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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Apr 28. 2021

<69_식스티 나인> - '당신은 젊은 날을..'

[책 리뷰/후기/서평/ 소설 추천]




69_식스티 나인

저자 : 무라카미 류

출간일 : 2021.04.26 (개정판 기준)

출판 : 작가정신


당신은 젊은 날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가


“이 책은 정말 즐거운 소설이다.” <69>의 작가 무라카미 류는 책의 마지막 부분, 책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선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재밌다. 어두운 구석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명랑하며, 가볍게 술술 읽힌다. 69년도, 작가가 가장 즐거웠다고 말하는 그 해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04년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발행되었으며 05년도, 동명의 영화도 개봉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이 소설이 2021년 개정 2판으로 다시 돌아왔다.


 69년, 고등학생이었던 무라카미 류 작가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일부 기록했다고 말하는 책 <69>는 격렬한 사회 속에서 혈기 넘치는 시기를 보내던 청년,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 ‘겐’이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실제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전후 10년, 안보 투쟁과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69>의 주인공 ‘겐’은 청춘만의 특권인 반항심과 허술한 풋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장래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 인간.’ 사춘기 소년에게 이보다 잘 어울리는 호칭은 없을 것이다.


체제에 반항 한번 하지 않고, 흘러가듯 살아오던 겐에게 아름다운 소녀, 일명 ‘레이디 제인’이 나타난다. 소년은 소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학교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기다란 플래카드를 걸고, 영화를 찍는다. 마음속에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체제에 대한 반항심이 미친 듯이 끓어오른다. 오직 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필두로 만들어진 소년의 힘은 무지막지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매일 아침, 친구들과 같은 교복을 입고 학교로 등교한다. 청춘들은 기계적이고, 습관적이고, 당연한 흐름을 따라 걷는다. 하지만 청춘, 사춘기 하면 반항, 분노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학교를 다니며 한 번쯤은 이런 반항심을 가져본 적이 있지 않은가. “학교는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다.”, “우리는 다 같은 옷을 입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와 같은 것들 말이다. 나도 중2병을 앓으며 이러한 교육체제에 불만을 소심하게 표현하던 때가 있었다. 괜히 책을 큰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든가, 선생님의 부름을 외면하려고 했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69>의 주인공 ‘겐’은 “뭔가 강제를 당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을 보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고 말하며 옥상에 바리키이트를 친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 조악하지만 반항심과 사회비판적 시선을 가득 담아 만든 단편영화. 이 얼마나 끝내주는 반항이고 멋진 사회 비판인가. 선생님한테 꾸중 한번 듣는 것이, 생기부에 한 줄 적히는 것이 무서워 잔뜩 움츠러들었던 나의 학창시절이 너무도 건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플래카드, 바리케이트까지는 아니었어도 선생님 앞에서 이런 멋진 슬로건 한 번쯤은 내뱉어 볼걸. 더 재밌게 즐겨볼걸.. 괜히 밀려오는 아쉬움에 무릎을 탁 쳤다.


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성적이나 무기정학,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선생님보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자비 없을 만큼 일률적인 인생을 피하고 싶어 했다. 다행히도 겐의 아버지는 정학 처분을 받은 아들을 나무라기보단 아들의 행동을 ‘혁명’이라 말해줬고, 겐의 주변엔 그와 함께 뜻을 모아준 친구들이 있었다. 이 얼마나 즐겁고 반짝이는 청춘의 한 페이지인가.


밝게 빛나지 않는 것은 닭이건, 돼지건, 개건, 함께 있는 존재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불안한 사회 속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은 채 자연히 묻혀 살아가다 보면 힘을 잃기 마련이다. <69>에 나오는 청춘들은 노이로제에 걸린 수많은 닭들 사이를 비집고 비판의 슬로건을 들고 무대 위로 나선다. 책의 작가 ‘무라카미 류’는 자신의 청춘을 한참 이야기해 준 뒤, 어른이 된 자신의 시선을 지은이의 말에 짧게 담아 책을 마무리한다. 즐겁게 살지 않으며 작가의 고등학교 시절에 상처를 낸 인물들에게 유쾌한 반항심 한 바가지를 담아 끼얹는 이 소설은 69년을 넘어 50여 년이 지난 현시대에도 짐짓 알맞게 들어맞는다.


절대적일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청춘을 찍어누르는 사람들을 이길 방법은 그들보다 신나게 인생을 즐기는 방법뿐이라는 작가의 말을 고등학생 시절에 마주했다면 내 학생 시절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니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변할 건 없지. 남은 청춘만이라도 노이로제 걸린 닭이 아닌 야생화된, 힘 있는 닭으로 살아가기 위해 약간의 반항심과 즐거움 한 줌을 준비해봐야겠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kyung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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