해 꽤나 어른스러워 보인다.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홀로 남겨지기엔 아직 벅찬 나이다. 철이 빨리 들었다 해도 어쨌든 어린아이니까.


                                                                        

엄마,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햇볕이 내리쬐기 전, 이른 시간에 일어난 엄마의 뒷모습이 무겁다. 엄마는 무책임하게 떠난 남편과 빠르게 지나쳐간 남자들이 남긴 책임의 무게를 온전히 지고 있다. 같은 엄마 아래서 자라고 있는 4남매는 모두 아빠가 다르다. 아키라의 아빠는 하네다 공항에서 일하던 사람, 교코의 아빠는 음악 프로듀서, 시게루와 유키의 아빠는 택시 기사, 그리고 자신이 아빠가 아니라고 우기는 남자다. 아이들은 자신의 아빠를 제대로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 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한동안 집을 비울 거야.”라는 메모로 시작된 짧은 이별.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엄마의 메모를 읽고 있는 아키라의 귓가에 다정하게 야구를 하는 부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온도가 적당한 날, 아빠와 야구공을 주고받는 것은 아키라에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다정한 음성이 ‘엄마의 부재’라는 현실을 더욱 명확하게 짚어준다.


아이들을 책임질 능력과 마음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4명의 아이를 낳은 엄마는 결국 영원한 도피를 선택한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던, 아직 어린아이에 멈춰있던 엄마는 짧은 외출을 마친 후, 아이들의 선물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의 손길을 담아 아이들의 머리를 다듬어준 후 집을 떠난다.


                                                                        

산타클로스는 어떻게 혼자 일본을 다 돌지?


엄마는 크리스마스에 돌아온다는 메모와 함께 집을 나간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산타클로스를,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돌아올 엄마를 기다린다. ‘산타클로스는 혼자서 어떻게 일본 전역을 다 돌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는 할 수 있어.”라고 결론을 내린다. 아키라는 하루 만에 일본 전역을 도는 게 가능한 산타클로스가 나타나는 크리스마스 밤엔 엄마도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 오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키라는 엄마의 성이 바뀌었음을 알고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걸 눈치챈다. 하지만 동생들에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엄마에게 세뱃돈을 받아왔다며 거짓말을 한다. 세뱃돈은 시게루와 유키에게 큰 기쁨이 되고, 교코에게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피아노를 사기 위해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오던 교코는 작년에 받은 세뱃돈 봉투에 적힌 엄마의 글씨와 다르단 걸 눈치채고,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단 걸 알게 된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엄마와 점점 떨어지는 돈. 아이들은 조금씩 희망을 잃어간다. <아무도 모른다>에선 붉은빛, 또는 분홍빛을 띤 물건들로 각 인물들의 희망, 꿈을 보여준다. 세뱃돈으로 글로브를 산다고 말하던, 야구선수의 꿈을 가진 아키라는 공터에서 분홍빛을 띤 고무공을 줍게 되고, 나무막대로 그 공을 치며 한참 시간을 보낸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는 교코는 붉은빛의 장난감 피아노를 소중히 보관하고 연주한다. 유키는 오지 않는 엄마를 그리며 엄마의 옷을 붉은색으로 칠한다. 그리고 손목에 붉은색 팔찌를 하고 있던 엄마는 교코의 손에 분홍빛 매니큐어를 발라주고 집을 떠난다. 엄마가 집을 떠날 때 쯤 매니큐어는 바닥에 엎어지고, 옅은 자국만을 남긴다. 교코의 손에 칠해졌던 매니큐어는 ‘엄마가 돌아온다는 희망’이 조금씩 흐려짐과 동시에 서서히 교코의 손에서 사라진다.



아이들은 평생을 집안에서 보낸다. 베란다에도 나가면 안 되고, 햇볕을 쬐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키라는 생일을 맞이한 유키를 위해 특별한 밤 외출을 시도한다. 유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삑삑이 신발을 선택하는데, 신발이 유키의 발에 딱 맞지 않는다. 보통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고 말하는데, ‘보통의 경우’ 많은 부모들은 짧은 주기로 아이들의 신발을 바꿔주게 된다. 하지만 유키는 밖에 나갈 일이 없기에, 엄마도, 유키도 유키의 발이 자란 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발꿈치가 밖으로 삐져나간 삑삑이 신발을 신은 채 아키라와 유키는 역전까지 함께 걸어간다. 그리고 모노레일을 보며 언젠가 함께 비행기를 보러 갈 것을 약속한다.



교코, 시게루, 유키는 항상 문 앞에 서있을 뿐, 문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아이들의 발은 문밖이 아닌 문턱 앞에 멈춰있었다. 아키라는 문밖으로 나올 수 없는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역부족이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단걸 알게 되고, 또래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버림받음을 겪어본 시린 겨울이 지나고, 4남매에게 봄이 찾아온다. 함께 장을 보고, 공터를 뛰고, 빨간 꽃의 열매를 따온 날. 아키라는 유키의 손을 잡고 유키의 이름을 써준다.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왕따 당하던 학생 ‘사키’.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겉을 돌고 있던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는다.



다 닳은 크레용이 바닥에 나뒹굴던 뜨거운 여름. 수도가 끊기고, 아키라는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다. 우리를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한 분노, 현실을 마주한 슬픔이 차오른다. 아키라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사준 주황색 목도리와 엄마의 옷을 던지며 모두 팔 거라 말하지만 교코는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단 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옷장 안으로 숨어든다. 위태로운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정성스레 키우던 화분이 베란다 너머로 떨어지고, 흔들리는 의자 위에 올라가있던 유키가 의자에서 떨어진다.



모든 게 끝났다. 유키는 목숨을 잃었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 소식을 알릴 동전조차도 없다. 아키라는 사키의 도움을 받아 유키가 좋아하던 아폴로 초코를 잔뜩 사고, 유키를 캐리어에 넣는다. 해가 바뀌는 사이, 많이 자란 유키의 발에 맞지 않는 삑삑이 신발. 아키라는 유키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함께 비행기를 보자는 약속을 지킨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남은 동생들의 손을 잡는다. 아빠는 다르지만 같은 엄마 밑에서 태어난 유일한 가족인 동생들, 그리고 사키. 4명의 아이들은 또다시 살아간다. 눈물을 참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이다.



비디오 게임과 장난감,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을 나이. 새로운 이성을 만나 머리와 옷에 신경 쓰고, 첫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볼 나이. 어른스러운 척을 해도 결국엔 엄마의 퇴근을 기다릴 나이. 아키라와 교코, 시게루와 유키, 사키는 모두 그런 나이였다. 하지만 아키라는 공책에 수학 문제를 푸는 게 아닌 사용한 돈과 남은 돈을 헤아리며 숫자를 적는다. 교코는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인형 옷을 갈아입히는 게 아닌, 온 힘을 다해 자신과 동생들의 옷이 머금고 있는 물기를 짠다. 우리가 여기 있음을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침착하고 담담했으나 내 마음은 담담할 수 없었다. 사실, 너무도 쓰리고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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