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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an 24. 2021

<크로니클> - '현실에 눌려 어그러진 초능력'

[영화 후기,리뷰/ 넷플릭스,SF, 액션, 데인 드한 영화 추천/결말 ]


크로니클 (Chronicle)

개봉일 : 2012. 03. 15. (한국 기준)

감독 : 조쉬 트랭크

출연 : 데인 드한, 알렉스 러셀, 마이클 B.조던, 애슬리 한쇼

                                                                        

벗어나고픈 현실에 눌려 어그러진 초능력


평범한 나에게 초능력이, 그것도 아주 강한 염력이 생긴다면 그 힘을 어디에 쓸래?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나는 누운 채 불을 끄거나 리모컨을 집기 귀찮을 때 염력으로 리모컨을 집겠다. 같은 사소한 것을 제외한다면 '모르겠다'라고 답할 것 같다.


<크로니클>은 평범한 고등학생 앤드류와 맷, 스티브가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되며 변화하는 과정이 담겨있는 영화다. 날카로운 것들에 수없이 긁힌 소년의 상처 속에 '초능력을 가진 내가 사는 세상'이 새롭게 펼쳐지며 소년은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약육강식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표면적으로 초능력이 중심 소재이긴 하지만, <크로니클>의 진짜 중심은 초능력이 아닌 주인공 소년들에게 있다. 은퇴 후 폭력적으로 변한 아버지, 앓아누운 어머니, 학교에서 당하는 따돌림. 주인공 앤드류의 곁엔 아무도 없다. 그나마 앤드류와 또래인 사촌 맷이 그의 곁을 지켰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둘의 사이는 조금씩 멀어진다. 앤드류에게 현실은 외롭고 외면하고 싶은 잔인한 세계였다.



외로운 소년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찍기 위해 카메라를 산다. 카메라 안에 담기는 소년의 세계는 여전히 외롭고 쓸쓸하다. 그런 소년의 세계가 변하기 시작한 건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게 된 '새로운 능력'을 몸에 지니고 나서부터였다. 소년에게 이 엄청난 능력을 어떻게 쓸 것이냐 묻는다면 처음엔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고, 두 번째엔 작은 장난을 칠 것이라 답할 것이고, 마지막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쓰겠다'라고 답할 것이다.


<크로니클>은 소년의 손에 들린 카메라로 그가 바라본 세상을 아주 가깝게 담아내며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과 초능력을 가진 소년이 기대한 삶 사이의 선을 아주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떤 일이 옳은 일인지,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내가 가진 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는 소년에게 어마 무시한 힘을 쥐여준다면 그 힘은 어느 방향을 향하게 될까?




크로니클 시놉시스


평범한 고교생 친구 앤드류와 맷, 스티브는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땅굴에서 무언가를 본 이후 그들에게 생긴 작은 변화를 알게 된다. 작은 손짓만으로 물건을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포크로 찔러도 다치지 않는 등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것. 어릴 때 한 번쯤은 꿈꿔왔던 슈퍼 파워를 갖게 된 이들은 사람들을 놀래키는 장난을 하는 등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에 심취한다. 장난에 장난을 이어가던 중 우발적으로 사고를 일으키게 된 이들은 혼란에 빠지고, 그들의 슈퍼파워는 점점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간다. 그러던 중 앤드류가 이상행동을 보이며 점점 공격적으로 변한다. 특별하지만 위험한 그들의 능력에 도시는 점차 혼란에 휩싸이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술독에 빠져 사는 은퇴한 소방관 아버지, 진통제 없이는 잠시도 견딜 수 없는 아픈 어머니와 그들의 아들 앤드류. 앤드류 가족은 보조금으로 간신히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약 값을 대기에도 벅차다. 동급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앤드류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조차 없다. 그나마 같은 나이인 사촌 맷이 등하굣길을 함께 하긴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오며 멀어진 둘의 사이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앤드류에겐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외로운 소년이 선택 한건 카메라를 드 는것이었다. 그마저도 "방송국이냐", "스토커 같다"는 조롱을 듣지만 앤드류는 카메라로 어머니의 모습과 자신의 일상을 담는다. 흉한 모습의 자신을 왜 찍느냐 묻는 어머니에게 앤드류는 '수백만의 인터넷 친구들에게 보여줄 것'이라 답한다. 앤드류의 영상을 수백만의 인터넷 친구들이 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지만, 어딘가에 있을 수백만을 향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앤드류에겐 새로운 위로가 된다. 그와 반대로 맷은 다른 사람들과의 세계가 아닌 카메라 속 자신의 세계만 들여다보고 있는 앤드류에게 이제 졸업반이니 파티에도 좀 가보라며 함께 파티에 갈 것을 제안한다.


아는 사람도 없고, 생전 가본 적도 없는 파티라니. 맷의 권유에 이끌려 파티에 오긴 했지만 앤드류는 파티에 어울리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다. 주저앉아 쉬고 있는 앤드류를 처음으로 부른 사람은 스티브였다. 스티브는 학생회장에 출마한, 교내에서 꽤나 유명한 일명 '인싸'다. 앤드류와는 정반대의 부류인 스티브가 앤드류와 같은 운명으로 얽히기 시작한 건 그 순간부터였다.



