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경 Apr 20. 2021

<죄 많은 소녀> - '이 죄의 주인은 누구인가'

[영화 후기,리뷰/넷플릭스, 한국, 전여빈 영화 추천/결말 해석]


죄 많은 소녀 (After My Death)

개봉일 : 2018.09.13

감독 : 김의석

출연 : 전여빈, 서영화, 고원희, 이태경, 이봄, 전소니, 유재명


이 죄의 주인은 누구인가


최근 <멜로가 체질>, <빈센조>를 통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전여빈 배우의 두 번째 상업영화 주연작 <죄 많은 소녀>.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느껴지는 쓰라린 냄새가 마음을 짓이기는 영화였다.


‘죄’, 즉 양심이나 도리에 벗어난 행위. 벌을 받을 만한 일. 허망함과 슬픔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소녀가 어떤 일을 했기에, 이토록 커다란 죄를 지게 된 걸까. “소녀가 지게 된 죄는 온전히 소녀 혼자 만들어낸 죄일까, 아니면 모두가 지은 죄를 소녀가 혼자 지게 된 것일까?” 영화는 우리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묻고 있다.



어느 날,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온 모범생 소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소녀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어딘가 어두운 면모를 가진 또 다른 소녀였다. 소녀를 감싸고돌던 “나쁜 생각을 전염시킨다”라는 소문은 어느덧 ‘사실’이 되어 소녀를 죄인으로 만든다. 잘나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온, 친구와 어울리지 않던 소녀. 어른들은 모두 그 소녀에게 집중한다. 지금껏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소녀에게 말이다.


답답하고 무거웠다. 말이 없던 소녀는 묵묵히 죄를 짊어졌고,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닿자 피를 토해내며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누군가 소녀의 억울함을, 소녀가 뱉어내던 비명을 듣고 위로해 줬다면, 함께 지어온 죄를 인정하고 나눠 들어줬다면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변했을까?




죄 많은 소녀 시놉시스


친구가 사라지고, 모두가 나를 의심한다.

같은 반 친구 ‘경민’의 갑작스런 실종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는 가해자로 지목된다. 딸의 실종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경민’의 엄마,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형사, 친구의 진심을 숨겨야 하는 ‘한솔’,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담임 선생님까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영희’를 의심한다. 죄 많은 소녀가 된 ‘영희’는 결백을 증명해야만 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기다리던 친구가 돌아왔다.


덤덤한 표정으로 교탁 앞에 서있는 영희가 수화를 한다. 담임 선생님은 ‘기다리던 친구’ 영희가 돌아왔다고 표현한다. 과연 선생님, 아이들은 영희를 기다렸을까? 영희는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학교는 뭐가 됩니까?”


경민의 실종 후, 영희는 모든 죄를 지게 된다. 경민은 겉으로 보기엔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소녀였다. 부잣집,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부모님, 우수한 성적. 선생님들과 경민의 부모님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경민의 주변’에서 죽음의 원인을 찾는다. 교장과 담임 선생님은 학교의 이름에 누가 되는 걸 원치 않았고, 경민의 부모는 ‘난 나름 좋은 부모였다’는 부모로서의 명예를 잃고 싶지 않아 한다. 이렇게 소녀의 부모, 학교를 제외하고 나니 남은 건 소녀의 친구뿐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고 이야기하는 경민의 친구 ‘영희’. 어른들은 영희에게 집중한다. 경민이 죽는 거 보고 싶다고 그랬다던데?” 한솔의 증언을 들은 형사는 영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좋다고? 목숨도 걸 수 있어?” 영희가 별다른 의미 없이 툭 던졌던 한마디. 어른들은 그 한마디를 붙잡고 소녀에게 죄를 묻는다. 이미 영희는 경민을 죽음으로 몬 가해자가 되어있었다. 경민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했든, 가정과 학교에서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영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하다못해 생리통 때문에 쉬어야 한다는 말조차도 믿어주지 않는다. 자신이 흘리고 있는 피를 직접 닦아 내보이지 않는 이상 어른들은 영희의 말을 모두 ‘거짓’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를 왜 저한테 찾으세요?


