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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an 04. 2021

<티파니에서 아침을> - '진짜 같은 가짜가 아닌..'

[영화 후기,리뷰/왓챠 신작, 고전, 명작, 로맨스 영화추천/결말 ]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

개봉일 : 1962.10.01. (한국 기준)

감독 : 블레이크 에드워즈

출연 : 오드리 헵번, 조지 페파드, 패트리샤 닐, 미키 루니


진짜 같은 가짜가 아닌, 진짜 나를 찾게 해준 사랑


세기의 연인이자 50-60년대 영화계의 가장 강력한 아이콘. 그리고 현재까지도 아름다움과 클래식 스타일의 대표 인물로 통하는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 <티파니에서 아침을>.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1962년(우리나라 개봉 기준) 개봉작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세련된 느낌을 준다. 주인공 홀리의 의상, 헤어스타일, 인테리어, 음악. 모든 게 유치하거나 촌스럽지 않다. 명작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간혹 불편한 느낌을 주는 차별적인 설정이 등장하긴 하지만, 제작 시기를 감안해 보면..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 않나 싶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검은색 롱 드레스와 긴 장갑, 얼굴의 반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걸친 주인공 홀리가 택시에서 내리며 시작된다. 뉴욕 시내에 위치한 티파니 보석점 앞에 선 홀리는 정갈한 글씨가 박혀있는 간판을 올려다본다. 홀리는 아름다운 외모와 스스럼없는 성격, 마음을 살살 녹이는 말씨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리고 그를 통해 돈을 번다.


홀리는 돈 많은 남성을 만나 신분 상승을 하겠다는 대찬 꿈을 갖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꿈꾸는 가벼운 여성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홀리는 나를 지탱하고 누군가와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남고 있었다. 언제나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을 올려다보면서 말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시놉시스


소매가 치렁한 이브닝드레스, 얼굴을 반이나 가린 검은 안경. 그녀는 티파니 보석상을 활보하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보석을 바라본다. 한 손에 빵을 들고, 우아한 몸짓으로 새벽 거리를 리드미컬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이름은 홀리. 사실 그녀는 텍사스 농부의 아내로 어떻게 그녀가 맨하탄에 정착했는지 알 수 없다.


가난한 작가인 폴은 홀리의 이웃으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는 부자인 여인의 후원을 받으며 곤욕스러운 애인 노릇을 하던 중, 귀엽고 매력적인 홀리에게 점차 호감을 갖게 된다. 마음에도 없는 중년 남자가 귀찮게 군다며 한밤중에 폴의 침대 속으로 들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팔에 안겨 잠드는 그녀의 모습에서, 길 잃은 고양이를 귀여워하고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기타를 치며 "Moon River"를 흥얼거리는 모습에서, 폴은 홀리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뉴욕 시내 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는 홀리는 집안을 정돈하지 않는다. 아니, 정돈하지 않는다기보단 본인의 집에, 물건에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온 마음을 담아 화장을 하고 머리를 묶지만, 홀리는 자신의 아름다운 신체 외에 다른 건 신경 쓰지 않는다. 홀리가 원하는 건 돈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그녀는 가끔씩 마음이 심란해질 때면 티파니 보석점으로 향한다. 안 좋은 일이 하나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설레는 표정을 한 사람들만 가득한 비싼 보석점으로.


                                                                        

이사 오신지 얼마 안 됐나 봐요.


폴이 문을 열지 못해 홀리의 도움을 받은 날. 폴은 전화를 빌려달라고 부탁하고, 홀리는 스스럼없이 문을 연다. 집이 좋다는 인사치레가 끝나고, 풀이 가장 먼저 물어본 건 “이사 오신지 얼마 안 됐나 봐요.”였다. 가구도 얼마 없고, 사람이 사는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홀리의 집은 오버를 조금 하자면 마치 스튜디오 같은 느낌이 든다. 허전한 집안에 살고 있는 홀리와 이름 없는 고양이. 홀리는 강가에서 헤매고 있던 치즈 색의 고양이를 보며, 헤매고 있는 자신과 비슷하다는 동질감을 느껴 집으로 데려온다. 텅 비었지만 길보다는 안전한 곳. 고양이는 안전한 집을 얻었지만 아직 이름은 갖지 못했다.



홀리는 “전 이름을 지어줄 자격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홀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지 못한다. 나조차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나의 이름조차 진실이 아닌데, 본래 다른 이름을 가졌을지도 모를 생명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를 자격이 있는 걸까. 홀리는 그렇지 않은 척 하지만, 지독한 우울과 슬픔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홀리는 “난 이름을 지어줄 자격이 없다”, “우울한 건 비참하다는 것이다.”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폴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돈을 많이 벌면, 안정적인 집과 나 자신을 찾으면 그땐 집안에 가구도 들여놓고, 고양이의 이름도 지어주겠노라고.



