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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y 02. 2021

<어디갔어, 버나뎃> - '어디갔어, 그때의 나'

[영화 후기,리뷰/왓챠, 힐링 영화 추천/결말 해석]

                                                                              

어디갔어, 버나뎃

(Where'd You Go, Bernadette)

개봉일 : 2020.10.08 (한국 기준)

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 케이트 블란쳇, 빌리 크루덥, 엠마 넬슨, 크리스틴 위그, 주디 그리어


어디갔어, 그때의 나


“나는 누구일까?” 내가 하고 싶은 건, 잘하는 건 무엇이었고, 내가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지?

자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커다란 꿈을 꾸곤 했던 내가 어느 순간 좋아하는 것의 소중함을 잊고, 그것을 포기한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을 맞이한 적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명실상부한 건축상인 ‘맥아더 상’의 최연소 수상자이자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건축계를 힘 있게 파고들었던 수수께끼의 여성 버나뎃. 그녀는 건축계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난 지금, 버나뎃은 세련된 패션 감각과 쿨한 성격을 가진, 딸 비와 친구처럼 지내는 다정한 엄마. 그리고 괴짜 이웃이 되었다.


웃음이 가득했던 버나뎃의 표정은 가끔씩 어두운 분위기를 풍겼고, 사회 불안 장애를 겪기 시작한 그녀는 가족 외 타인을 만나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카메라 앞에서도 당당하고 밝게 웃으며 새로운 건축물을 설계하던, 꿈에 흠뻑 젖어 눈을 빛내던 건축가 버나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버나뎃은 어느 날 받게 된 커다란 상처 때문에 꿈을 내려놓는다. 건축가가 아닌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감성적인 건축가 버나뎃과는 정 반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는 남편 엘지. 그리고 몸이 약한 딸 비. 엘지는 딸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아빠의 몫이라 생각했고, 버나뎃은 그런 딸을 보살피는 것이 엄마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버나뎃은 꿈을 가득 담은 설계도를 그리던 건축가 버나뎃을 잊고 비의 엄마로 살아간다. 과거의 아픔을 외면하며 꿈을 꾸던 자신의 과거도 잊은 것이다.


혹시 항상 마음속에 품으며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에 너무 익숙해져 권태를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내가 좋아했던 것, 내가 하고싶은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꿈을 꾸던 나는 어디에 있는지. 이러한 것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답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어디갔어, 버나뎃>을 한번 봐보시라 추천한다.




어디갔어, 버나뎃 시놉시스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한 천재 건축가였으나 현재는 사회성 제로 문제적 이웃이 되어버린 ‘버나뎃’.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 남편 ‘엘진’, 사사건건 간섭하며 동네를 주름잡는 옆집 이웃 ‘오드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남편에게 일러바치는 비서 ‘수린’까지. 조용히 살고 싶은 ‘버나뎃’의 소망과는 다르게 주변은 매일 소란스러워지고 그녀의 까칠함은 폭발한다.


온라인 비서 ‘만줄라’와 함께 친구 같은 딸 ‘비’의 소원인 가족 여행을 준비하던 어느 날, ‘버나뎃’은 자신이 국제 범죄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갑작스런 FBI 조사가 시작되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비의 엄마가 된 버나뎃은 무리에 특히 적응 못해 다른 돌고래의 꼬리에 치이는, 좋게 말하면 남다르게 눈에 띄는 돌고래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버나뎃은 이웃들의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쿨한 모습을 보인다. 비를 데리러 학교에 간 버나뎃은 시답잖은 토픽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이웃 오드리와 수린을 보고 각다귀라고 칭하며 쌩하니 차를 몰고 퇴장한다. 오드리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버나뎃을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 불안 장애와 불면증을 겪고 있는 환자, 다정한 엄마, 까칠한 문제적 이웃, 건축계의 아이콘, 온라인 비서 만줄라에겐 한없는 수다쟁이인 버나뎃. 버나뎃을 언뜻 보면 다양한 모습을 뽐내며 나름 자기 자신의 의견을 문제없이 표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녀에겐 가장 중요한 ‘자신’이 없다. 설계도면을 그리며 나의 생각을 펼쳐가던 건축가 버나뎃은 20마일 하우스가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던 날, 커다란 상처를 받게 된다.



