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리뷰/신작,개봉작,상영작, 한국 영화 추천/줄거리 결말해석]
개봉일 : 2021.06.03
감독 : 이정곤
출연 : 정재광, 정승길, 김희창, 이규성, 송이재
꿈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도루
아웃과 세이프, 득점 또는 실수, 승리와 패배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야구 세계. 그리고 그 세계 구석 어딘가에서 “그냥 야구를 하고 싶어요.”라고 처절하게 외치고 있는 소년이 있다.
코치, 감독의 갑질, 금품 요구, 비리, 성추행 등 스포츠계뿐만이 아니라 많은 직업군에서 선배, 상사들에 얽힌 파문이 끊이지 않는 요즘. 이 소년의 더럽혀지지 않은 꿈에 대한 외침이 한층 더 처절하게 느껴진다.
<낫 아웃>의 주인공 광호는 열아홉 살 야구 입시생이다. 기적적으로 안타를 날려 팀을 우승으로 이끈, 자칭 타칭 이 팀의 에이스다. 친구들은 광호의 실력을 부러워하며 그 정도면 무조건 선발일 거라며 부러워하고, 광호도 친구들 앞에서 내색은 않지만 분명 선발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처음으로 우승을 거머쥐었으니 이제 진짜 야구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거라, 진짜 선수가 되어 야구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 광호는 믿고 있었다.
하지만 노력과 실력으로 모든 걸 이뤄낼 순 없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세상이 그렇다. 돈과 바탕(또는 인맥). 아무리 투명해 보이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경쟁을 하고 순위를 정하는 순간, 이 두 가지가 개입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안타깝게도 광호는 가진 게 없다. 선뜻 내밀 수 있는 두툼한 돈 봉투도, 감독님과 끈끈한 친분을 유지할 높은 직위를 가진 부모님도 없다. 있는 거라곤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과 악바리뿐이다.
광호는 어떻게든 이 꿈을 지키고 싶어 한다. 선발 선수가 되어 그라운드에 오르고 싶고 승리하고 싶다. 아웃되는 선수가 아닌 항상 경기의 중심에 서있는 선수가 되고 싶고 뛰어난 선수가 되고 싶다. 선발에 탈락한 시점, 꿈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대학에 가는 일뿐이다. 광호는 돈과 바탕으로 이미 다져놓은 아이들의 자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는 불법적인 일도, 아버지에게 상처가 될 말을 내뱉는 일도 서슴지 않으며 어떻게든 아웃되지 않겠다고 발버둥 친다. “나 야구 계속하고 싶다고..” 어떤 순간엔 체념을 한 듯, 어떤 순간엔 울분에 차 폭발하듯 내뱉는 이 한마디가 가슴을 쿵쿵 때린다. 이 엉망진창인 세계에 덩그러니 남겨진 소년의 어깨엔 남아있는 힘이 없다.
기적이 일어났고, 끝까지 가고 싶었다.
특별할 것 없던 열아홉 고교 야구 입시생 ‘광호’는 봉황대기 결승전 결승타의 주인공이 된다, 잘 될 것 같았던 신인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광호’.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광호’는 친구에게 불법 휘발유를 파는 일을 소개받아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하지만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광호’는 친구에게 위험한 제안을 하는데….
“끝내기 안타! 우승입니다!” 흥분한 해설 위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친구들이 광호를 둘러싼다. 광호는 친구들이 인정하는 팀의 에이스가 된다. 광호도 친구들 앞에서 뽐내지 않을 뿐,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 연습생 제안이 들어왔음에도 단호하게 거절하고 선발을 기다리던 광호는 결국 불리지 않는 자신의 이름에 절망한다. 분명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다른 기회도 모르는 척 외면해버렸는데. 기회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한순간에 벤치 신세로 전락해버린다. 남은 건 손에 깊이 박힌 굳은살뿐이었다.
제가 원하는 건 그냥 계속 야구만 할 수 있으면 돼요.
제 꿈이었단 말이에요. 드래프트.
광호는 열심히, 잘하기만 한다면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믿는다. 연습생 제안을 거절할 때도 “저 원래 후회 같은 거 안 하는데요.”라고 당당히 말했지만, 여러 기회들은 순식간에 광호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 버린다. 광호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배를 불려줄 능력이 있는 선수. 광호가 기대하거나 차버린 기회들은 그런 선수들에게 향한다. 광호는 새로운 기회를 엿보며 죽어라 달리지만 간신히 그 자리를 유지할 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갑자기 선발이 된 친구와 부모님의 경제력으로 대학 자리를 봐둔 친구를 보며 광호는 돈을 써서라도 야구를 할 마지막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정이 어려운 아버지에게 상처가 될 말도 해보고, 불법 휘발유를 팔기도 한다. 광호의 친구 민철은 부상으로 인해 야구를 관두고, 베트남으로 떠나기 위해 불법 휘발유를 팔며 돈을 모으고 있다. 민철의 친구라는 수현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지만 돈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떠밀려온 광호를 보며 “너무 자주 나오진 마.”, “이쪽으로 오지 마.”라고 선을 그으며 광호가 이런 불법적인 일에 더 이상 엮이지 않도록 선을 그으려 노력한다.
나, 야구 못한 거 아냐. 존나 잘했단 말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급해진 광호는 결국 민철에게 위험한 제안을 하게 되고, 일이 잘못돼 다친 민철을 생각하며 죄책감에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까지 한 이상 더 야구를 포기할 수가 없다. 항상 친구들과 함께 먹던 햄버거를 혼자 먹게 된다 해도,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친구가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미리 자리를 닦아놨다 하더라도, 화가 난 감독이 손찌검을 하더라도, 엄마가 남긴 유일한 재산인 식당을 팔게 되더라도.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외친 이상 야구를 포기할 수가 없다. 광호의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위해 식당을 비우고 광호는 매일 아침 “뛰어!”라는 구호를 외치며 반복해서 운동장을 돈다.
꿈과 열정, 실력이 있으면 당연히 선발이 되고 야구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실력이 아닌 돈으로 자신이 갈 길을 닦아놓았고 누군가는 나의 이익을 위해 파릇파릇한 꿈을 이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절한 이의 앞길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꿈만 갖고 있던 광호는 이런 이들에 의해 밀려 갈 곳을 잃는다. “저는 어디로 가요?”라고 묻는 떨리는 광호의 목소리가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결국 광호도 어머니의 식당을 판 돈으로 자리 하나를 챙기게 된다. 야구선수가 되면 좋겠다고 했던 아버지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순수했던 광호의 꿈이,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에 의해 조금 찌그러들게 된 순간이다. 하지만 그저 ‘야구를 하고 싶었던’소년은 여전히 유니폼을 입고 배트를 손에 든다. 어찌 됐든 광호의 꿈이 지켜지긴 했지만 이 세계에서 아웃되지 않기 위해 이렇게도 처절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도 씁쓸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