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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an 14. 2021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반대편에서 오는 끌림'

[영화 후기,리뷰/ 왓챠 로코 영화 추천/결말 해석]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개봉일 : 1989.11.18. (한국 기준)

감독 : 로브 라이너

출연 : 빌리 크리스탈, 멕 라이언, 캐리 피셔, 브루노 커비


반대편에서 오는 끌림에 대하여


첫 개봉 이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로코의 정석이라고 불리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나에게 이 영화는 겨울이 다가오고, 크리스마스를 지나쳐갈 때쯤이면 자연히 떠오르는 영화 중 하나다. 처음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영화를 알아갈 때쯤, 난 주로 80-00년대 영화를 찾아보곤 했다. 그리고 그 영화 속엔 금발과 얄쌍하고 아름다운 코를 가진 배우 ‘멕 라이언’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프렌치 키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나에게 과도한(?) 환상을 심어주었고, 나는 로맨스란 것의 정의를 영화로 배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 이건 현실 로맨스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현실 연애는 생각만큼 달달하지 않더라.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이런 식의 환상과 아름다운 결말이 곁들여진 로코 영화가 생각날 때가 있다.



어른 흉내가 아닌 이제 진짜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처음으로 만난 해리와 샐리는 함께 뉴욕으로 떠난다. 마음 맞춰 같이 가는 건 아니고, 그저 가는 길이 같아서 동승하게 된 두 사람은 18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 .이 아닌 ‘이 사람 애인이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감정을 느낀 채, 서로의 인생을 살기 위해 다른 길로 향한다. 그리고 5년 후, 또 5년 후 시간이 지나 해리와 샐리는 피하고 싶은 사람에서 친구가 되고,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이성친구. ‘이성끼리도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비슷한 고민을 해봤다면, 해리와 샐리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시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놉시스


대학 졸업 후 뉴욕행을 함께 하게 된 해리와 샐리.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명제로 두 사람은 설전을 벌이고, 성격도 취향도 정반대인 서로를 별종이라 생각한다. 뉴욕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헤어진다.

몇 년 뒤, 우연히 서점에서 재회한 두 사람. 샐리는 연인과 이별했고 해리는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았다. 두 사람은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비로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어느 날 샐리는 헤어진 연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고 뒤늦은 이별의 아픔에 슬퍼한다. 해리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안아주고 위로의 키스는 뜻밖의 하룻밤으로 이어지는데… 다음 날 아침, 우린 친구일까, 연인일까?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사랑의 몸짓을 나누고 있는 친구 아만다와 그의 남자친구 해리의 사이로 샐리가 등장한다. 보고 싶을 거야, 가는 길에 연락해.”라며 진한 애정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샐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클랙슨을 울린다. 해리는 서둘러 샐리의 차에 탄다. 그게 둘의 첫 만남이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친구의 남자친구가 뉴욕으로 간다길래 태워다 주는 길. 샐리는 18시간을 운전해야 하니 3시간 동안 6교대로 운전하거나, 거리를 정해 운전하자며 칼같이 계획을 세워온다. 그에 반해 해리는 마치 소풍을 가듯 포도 한 송이를 물고 우물거리고 있다. 샐리는 해리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기에 스스럼없이 처음 보는 여자에게 매력적이라고 말하며 수작을 부리다니.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남자다. 해리도 마찬가지다. 이 인사치레 같은 말 한마디에 이토록 심각하게 반응하는 여자라니. 우선 사과는 했지만, 이해는 할 수 없다.


해리와 샐리는 둘 사이에 붕- 떠있는 이런저런 주제를 잡아끌며 대화를 이어간다. 주제를 바꿔봐도 두 사람은 공통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고, 하다못해 음식을 주문하는 스타일조차 다르다. 해리와 샐리의 의견 차이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주제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뉜다. 지독히 매력 없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성 간의 친구는 없다는 해리, 관계를 나누지 않고도 사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샐리. 두 사람은 서로의 의견을 단 한구석도 이해하지 못한 채 뉴욕에 도착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미련도 없이,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난다.



근데, 운명이란 게 참 개구지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조와 키스하고 있는 샐리 옆으로 해리가 지나간다. 심지어 조와 해리는 같은 건물에 살았던, 친한 사이라는 사실. 샐리는 5년 전 해리와 사귀던 친구 아만다의 이름은 순간 기억 못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해리의 말은 기억하고 있었다. 해리의 그 한마디가 깊이 남을 만큼, 샐리는 그의 말을 곧 죽어도 이해할 수 없었나 보다. 해리와 샐리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현재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해리는 두 쪽 다 임자가 있을 땐 친구가 가능하다며 샐리를 설득하지만, 샐리는 여전히 해리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 5년이 지나간다. 30대에 들어선 해리와 샐리는 전보다 안정적인 어른이 되어있을듯했지만, 해리는 바람 핀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았고, 샐리는 결혼을 원하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우연히 다시 마주친 서점에서 두 사람은 5년 전처럼 각자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드디어! 친구가 된다. 뉴욕이라는 넓은 도시에서 5년을 주기로 2번이나 마주치다니. 운명은 운명인가 보다. 이건 친구든 연인이든 무엇이든 되어야 할 운명이 아니었을까