집안 냉장고에 들어있는 분홍색 발레슈즈처럼, 홀리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범죄자 면회를 가며 돈을 벌고,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며 돈을 번다. 쉽게 말하면 ‘콜걸’이다. 딱 붙는 옷과 화려한 장신구들. 홀리는 난폭한 아래층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화장실 문턱을 넘으려고 하지만 불편한 원피스가 홀리의 발목을 잡는다. 홀리는 원피스를 벗고 무엇보다 편안한 샤워가운을 입고 남자의 집을 탈출해 폴의 집으로 향한다. 그녀는 어쩌다 보니 창 너머로 폴의 모습을 보게 됐고, 어쩌다 보니 창틀을 넘었다. 그리고 폴의 집에서 그 어떤 날보다도 편안한 밤을 보낸다.



폴은 홀리에게 프레드와 같은 존재다. 프레드는 홀리의 동생으로, ‘홀리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다. 홀리는 폴과 함께 자리 잡고 살기 위해 돈을 번다. 돈을 많이 벌어야 군에 있는 동생이 복무를 마칠 수 있고, 함께 살 집을 구할 수 있다. 돈을 모아 멕시코로 건너가 사는 것. 홀리는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치열하게 살아간다. 사람들이 홀리를 보며 어떤 상상을 하든, 얼마큼의 큰 외로움이 밀려오든, 계좌의 돈이 얼마가 남았든 말이다. 프레드는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이자 홀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유일하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다. 폴은 그런 프레드와 닮았다. 홀리는 폴을 보며 내 동생 프레드와 닮았으니 프레드라고 부르겠다고 말한다. 프레드와 정말 외모가 닮아서인지, 존재의 의미가 비슷하게 느껴진 것인지는 홀리만 알고 있겠지만.



폴은 2-E와 관계를 유지하며 간간이 돈을 번다. 유부녀지만 그녀는 경제적 능력이 있고, 폴을 향한 얄팍한 애정을 돈으로 표현한다. 56년 이후로(영화 제작 시기인 61년을 기준으로) 대략 5년 정도 새로운 작품을 내지 못하고 있던 폴은 언젠간 뜨겁게 타올랐던 열정을 모두 내팽개친 채 손을 놓고 있었다. 그의 타자기에 먹끈조차 끼어있지 않았다. 홀리는 다음날 폴에게 새 먹끈을 선물하고, 폴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폴에게 홀리는 오래 방치되어있던 타자기에 새로 끼워진 먹끈처럼, 새로운 시작의 동기와 힘을 전해준 사람이었다.


                                                                       

홀리는 가짜요. 한편으론 맞고.


홀리는 가짜와 진짜가 뒤섞여 만들어진 인물이다.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 꼭 돈을 모아야하는 홀리, 동생과 함께 갈 곳이 없어 고라이틀리와 결혼했던 14살 소녀 룰라매이. 미국의 50세 이하 부자 순위를 알고 있는 홀리, 남편에게서 도망친 룰라매이. 홀리는 이제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기력도, 자신을 찾을 여력도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우울해질 때면 티파니에 가는 것, 그리고 내가 룰라매이라는 말보단 우울하다고 돌려 말하는 것뿐이다.


“난 룰라매이가 아니에요. 이젠 아니에요.” 고라이틀리를 향해 단호하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돈이 필요했던 14살 소녀 룰라매이는 여전히 돈이 필요한 아름다운 여성, 홀리가 되어있었다.



미국의 젊은 부호라고 믿었던 러스티가 알고 보니 엄청난 빚이 있단 걸 알고 실망한 날. 홀리는 폴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는 하루’. 홀리는 폴과 함께 티파니로 향한다. 원고료와 10달러를 들고 있던 폴은 홀리에게 선물을 하나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홀리는 원고료는 손댈 수 없다며, 10달러 내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물건, 전화 다이얼 핀을 받기로 한다. 모든 걸 다 가진 부자들이 더 이상 살 물건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소유하는 다이얼 핀. 지금 홀리와 폴에겐 이것이 당장 살 수 있는 최대치의 물건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이얼 핀을 구매한 폴은 장난감 상자에서 나온 반지를 티파니에 맡기며 각인을 부탁한다. 직원은 모두가 친절하고 좋다는 홀리의 기대와 믿음처럼, 친절하게 반지를 받아든다.



