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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an 17. 2021

<미드소마> - '흔들리는 존재의 틈을 파고드는 광기'

[영화 후기,리뷰/ 왓챠 공포,미스터리 영화 추천/결말 해석]

                                                                             

미드소마 (Midsommar)

개봉일 : 2019.07.11. (한국 기준)

감독 : 아리 에스터

출연 : 플로렌스 퓨, 잭 레이너, 윌 폴터, 윌리엄 잭슨 하퍼, 빌헬름 브롬그렌


흔들리는 존재의 틈을 파고드는 광기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과 하루 종일 어둠이 찾아오지 않는 백야. 흰옷을 입고, 머리에 화관을 두른 사람들은 무표정, 또는 기묘한 웃음을 흘리며 춤을 춘다. 90년에 한번, 9일 동안 진행된다는 하지제에 초대된 외부인들은 마을 사람들이 건네는 음료와 약을 받아들고 작은 공동체에 섞여든다.


<미드소마>의 포스터나 스틸컷들을 보면 이 영화가 왜 공포영화인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공포영화가 흔히 보여주는 어두운 이미지나 호러스러운 분위기 하나 없이, 그저 작은 시골마을 공동체의 모습과 특이한 문화, 순백색의 옷들로 가득하니 어디서 공포를 느껴야할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영화 중간에 자극적인 이미지가 나오긴 하지만, <미드소마>는 시각, 청각적인 공포보다는 심리적인 공포를 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가장 약해졌을 때, 불안한 상태에 갇혀있을 때,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분노에 빠져있을 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게 되고 그것이 옳은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쉽게 휩쓸리게 된다. <미드소마>는 사람의 가장 약한 면을 들춰낸 후, 그에 광기와 믿음을 들이민다. ‘흔들리는 내 마음을 치유해 줄 꽃길 같은 축제’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 축제엔 이미 잘못 맞춰진 조각들로 이뤄진 믿음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미드소마 시놉시스


한여름, 낮이 가장 긴 날 열리는 미드소마에 참석하게 된 친구들. 꽃길인 줄 알고 들어간 지옥길,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모든 게 깜깜해. 잘 있어.


<미드소마>의 주인공, 대니는 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의 생을 전체적으로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혈육들이 모두 한순간에 이승을 떠나는 것보다 힘든 일은 없을 테니..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일 거라 감히 추측해본다. 대니의 동생 테리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고, 대니는 위태로운 동생을 지켜보며 함께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하고, 불안하다 싶으면 든든한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에게 전화를 건다. 크리스티안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그녀의 전화에 지쳐간다. 크리스티안의 친구인 마크, 조쉬는 크리스티안을 보며 1년째 헤어짐을 유예하고 있지 않느냐며 얼른 헤어지라고 말한다. 사랑보다는 정 또는 의무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커플은 언제 갈라서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여자친구와의 이별이라니.. 두 사람의 이별은 이렇게 한번 또 유예된다.


다행히도 대니는 크리스티안에게 의지하며 조금씩 일상생활을 찾아간다. 크리스티안은 논문 주제를 정하기 위해 친구 펠레의 고향인 스웨덴행을 결정한다. 크리스티안과 친구들은 조사와 동시에 여행을 즐길 생각에 들떠있다.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대니는 크리스티안에게 또 한 번 실망하고, 크리스티안은 싸움을 피하기 위해 원래 함께 가려고 했다며 둘러댄다. 크리스티안이 친구들에게 “진짜 같이 갈건 아니지만, 대니도 같이 가자고 말해놨어.”라고 말한 후, 마크는 크리스티안과 함께 자리를 피하고 대니는 펠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마크와 조쉬는 대니가 동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살짝 당황한 듯 보이지만, 펠레는 밝은 표정으로 대니에게 “너한테도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거야.”라는 말을 건넨다. ‘왜 펠레만 유독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걸까- 원래 가장 착한 인물인가?’라고 생각했으나, 펠레가 대니의 동행을 반긴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네가 친구들을 다 세뇌시켰어.


헬싱글란드로 향하는 길, 대니는 하지 축제와 론 문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며 펠레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친구들을 다 세뇌시켰어.” 물론 이때까진 장난이었을거다. ‘모두 너의 마을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있어.’정도의 의미로.