어른들은 영희의 한마디가 경민의 자살을 부추겼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경민을 이해하려 한 적도 없었으면서, 이제와 경민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 못하고 보내는 거야.”라고 말하며 영희를 압박한다. 경민이가 살아있을 때, 경민의 부모, 담임 선생님은 경민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경민이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조금 어두웠다.’ 딱 그 정도였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이렇게 말이 많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른들에 이어 같은 반 아이들도 영희를 가해자로 지목한다. 경민과 영희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아이들은 갑자기 정의심에 불타 ‘경민이의 복수’라는 명목으로 영희를 괴롭힌다. 영희는 경민을 잃은 충격과 억울함에 못 이겨 짧은 유서를 쓰고 락스를 마신다. 비명소리 대신 피가 뿜어져 나오던 그 순간이 얼마나 기괴하고 슬펐는지 모르겠다. 왜 경민에게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 와 이유를 찾는 걸까? 그것도 가장 경민을 이해하고 있던 소녀 ‘영희’에게서.



경민, 경민의 부모, 영희, 영희의 아빠, 담임 선생님은 ‘경민의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서로를 마주한다. 경민의 부모는 집안에서 딸이 자살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심한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겠지. 영희의 아빠는 영희와 크게 가깝고 친밀한 사이는 아닌 듯 보이지만, 하나뿐인 딸이 락스를 들이마시던 날 이후, 경민의 부모에게서 딸을 지키고 싶어 한다. 가해자의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영희의 몸이 조금씩 회복되어갈 때쯤, 경민의 유서가 발견된다. 주변에 있는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짧은 유서. 이제 ‘영희는 경민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 고 결론이 났지만 경민의 엄마는 계속해서 영희를 찾아온다. 관련이 없다고 결론이 났다 해도 죽은 딸은 돌아올 수 없고, 무심했던 엄마는 탓할 곳이 필요했다. 영희를 욕하던 아이들은 혐의가 사라지자 영희의 옆에 붙어 또 다른 소녀를 지목한다. 언젠가 경민을 저주했다는 소녀. 영희는 뺨을 몇 번 때린 후 소녀를 감싸 안는다.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쓴 자의 괴로움을 공감하기라도 한다는 듯 말이다.


                                                                        

여러분이 기다리던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어른들은 말한다. 친구의 자살은 잠시 이슈가 되고, 곧 잊힐 것이라고.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관심 한번 주지 않았던 소녀의 죽음을 커다란 이슈로 삼고, 갑자기 정의감을 불태우며 가해자를 찾는다. 그리고 죽은 자를 애도하기보단 가해자를 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시간이 지나 가해자의 누명이 벗겨지자 또 다른 가해자를 찾고, 거짓말과 위선을 반복한다. 그 사이, 가해자로 지목받은 소녀는 큰 고통을 겪는다.



경민의 우울한 감정을 알고 있던 건 영희가 유일했다. 영희는 모든 걸 포기하고 죽고 싶다는 경민의 말에 위로가 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한 자살법을 이야기해 준다. 경민은 영희가 생각한 방법을 이용해 이내 세상을 떠난다.


“나만 말릴 수 있었어.” 영희가 경민의 엄마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슷한 결의 슬픔을 품고, 죽음을 생각한, 그 아픔을 알기에 죽음을 부추기거나 말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친구. 그게 영희였다. 영희는 결국 경민을 말리지 못했고, 경민이 남겨둔 슬픔 한 아름을 안고 살아간다. 경민이 죽던 날, 영희의 마음도 그 다리에서 함께 죽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함께 걸어가던 두 소녀는 그날, 함께 죽었다.



영희는 모두가 바라는 것만 같은 ‘가해자의 죽음’을 완성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왔다. 모두가 믿지 않았던, 잘못했다고 비방하던 ‘가해자’. 그리고 뒤늦게 관련 없음이 입증된 또 다른 슬픔을 가진 피해자. 영희는 가해자라는 누명을 벗고, 자신의 죽음으로 이 이야기를 끝내려고 한다. 영희의 죽음은 이제 가해자의 죽음이 아닌 사회에서 소외된 피해자의 죽음이 될 것이다. 어차피 죽으려고 하긴 했지만, 가해자의 죽음으로 남는 것보단 후자가 조금이나마 나을지도 모르겠다.



영희가 지게 된 죄는 영희가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공부 외엔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무심한 부모. 학생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선생님, 동급생들. 소녀에게 숨차는 노력, 정해진 답과 이성관을 바라던 사회. 이 모든 것들이 경민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똑같은 상처를 받으며 묵묵히 경민의 옆에 서있던 영희는 모든 죄를 떠안는다. 이 소녀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말릴 수 있었으면서 말리지 못한 죄? 만약 영희가 경민을 말렸다면 경민과 영희는 행복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영희는 가해자가 되지 않았을까? 소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누군가가 말하는 ‘죄’를 뒤집어 쓰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kyung769

매거진의 이전글 <파퍼씨네 펭귄들>-'놓쳐선 안될 소중한 존재, 가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