함께 공공 도서관에 가서 폴의 책을 찾아보고, 가게에서 가면을 도둑질해보고, 가면을 쓴 채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간다. 홀리는 폴을 프레드라 칭하며 가장 친한 친구라 말하고, 폴은 홀리에게 애정을 느낀다. 기댈 곳 없던 홀리에게 폴은 유일하게 마음 놓고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친구였고, 폴의 도움을 받기 위해 창틀을 넘는다. 홀리는 사랑이란 진심을 쫓기엔 현실을 살아가는 것조차 벅찼기에, 사랑을 찾아 결혼을 하기보단 돈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결혼 상대를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폴 또한 누군가의 경제적 지원과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홀리를 만나며 새로이 글을 쓰고 그녀를 도우며 행복과 사랑을 느낀다. 폴은 홀리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2-E와의 결별을 결심한다.


                                                                       

다른 쥐나, 슈퍼 쥐나 상관없다 생각해요?


폴은 홀리에게 진심을 전하려 하지만, 홀리는 폴을 피하기 시작한다. 진짜 부자인 남미인 호세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홀리에게 진짜 사랑을 이야기할 여유는 없었다. 폴은 티파니에서 찾아온 각인 반지를 주머니에 넣은 채 홀리를 지켜볼 뿐이다. 프레드의 사망 전보가 전해진 날, 슬픔에 가득 찬 홀리는 집안 물건을 내던지며 절규한다. 호세는 그런 홀리를 내버려 둔 채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폴은 홀리를 꼭 안아든다. 명성과 위치만을 생각하는 호세는 “경찰이 올까요?”라고 걱정할 뿐, 프레드의 소식엔 관심이 없다. 홀리의 침실은 어둠으로 가득 찬다. 홀리는 정말 이런 남자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걸까?



프레드가 군대에서 사망하고, 홀리에겐 가구가 몇 개 들어찬 뉴욕의 아파트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호세, 조금 멀어진 폴만 남았다. ‘아마도’ 결혼할 사이인 호세와 관계를 유지하며, 홀리는 조금씩 변화한다. 전처럼 머리를 다듬지도, 불편하고 화려한 옷을 입지도 않는다. 비어있던 집안엔 가구가 몇 개 늘어났고, 홀리는 요리를 시도한다. 홀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 폴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려 하지만 펄펄 끓던 냄비가 펑- 폭발해버린다. 폴은 황당함에 웃고 있는 홀리에게 밖에서 밥을 먹자고 말한다. 이 장면을 보며 홀리가 애써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너무 짠했다. 텅 빈 개수대와 간단한 간식거리, 정리되지 않은 냉장고. 이게 내가 느낀 홀리의 첫 느낌이었다. 하지만 홀리가 호세와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폴이 다시 만난 홀리는 너무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근데, 이 달라진 모습이 ‘진짜 홀리’를 찾았다기보단, 호세와 결혼하기 위해 만들어낸 진짜 같은 가짜의 모습이란 느낌이 드는 건 왜였을까.


                                                                       

난 못할 것 같아요.


샐리 토마토를 면회하며 돈을 벌던 홀리는 마약거래 암구호 전달책으로 기소된다. 버먼은 홀리의 보석금 만 달러를 지원하며 익명으로 할 것을 말한다. 자신의 명예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래를 약속할 것만 같았던 호세는 기소된 홀리를 모른체하며 가족과 명성이 중요하니 자신을 잊어달라고 말한다. 홀리는 덤덤한 척 다시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담배를 입에 물지만, 호세의 편지를 들고 손을 벌벌 떨뿐이다. 호세의 편지 내용을 전해 들은 홀리는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며, 여기가 싫어졌다고 말한다. 폴은 여전히 홀리를 걱정하며 택시 옆자리에 타있지만, 홀리는 고양이를 길가에 내려놓고 막무가내로 브라질로 떠나겠다고 말한다.



폴은 소유를 거부하며 떠나겠다는 홀리에게 지쳐 “몇 개월 동안 갖고 다녔지만, 더는 원치 않아”라고 말하며 티파니의 각인이 박힌 반지를 홀리에게 던지듯 전하고 떠난다. 홀리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울먹이며 반지를 껴본다. 값비싼 보석이 올라간 반지는 아니지만, 홀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티파니의 각인이 새겨진 반지. 반지의 값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새겨진, 홀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티파니의 각인이었던 것처럼, 홀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이 아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진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홀리는 길에 내려놓았던 고양이를 다시 안아들고 폴에게 향한다. 폴은 홀리의 시간을 돈으로 사려고 한 적 없는 유일한 남자, 홀리를 그저 욕망의 대상이 아닌 도와주고, 함께 하고픈 대상으로 봐준 남자였다. 둘은 미국에서 제일 가는 젊은 부호도 아니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다. 티파니에 들어가 값비싼 반지를 척척 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만일 다시 마약 운반책으로 오해를 받는다 해도 만 달러의 보석금을 쾌척할 수도 없지만, 폴과 홀리는 자기 자신과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 홀리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신분 상승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걸 얻었으니 이제 그녀가 고양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행복해지기만을 바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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