대니의 한마디는 곧 현실이 된다. 헬싱글란드로 향하는 도로의 상하가 뒤집히고, 대니와 친구들의 차가 보인다. ‘헬싱글란드’라고 적힌 현수막을 지나치자 화면의 상하가 다시 뒤집힌다. 그렇게 하늘과 땅이 한번 뒤집힌 후 도착한 마을. 펠레가 자란 그 마을 공동체는 현실적인 공동체와는 반대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똑같이 맞춰 입은 흰옷과 웃음기 없는 표정. 환영의 의미로 건네는 약. 밤 9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곳. 꽃이 가득 피어있고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친절하다. 영화의 초반, 대니와 크리스티안이 만나는 시간은 대부분 밤이었고, 대니의 집안은 항상 어두워 스탠드 조명을 켜놓은 상태였지만 호르가 마을의 분위기는 대니의 집과는 정반대다. 항상 밝고, 넓은 들판엔 형형색색의 꽃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이 마을은 대니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가장 뜨겁고 밝은 여름날, 마을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축제를 즐긴다. 축제 첫날 의식은 ‘절벽’이다. 호르가 마을에선 사람의 인생을 4계절로 나눈다. 청소년기는 봄, 청년기는 여름, 중년기는 가을, 스승이 되어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장년기는 겨울. 그렇게 72세가 되면 죽음을 맞이한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호르가 마을 사람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72세가 최대였고, 그 이후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신성하지 않은 일로 취급된다. 대니와 친구들, 뉴욕에서 온 사이먼과 코니는 자살과 살인 의식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숙소로 돌아온 대니는 당장 이 이상한 마을을 떠나려고 하지만 펠레의 설득과 논문을 이유로 더 머물러야 한다는 크리스티안의 의견에 휩쓸려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마을을 떠나야 한다 vs 떠날 수 없다는 문제로 말다툼을 하던 밤, 대니가 크리스티안의 팔을 애절하게 붙잡는 장면이 있다. 순간 대니가 얼마나 크리스티안을 의지하고 있는지, 그와의 관계에 집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대니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크리스티안뿐이었다.


                                                                        

집에 잘 왔어요.


오드 사제는 마을에 들어온 대니와 친구들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집에 잘 왔다고. 외지인이 아닌 가족(또는 제물..)이 될 거라는 미래를 암시하듯 말이다. 호르가 마을의 공동체는 여느 마을 공동체와는 다르다. 우리 집, 다른 집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아이를 키우고,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한다. 누군가는 의사로 근무하고 돌아와 마을 사람들을 치유하고, 누군가는 리더를 맡아 사람들을 이끈다. 펠레는 어릴 적 화재로 부모님을 잃고 이 공동체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가 가족이라고. 그렇게 호르가 마을 사람들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여신이라 칭하는 ‘이미르 신’을 숭배한다. 강가에 지어진 노란색의 성전엔 성서가 보관되어 있고, 사람들은 제물을 바친다. 아주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관계없이.


                                                                        

근친상간 문제가 생기진 않나요?


호르가 마을과 마을의 하지 축제를 주제 삼아 논문을 작성하기로 한 크리스티안은 본격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그 질문 중 하나가 “작은 공동체인데, 근친상간 문제가 생기진 않나요?”라는 것이었다. 장로는 그에 대해 근친상간 문제는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외부인을 초대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근데, 남녀 간의 관계와 아이 이야기를 들으며 호르가 마을을 둘러보니 어딘가 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여자들 무리는 볼 수 있었으나, 아이의 아빠가 될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을에 남자가 있긴 하지만, 그 누구도 한 여자와 쌍을 이루거나 아이의 아빠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궁금증은 영화의 후반부에 와서 해결됐는데.. 호르가 마을이 마을의 비밀을 유지하면서도 혈통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마을 내에서 종족 번식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땐 외부인을 초대해 남, 여 관계를 맺고 그 남자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이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제물이자 외부인은 크리스티안이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크리스티안에게 마야와의 관계 허가가 떨어졌으니 마야와 관계를 맺어달라 말한다. 크리스티안은 당연하게도 그 제안을 거절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크리스티안의 의견을 존중할 리가 없다. 크리스티안의 잔에만 담긴 주황빛의 음료와 마야의 음모가 든 파이는 호르가 마을 사람들이 그려둔 사랑과 잉태의 과정을 담은 그림과 딱 맞아떨어진다. 영화의 초반, 마을을 둘러보던 사이먼과 코니가 발견했던 그 그림 속 사랑의 단계와 말이다.


                                                                        

우린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춘다.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가 왕관을 쓸 것이다.


크리스티안과 조쉬가 논문 주제로 다툼을 벌이고, 마크가 여자에 홀려있을 동안 대니는 점점 더 불안에 빠진다. 대니는 조쉬에게 수면제를 빌리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만큼 심한 불안감에 휩싸이고, 악몽을 꾼다. 머리가 깨진 노인, 그 절벽 앞에 죽어있는 가족들, 집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 나를 버리고 가는 친구들. 대니의 불안감은 정점에 치닫고 있었고, 크리스티안과의 갈등이 반복되며 속된 말로 ‘곧 미칠듯한’ 상태가 된다.


