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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an 21. 2021

<그녀의 조각들> - '소중함이 남긴 아픈 조각에..'

[영화 후기,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신작 추천/결말 해석]

                  

그녀의 조각들 (Pieces of a Woman)

감독 : 코르넬 문드럭초

출연 : 바네사 커비, 샤이아 라보프, 엘렌 버스틴

                                                                        

소중함이 남긴 아픈 조각에 새로운 싹을 틔우다.


나의 일부, 나의 일부가 되었던 작은 생명이 꺼진 날. 마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행복한 미래는 모두 사라져버린다. 곧 찾아올 딸을 맞이하기 위해 다리 공사를 빨리 끝내야 한다며 서두르던 남편 숀과 아이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 가정분만을 선택한 아내 마사는 이름도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채 아이를 떠나보낸다.


<그녀의 조각들>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이 영화는 마사의 텅 비어버린 한 조각을 두고, 주변인들의 반응과 그녀의 심리를 답답할 만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영화의 발단 단계에서 대부분 나뉘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단계로 나눠본다면, 이 영화의 발단 단계(러닝 타임의 4분의 1)는 마사가 진통을 겪으며 힘들게 분만하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난 이 지난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견뎌낸 것의 보상이라면 마사와 숀의 시선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었다는 점. 하지만 이 장면이 누군가에겐 몰입의 시작점이 될 수도, 반대로 이 이야기를 등지게 될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이 아닐까.


이야기는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담담하고 적당히 희망적이다. 사라져버린 한 조각이 남겨둔 사랑을 바탕으로 다시 희망의 싹을 틔우는 이야기. 영화 자체에 ‘명작이다!’는 타이틀을 붙여버리긴 조금 애매하지만, 주인공 ‘마사’를 맡은 배우 ‘바네사 커비’의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녀의 조각들 시놉시스


집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괜찮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녀를 집어삼킨 슬픔의 나락. 가족도 남편도, 함께할 수 없다. 홀로 이편에 남아, 그녀는 깊은 어둠을 응시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에게 이 다리를 가장 먼저 걷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예비 아빠 숀과 딸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예비 엄마 마사. 숀은 다리 건설 현장에서, 마사는 사무실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그들에게 딸이 찾아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둘이 아닌 셋이 될 거라는 희망은 마사와 숀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된다.


                                                                        

세상이 꼭 원하는대로 되진 않잖아요


드디어 마사와 숀이 기다리던 딸이 세상을 향한 첫 발걸음을 시작한 밤. 마사는 심한 진통을 앓으면서도 힘없이 부유하던 자신의 손을 배에 얹어본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아이만큼은 꼭 지켜내겠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계획이란 건 어긋나기 마련이고, 세상이란 꼭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숀이 준비한 아이의 사진이 거꾸로 되어있던 건 이러한 결과를 암시했던 걸까? 약속했던 조산사는 다른 산모의 분만 문제로 마사의 집에 오지 못했고,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있는 세상이 아닌 반대에 있는 세상으로 떠나버린다.


“우린 이제 시간을 들여 뭔가를 하지 않아요.”


모든 시간에 의미가 없어졌다. 나의 중심이, 희망이 되었던 아이가 사라져버렸다. 마사는 다시 회사로 돌아왔지만 동료들은 그녀의 유산 사실을 알고 수군대기에 바빴고 마사의 자리엔 다른 직원이 앉아있다. 마사의 이성은 아이가 떠났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야속한 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마사는 갑작스레 흘러나오는 모유와 출산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아이가 왜 떠났는지조차 바로 알 수 없고, 이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의 의미가 없어진 나날이 쉼 없이 흐르고, 마사는 그 사이에서 자신의 코트 색과 같은 빨간 사과를 손에 들게 된다. 그리고 마사는 사과와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듯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과를 먹는다.


마사가 사과에 반응했던 이유는 마지막 재판 증언 과정에서 밝혀진다. 마사는 자신의 아이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의 머리숱이 얼마나 됐는지, 손발의 색은 멀쩡했는지, 머리색은 얼마나 까맸는지.. 막 출산의 고통을 벗어난 산모였던 마사는 당연히도 이성적으로 아이의 모습을 살피지 못했고, 아이에 대한 흐린 기억만 간직하고 있었다. 흐리게 남겨진 기억들 중 가장 강했던 것은 아이에게서 나던 냄새였는데, 마사는 증언을 하며 아이를 안았을 때 사과향이 났다고 말한다. 마사에게 사과는 빠르게 떠나버린 아이를 그릴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다.



마사는 재판의 후반부에서 조산사는 죄가 없으며, 이 재판을 통해 보상을 받게 되더라도, 아이가 그것을 원하진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은 그런 목적으로 세상에 나온 게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마사와 반대로 션과 마사의 어머니는 조산사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마사의 실패(유산)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숀을 포함해 어머니의 친구, 마사의 사촌, 언니, 사건과 관계없는 제3자들까지. 모두가 마사의 떨어져 나간 한 조각을 잡은 채 왈가왈부 떠들어대고 있다. 마사의 의견은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마사는 이미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며 나름 용기 있게 버텨나가고 있었지만, 마사의 어머니와 숀은 마사와 반대의 의견을 내며 끝없이 대립한다.


숀과 마사는 서로에게 거짓말을 반복하며 작은 흔들림을 만들어내고, 결국 헤어짐을 겪게 된다. 숀은 시애틀로 떠나고, 마사는 재판에 참석한다. 어머니와 사촌이 지켜보는 앞에서 증언을 이어나가던 마사는 아이에 대해 묻는 질문과 숀의 증언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재판은 잠시 휴정 상태가 된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과연 이게 올바른 재판인지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고 있던 마사에게 도움을 준 건 어머니도 숀도 아닌 세상을 떠난 아이였다. 내 딸이 태어나 나의 품에 안긴 순간을 담은 한 장의 사진. 그것은 아픔이 아닌 새로운 희망이 되어 마사를 바꿔놓는다. 마사는 아이를 생각하며 사과를 먹던 중 씨를 발견하고, 발아 관련 서적을 찾아 사과씨를 키우게 된다. 사과씨는 작은 싹을 틔우고, 영화의 마지막엔 아이가 올라갈 만큼 큰 나무가 된다.


슬픔에 빠진 숀은 먼저 떠난 아이를 향해 “왜 살고 싶지 않았던 거니?”라고 물으며 딸에게 가장 먼저 걷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다리가 완공되기 전에 시애틀로 떠난다. 그에 반해 마사는 숀과 다른 사람들에게 ‘냉담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게 상처에 직면하고, 유산이 남긴 상처보다는 아이가 남겨준 사랑과 희망에 집중한다. 사과씨에서 싹이 자라나 나무가 되듯, 사과향이 나던 마사의 딸은 마사에게 보다 큰 희망을 선물한다. 그렇게 마사는 아이를 생각하며 다시 살아간다. 그리고 다리가 완공된 날, 다리 위에서 아이의 유골을 뿌리며 이별을 받아들인다.




먼저 떠나가 나에게 상처가 된 소중한 존재에게 “왜 나보다 먼저 떠났냐”라고 울부짖는다고 슬픔이 사라지진 않는다. 슬픔을 오래도록 껴안고 있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내 마음의 상처로 남기기보단 그가 나에게 준 행복한 순간과 사랑을 기억하자. 무언가를 탓하고 과거를 잊으려 하기보단 지나간 시간이 남긴 추억의 조각에 새로운 싹을 틔우며 살아가자. <그녀의 조각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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