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리뷰/넷플릭스, 아카데미 수상작, 힐링 영화 추천/결말해석]
개봉일 : 1998.03.14. (한국 기준)
감독 : 제임스 L.브룩스
출연 : 잭 니콜슨, 헬렌 헌트, 그렉 키니어, 쿠바 구딩 쥬니어, 스키트 울리치
사랑이란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해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주인공 멜빈에게 묻는다. 사랑은커녕 인간미도 없어 보이는 예민한 소설가 멜빈은 소설과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다.
멜빈은 수많은 소설을 완성하며 명예와 부를 축적한다. 커다랗고 좋은 집도 있고, 나름 넉넉한 경제사정으로 명품 비누도 한 번 사용하고 버릴 수 있다. ‘성공한 소설가’의 대명사 같은 그에게 부족한 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사회성’이다. 강박증과 동반된 결벽증으로 둘러싸인 그는 밥 먹는 것도, 거리를 걸어가는 것도 정해둔 루틴대로 해야 하며 누군가 자신의 근처에 다가오면 미간을 힘껏 구긴다.
나의 일상과 내가 보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는 좋은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는, 타인의 온기가 없는 세상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딱딱하고 차가운 멜빈은 자신의 세계에 염치없이 끼어든 이웃들을 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내지만, 그들이 보내는 악의 없이 따스한 친절에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가끔 끝없이 우울할 때,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 때 이 영화를 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90년대 미국 영화의 투박하고 따뜻한 감성이 가득 담겨있어 보고 있자면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드는 영화다. 이들의 소중한 만남,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순간이 여기에 담겨있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 경계선을 밟지 말 것. 식사는 정해진 식당, 정해진 자리, 정해진 메뉴로 할 것. 귀가 후에는 문 걸쇠를 위아래로 5번씩 돌려서 확인. 손을 씻은 명품 비누는 한 번 사용하고 버릴 것. 이웃과는 말을 섞지 말 것. 특히 강아지는 최악이야!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규칙 속에 살아온 소설가 ‘멜빈’ 그에게 세상의 따뜻함을 알려준 것은 다름 아닌 두 명의 이웃? 처음으로 사랑의 떨림을 알려준 ‘캐롤’ 처음으로 우정의 깊이를 알려준 ‘사이먼’ 여기, 부드럽게 번져 세상을 꽉 채우는 세 사람이 온다!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소설의 마무리를 짓고 있는 소설가 멜빈. 그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상상력과 창의력을 불태워봐도 사랑 비스름한 감정조차 느껴보지 못한 소설가에게 ‘사랑’을 정의 내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루 종일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어도 ‘사랑’이 무엇인지 답이 나오지 않자 멜빈은 끼니를 해결하려 거리로 나선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닿지 않기, 보도블록 선은 밟지 않기, 식사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로 시키기, 비누는 사용하자마자 버리기, 사람들과 몸 닿지 않기. 멜빈은 정해둔 법칙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도 불사한다. 다른 손님에게 화를 내던 그는 식당에서 쫓겨나고, 사람들은 멜빈의 뒷모습에 손뼉을 친다. 나만의 규칙을 정하고 지키는 것은 좋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나쁜 사람’이 된다면 이 규칙은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철저히 ‘나’만 알던 심술 맞은 소설가 멜빈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막무가내인 이웃 사이몬의 강아지 버델을 객식구로 맞이하면서부터였다. 버델을 위해 식사 테이블을 옮기고, 멜빈은 자신을 따라 보도블록 선을 밟지 않는 버델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청결에 대한 강박감으로 여전히 비닐장갑을 낀 채 버델을 들어 올리지만, 얼굴엔 전과 다르게 웃음이 가득하다.
뒤이어 멜빈은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심통 가득한 손님인 멜빈을 친절하게 대해준 유일한 식당 종업원 ‘캐롤’. 멜빈은 일을 나오지 못하는 캐롤을 걱정하고, 그녀를 돕기 위해 출판사 직원을 설득한다.
멜빈은 사이몬과 그의 강아지 버델, 캐롤을 만나며 우정과 사랑을 알게 된다. 깔끔쟁이인 그가 주머니에 베이컨을 넣어두고, 아쉬운 소리는 절대 하지 않았던 그가 다른 이를 설득하고, 이웃과 말 한마디 나누는 것 조차 싫어했던 그가 이웃을 위로하고 어릴 적 상처를 공유한다.
처음 마주했던 까칠한 소설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긍정적인 변화를 겪은 멜빈. 그는 캐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나를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어요.”라고. 멜빈을 변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캐롤을 향한 사랑이었다.
캐롤은 멜빈과 사이몬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물하는 인물이자 두 사람을 가장 진실되게 바라봐 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사이몬의 어릴 적 상처를 들어주고, 강도 사건 이후로 몇 주 동안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지 못한 사이몬이 다시 연필을 쥐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는 소설과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멜빈을 문밖으로 이끌어낸다.
멜빈은 캐롤과 함께 걸으며 보도블록 선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색의 블록에 서있던 캐롤과 멜빈은 이른 새벽 빵집을 향해 걸으며 같은 색의 블록을 밟는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색의 블록을 밟고 서있던 두 사람은 이제 같은 색의 블록 위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멜빈은 캐롤을 만나며 새로운 소설을 마무리한다. 내 인생을 밝혀준 것이 나의 사랑이라고 정의하면서.
사랑과 우정,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외로운 소설가에게 다가온 인연. 무해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것은 소설과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있던 멜빈을 바꿔놓는다. 사람에 지쳐 ‘혼자가 최고다’라고 습관처럼 되뇌다가도 이런 영화를 보면 마음이 한없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