“나를 잃는것 같아 약을 먹기 싫다고 말하는 그녀는 ‘나’를 잃는 것을 크게 두려워한다. ‘버나뎃’이라는 사람의 중심을 받치고 있던 ‘건축’이라는 꿈이 뽑혀나간 후 남은 건 누군가의 아내, 엄마, 이웃이라는 타이틀뿐이었고 버나뎃의 마음은 무너진다. 마치 버나뎃 집 뒤 언덕을 받치고 있던 블랙베리 줄기가 사라진 후 언덕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것처럼 말이다.


                                                                       

너 같은 사람은 창작을 해야 해.


20년만에 만난 옛 동료 폴이 버나뎃에게 말한다. 너 같은 사람은 창작을 해야 해.”라고. 그에 반해 남편 엘진은 “언제나 남들 탓일 순 없잖아.”라고 말한다. 엘진은 버나뎃에게 같은 이름을 가진 성자 ‘버나뎃’의 목걸이를 선물하며 버나뎃에게 주어진 18개의 계시를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하고 곁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몸이 약한 딸, 비가 태어나자 아빠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더욱 일에 몰두한다. 엘진은 아빠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존재, 버나뎃은 엄마란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부부의 거리는 멀어졌고, 버나뎃의 상처는 매일 더 깊어지고 있었다.



일에 바빠 언젠가부터 멀어진 남편 엘진과 곧 기숙학교로 떠날 딸. 유일한 친구인 딸 비를 제외하면 버나뎃이 의지할 곳은 온라인 비서 만줄라뿐이다. 그녀는 만줄라에게 온갖 수다를 늘어놓으며 남극 여행에 대비해 낚시 조끼를 주문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같이 여행을 해야 한다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낚시 조끼를 입고 외출하는 버나뎃의 모습을 보니 그녀도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기다려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만줄라가 신원 도용 조직임이 밝혀지고 FBI와 엮이게 되자 버나뎃은 정신병원에 입원할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나를 잃는 걸로도 모자라 마지막 자유마저 뺏겨버릴지 모르는 상황. 버나뎃은 작은 화장실 창문으로 빠져나와 앙숙처럼 으르렁거리던 이웃 오드리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지갑도 휴대폰도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짐도 없는 상황에서 남극행을 결정한다. 알고 보니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었던 오드리의 옷을 입고 말이다.


                                                                      

난 누구일까요?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는 남극에서 버나뎃은 ‘내가 누구인지’ 다시 질문하게 된다. 버나뎃은 연구원 베키를 만나 곧 남극점에 새로운 기지가 지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새 건축물이 필요한 땅에 머물며 필요에 맞는 설계도를 만드는 일. 아주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버나뎃의 꿈. 버나뎃은 ‘입원’이라는 두렵고도 커다란 변화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잊었던 꿈과 나.


“난 앞으로 나아갈 거야.”


버나뎃은 베키의 뒤를 밟고 몰래 숨어들어간 연구원 크루즈에서 정비공 일을 도우며 아주 오랜만에 손에 공구를 쥐고 웃음을 되찾는다. 버나뎃을 찾기 위해 남극으로 달려온 엘진과 비는 설레는 표정으로 자동응답기 메시지를 남기는 버나뎃을 지켜본다.


일에 바빠 아내의 표정을 진득하게 살펴본 적 없던 엘진은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내걸었던 약속을 떠올린다. 하늘이 버나뎃에게 내린 18개의 계시를 이룰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던 약속 말이다. 이제 출입증 없는 프리랜서가 된 엘진은 앞으로 컴퓨터나 AI가 아닌 가족들을 더 돌아보기로 다짐한다.



천재 건축가 버나뎃. 그녀는 아직 18개의 계시를 이루지 못했다. 버나뎃이 건축가로 활동하며 남긴 건축물은 단 2개뿐이었다. 20마일 하우스 다큐멘터리 속 젊은 버나뎃은 아이디어가 너무 많다고 말하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녀의 머릿속엔 18이라는 숫자보다 더 많은, 어쩌면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끝’이라는 남극점에 서서 드디어 다시 ‘나’를 찾은 천재이자 괴짜 건축가 버나뎃. 그녀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에 서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월터의 상상력은 현실이 된다>를 떠올리기도 했다. 언젠지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져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내 꿈이 담긴 장소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벼랑 끝에 몰려서야 겨우 돌아본 나. 그리고 다시 찾은 나.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꿈을 꿨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 번쯤 돌아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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