끝을 알 수 없는 땅굴 속에서 한순간에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된 세 명의 소년은 같은 능력을 공유하며 친구가 된다. 앤드류의 외로운 일상을 함께했던 카메라는 땅굴이 무너지며 땅밑에 파묻히고, 앤드류는 필름 형식이 아닌 디지털 형식의 카메라를 새로 구입한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카메라, 새로운 능력. 이 시점부터 앤드류의 생활도 새롭게 변화한다.


나에게 초능력이 생기다니. 그것도 내가 함께 능력을 받게 된 세 사람 중 가장 능력을 잘 쓰다니!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앤드류는 카메라를 켜놓고 자신의 능력을 영상으로 담는다. 침대에 누워 카메라를 허공에 띄운 소년은 새로운 나의 모습을 마음껏 담는다.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오는 약이 필요하다는 아버지의 목소리. 앤드류는 새로운 카메라와 초능력을 갖게 됐지만, 그와 동시에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앤드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현실로 돌아온다.


                                                                        

난 강한 아이야


다른 이들에겐 없는 강한 능력을 갖게 된 소년들은 이를 이용해 새로운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처음 시작은 낙엽 청소 기계로 바람을 부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차를 움직여 운전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카메라에 담기는 그들의 장난, 소년들 사이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던 중 앤드류가 클랙슨을 울리던 뒤차 운전자에게 큰 실수를 한 날. 맷은 새로운 규칙을 제안한다. 사람에게 사용하지 말 것, 화났을 때 사용하지 말 것, 공공장소에서 사용하지 말 것.


그렇지만 규칙을 전부 지키기엔 이 능력이 너무도 흥미롭고 자랑스럽지 않은가? 스티브와 앤드류는 장기자랑 무대에서 앤드류의 초능력을 뽐낸다. 무대를 끝낸 스티브는 동급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파티에 참여한다.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넌 날 혼자 뒀잖아


이제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전과 달리 환영의 눈길을 받는다. 앤드류는 초능력과 함께 새로운 일상을 얻 게되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 현실에 분노를 품게 된다. 파티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다시 놀림을 당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을 추궁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분노한 앤드류는 아버지의 멱살을 잡으며 "죽여버릴 수도 있다고." 소리친다.


앤드류는 바닥을 기어가는 거미를 염력으로 잡아 몸을 분해시킨다. 무언가를 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맷의 규칙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앤드류가 겪었던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였으니까. 항상 무시당하고 외로움에 떨다가 이제야 강자가 되었는데 이 세상을 향해 똑같이 갚아줘야 하지 않을까? 앤드류의 마음처럼 시끄럽게 하늘이 갈라지던 밤, 스티브는 앤드류의 목소리를 듣고 하늘로 날아오지만 앤드류는 나한테 친구가 어디 있냐며 스티브에게 번개를 내리친다.


.                                                                        

캠코더 꺼, 앤드류


앤드류는 카메라 속에 담긴 초능력을 가진 자신에게 익숙해지며 점점 현실과 동떨어지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스티브에게 번개를 내리치고, 스티브의 장례식에서도 캠코더를 내려놓지 못한다. 앤드류는 점점 초능력에 의지하며 옳지 않은 일을 반복한다. 그런 앤드류의 변화를 눈치챈 맷은 앤드류가 캠코더를 끄고 예전처럼 돌아오길 바라지만 앤드류는 캠코더를 끄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능력보다 더 많은 걸 원하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욕망을 100% 충족 못 시킨대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고 앤드류의 모든 것이 변하거나 피하고 싶었던 현실을 떨쳐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앤드류는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을 괴롭게 했던 세상을 향해 힘을 쓰기 시작한다.


약육강식의 세계, 누구도 내 옆을 지켜주지 않았던 세계. 앤드류는 아버지의 소방복을 입고 어머니의 약을 사기 위해 강도 짓을 한다. 스스럼없이 사람을 해하는 앤드류의 모습은 아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앤드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 사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앤드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소년은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된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소년은 먹이사슬을 지배하겠다며 도시를 뒤엎지만 또 다른 소년 맷에 의해 저지된다.



맷은 염력을 사용해 앤드류에게 창을 내리꽂고 이내 도시를 떠난다. 맷이 도착한 곳은 티베트. 앤드류가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얘기한, 정신을 갈고닦는 사람들이 있다는 도시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정신력으로 사물을 움직이는 염력을 얻은 소년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며 여행하길 기대했던 그 도시. 친구들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마지막 남은 소년 맷은 홀로 티베트에 도착한다. 맷은 나쁜 소년이 아니었던 앤드류에게 인사를 남기며 우리 능력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약속한다. 과연 이 능력은 초월적인 존재가 소년들에게 내려준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장난이었을까



영화의 초반부, 앤드류와 맷이 함께 등교를 하며 쇼펜하우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더 많은 걸 원하기에 욕망을 100%  충족하지 못한다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무근거, 무원리이고, 부단한 욕망에 쫓기어 만족할 수 없는데 이러한 생은 고통일 뿐이며. 세계를 망각하거나 욕구를 단멸하여야 최악의 생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앤드류는 새로운 힘을 얻음과 동시에 약육강식의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욕구에 휩쓸려 생을 망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앤드류가 나쁜 소년이었다고 말할 순 없다. 내 위에 올라선 채 힘껏 나를 밟아대던 세상에 저항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까. 욕망을 쫓지 않아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삶이었으니까. 초능력을 갖게 된 소년이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사용하기엔 소년의 삶이 너무도 각박했다. 초능력이 생겨도 소년의 현실은 변하지 않은 채 무겁게 소년을 짓눌렀고 소년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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