조쉬와 마크가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은 크리스티안을 데려간다. 홀로 남은 대니는 마을 여자들과 함께 축제 의상으로 갈아입고, 그들의 대회에 참가한다. 노란 빛깔이 나는 약을 탄 음료를 한 잔씩 나눠 마신 사람들은 반쯤 정신을 놓은 듯 웃으며 반복해서 춤을 춘다. 대니 또한 환각을 보며 홀린 듯 춤을 따라춘다.



여행을 떠나기 전, 호르가 마을의 축제와 5월의 여왕을 설명해 주던 펠레는 대니에게 “넌 이걸(5월의 여왕) 하기 위해 가는 거고”라는 말을 넌지시 던진다. 펠레의 말처럼 5월의 여왕을 뽑는 이 대회는 마치 대니를 위해 만들어진듯하다.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떨어져 나가거나 쓰러지는 여자들 사이에서 대니는 1등을 차지해 5월의 여왕이 된다. 여왕이 된 대니는 마을 사람들이 들고온 가마에 올라타고, 화려한 화관을 쓴채 풀로 덮여있는 의자에 앉는다. 마을의 옷, 마을 사람들이 씌워준 화관과 식탁 정중앙에 위치한 의자까지. 대니는 이제 특이점을 찾아볼 수 없는, 마을과 완전히 동화된 모습이 된다.


                                                                        

우리 이제 가족이에요.


마을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었던 사이먼, 코니 커플과 대니, 크리스티안, 조쉬, 마크는 마을의 옷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생활한다. 이들이 입은 옷은 밖에선 그리 눈에 띌 옷이 아니었지만, 흰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 껴있으니 기다란 식탁 끝에 앉아있어도 단번에 구분될 만큼 눈에 띈다. 이 영화에서 호르가 마을의 옷을 입는 행위는 곧 그들의 가족이 된다는 뜻이다. 호르가 마을 사람들은 외부인과 마을 사람들을 성전에 바칠 때 모두 호르가의 옷을 입게 한다. 그리고 대니를 축제에 참가시킬 때, 크리스티안이 마야와 관계를 맺기 전에도 그들의 옷으로 환복시킨다. 크리스티안은 잠시 옷을 입었다가 관계가 끝난 후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자각한 듯 황급히 뛰어다니다가 친구들의 시체를 마주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힌다. 대니는 호르가의 옷을 입고, 그들이 묵직하게 엮어놓은 꽃에 묻힌 채 여왕으로 칭송받으며 그들의 뜻을 받아들인다. 대니가 5월의 여왕이 되고 마을 여자들은 대니에게 이제 가족이 됐다며 꽃을 선사한다. 성전이 불타고 제물들의 울부짖음이 잦아들 때쯤, 대니는 더 이상 울지 않고 웃음을 짓는다. 호르가 마을의 사람들처럼.



대니는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태로운 상태였다. 가족들은 동반자살을 하고, 원래부터 있었던 불안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한다. 의지할 곳이라곤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뿐이었는데, 그와의 관계도 이전과 같지 않음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곧 끊어질 관계라는 걸 알면서도, 대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 후, 대니가 5월의 여왕이 되고 크리스티안과 마야가 관계를 갖는 장면을 보는 순간 크리스티안에 대한 믿음과 집착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두터운 믿음이 무너진 공간엔 깊은 틈이 생기고, 그 사이엔 그릇된 믿음과 광기가 스며든다. 어쩌면 대니는 마지막 여왕의 선택권을 통해 크리스티안이 아닌 다른 사람을 제물로 지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 호르가 사람들이 정한 ‘곰’. 크리스티안을 받아들인다.



사실 이 축제의 마지막은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영화의 배경에 집중해보면 호르가 마을과 대니의 집에선 곰과 입맞춤하는 소녀,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 불에 타고 있는 곰의 그림 등을 찾을 수 있다. 호르가 마을의 건물 벽에는 여러 그림이 가득한데, 그 그림들은 모두 이 하지 축제의 의식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드소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광기와 그릇된 믿음은 사람이 가장 약해진 순간, 그 틈을 통해 침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니는 첫날 절벽 의식을 보고 마을을 떠나려 했을 만큼 이 마을의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불안해지는 정신 상태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믿음과 희망이 깨지자 호르가 마을 사람들의 뜻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물론 쉼 없이 마셔대던 약이 든 차의 영향도 있겠지만, 대니가 가장 약해진 순간, 호르가 사람들의 믿음이 그녀에게 스며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약해졌을 때,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 또는 종교를 찾게 된다. 어떤 이들은 잘못된 사람과 종교를 만나 그릇된 길을 걷기도 한다. 분명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너무 지쳐 무방비 상태가 된 사람은 그것을 빠져나올 힘이 없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 뿐. <미드소마>가 얘기하고 있는 게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잘못된 믿음에 빠져드는지, 그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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