해리에게 샐리는 자고 싶지 않은 유일한 여자. 샐리에게 해리는 누군가와 같이 있는 느낌이 그리울 때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남자였다. 10년이란 시간은 샐리의 마음을 유하게 다듬어냈고, 두 사람은 이제 싸우지 않고 함께 카사블랑카를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다른 사람 사귀는 데 몇 달이 걸릴지 모르겠다는 샐리와 잊지 못해도 잠은 잘 수 있다는 해리. 이른 시간에 잠드는 샐리와 4시까지 못자고 TV에 의지하는 해리. 두 사람은 양쪽으로 나누어진 화면처럼 명확히 다른 취향과 생활패턴을 가졌지만, 그 다름이 또 다른 편안함이 되어 서로를 의지하게 만든다.


                                                                        

대체 무슨 사이야? 


해리와 샐리는 무슨 사이일까. 그저 친구라고 하기엔 꽤나 깊고, 사랑이라 하기엔 섣부르다.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재밌고, 상대의 존재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나랑 많이 다른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그 다름이란 것도 이제는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지나간 사랑 이야기, 현재의 고민들을 모두 공유하는 사이. 그냥 이성인 친구일까. 정말 이성인 걸까? 해리와 샐리는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사고, 그해의 마지막 날 서로의 뺨을 맞대고 춤을 춘다. ‘해피뉴이어!’를 외치며 애정을 나누는 커플들 속, 두 사람은 머쓱한 포옹을 나눌 뿐이다.



서로의 친구인 제스와 마리를 불러 함께 식사를 하던 밤. 대각선에 앉은 해리와 샐리에게 제스와 마리 사이에 호감 가득한 눈빛이 흐른다는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해리는 샐리를, 샐리는 해리를 본인의 친구에게 소개시해 주려고 했으나, 어쩌다 보니 그 자리는 서로의 미묘한 감정을 한층 더 부가시키는 자리가 되었다. 제스와 마리는 빠르게 미래를 약속했고, 해리와 샐리의 사이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샐리, 헤어진 연인에 대한 감정을 완벽히 드러내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해리. 두 사람은 가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꼼꼼하고 이성적인 샐리와 감정적인 해리. 두 사람의 마음이 온전히 맞으려면 샐리 또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아야 했다. 해리는 항상 샐리에게 다가갔고, 수작이든 우정이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다. 샐리는 그런 해리의 모습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샐리가 사랑에 있어 진실한 감정을 내비친 건 전 애인 조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 날이었다. 울먹이는 샐리의 전화를 받은 해리는 지금 가겠다며 샐리의 집으로 달려간다. 해리는 “결혼하기 싫은 줄 알았는데 나랑 하기 싫은 거였어.”라며 엉엉 우는 샐리를 감싸 안는다. 그렇게 같은 밤을 보낸 두 사람은 황급하게 그날의 기억을 정리한다. 이성 사이엔 친구가 없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우리 사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함께 있으면 즐거운 친구, 매력적이고 멋진 친구. 하지만 너무도 소중해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두려운 친구. 해리와 샐리는 한바탕 크게 다투고 연락을 끊는다. 다시 돌아온 연말, 이전해 해리와 샐리는 “내년에도 혼자면 연말을 함께 보내자”고 약속했지만, 샐리는 여전히 해리의 사과를 받아줄 마음이 없다. 샐리는 마리를 따라 억지로 오게 된 연말 파티에서 지루함만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드디어 사랑이란 단어를 명확히 정의한 해리가 나타난다. 마음을 정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사랑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해와 함께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소스 뿌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만난 지 12년 3개월, 사랑을 확인한지 3개월 만에 해리와 샐리는 결혼하게 된다. 둘의 결혼식에 사용된 코코넛 케이크는 소스를 뿌리지 않았다. 드레싱은 따로 준비해달라고 주문했던 샐리의 취향에 맞춘 결정이었다. 해리와 샐리는 이제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사이가 됐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엔 여러 부부의 인터뷰가 나온다. 서로가 비슷해서 사랑하게 된 부부, 너무 달랐지만 그를 이해하게 된 부부. 누군지도 제대로 모른 채 결혼했지만, 운명처럼 맞아떨어진 부부. 각자 다른 환경과 인연으로 만난 부부들은 각자의 사연과 추억을 간직한 채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 해리와 샐리도 부부가 된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고, 다음엔 내 애인이 아니라 다행이었고, 다음은 소중한 친구였고, 그다음엔 사랑이 된다. 사랑이 언제부터 찾아왔는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사랑이란 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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