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리뷰/신작, 한국 드라마, 티빙 드라마 추천/결말 해석]
오픈일 : 2021.09.17 (티빙, tvN)
감독 : 이상엽
출연 : 김고은, 안보현, 진영, 이유비, 박지현, 미람, 정순원, 주종혁
유미와 우리의 이야기
공감 가득한 인생 웹툰, 드라마로 탄생하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인생 웹툰, 공감 웹툰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동명의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원작으로 제작된 시리즈다.
이동건 작가가 만든 <유미의 세포들>은 귀여운 그림체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 캐릭터들처럼 인물들의 머릿속에 있는 세포들의 행동과 세포 마을을 이용해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신박한 표현 방법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거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평범한 인물이란 설정을 가진 ‘유미’라는 캐릭터의 현실적인 성장 과정은 독자들에게 기쁨, 행복, 분노, 슬픔 등의 여러 감정들을 선물했다.
나 또한 이 웹툰을 연재 당시 빼놓지 않고 꼭꼭 챙겨 봤었다. 연재 기간도 꽤 길었기에 자연스레 유미를 오래 지켜보게 되었는데, 유미를 통해 나와 우리를 보면서 유미의 감정에 깊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과몰입러의 특성도 한몫했겠지만, 작가님의 표현력이.. 사람을 쥐락펴락, 통수를 쳤다가 쓰다듬어줬다가.. 정말 난리가 난다. 거기에 남성 작가라는 것이 놀라울 만큼 친근하고 섬세하게 표현해낸 유미의 감정선까지. 과몰입러가 아니어도 유미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처음 드라마화가 결정됐을 때, 이 웹툰을 어떻게 실사화할지 정말 궁금했다. 세포들은 어떻게 표현할까? 이 긴 이야기를 어떻게 요약해낼까? 주인공들은 누가 연기하게 될까? 개인적으로 유미 역은 딱 떠오르는 배우가 없었을 만큼, ‘유미’라는 캐릭터는 이동건 작가가 그려낸 웹툰 속 ‘유미’의 이미지가 고유명사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똑떨어지는 단발머리와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여린 감성. 유미를 누가 표현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김고은 배우님이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웅이와 새이 또한 그렇고.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땐 김고은, 안보현 두 배우님 모두 의외라고 생각했었는데, 딱 드라마를 보니 매우 적절한 캐스팅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미가 주인공인 유미의 이야기
드라마화된 <유미의 세포들>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지만, 겉포장을 조금만 걷어보면 유미와 누군가의 로맨스 드라마가 아닌 ‘유미의 드라마’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다소 겁이 많고 여린 주인공 유미는 꿈을 이루고 싶었지만 현실에 타협하고, 다시 사랑을 하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이전에 받았던 상처를 들추며 포기한다. 외롭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
<유미의 세포들>은 이러한 걱정과 상처에 치여 머뭇거리고 있던 유미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그를 통해 행복과 깨달음을 얻으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너무 로맨틱하거나 멀리 있지 않은, 현실적인 연애의 순간들과 그 뒤에 자연히 생겨나는 아픈 순간들. 유미는 그 시간들을 통해 연인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사랑했던 일을 찾아 다시 꿈에 도전한다.
사랑과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유미
남자 주인공 웅이는 유미와 다르게 무던한 성격의 인물이다. 바라던 꿈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그것을 위해 모든 걸 다 내놓는 과감한 결정도 할 줄 안다. 굉장히 직선적이면서도 솔직한 그는 유미의 결핍을 채워주며 무던하고 행복한 연애를 이어간다. 하지만 웅이는 유미를 사랑하는 만큼,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더욱 당당한 나’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두 사람은 당연하게도 엇나감의 순간을 맞이한다.
의심스러울 만큼 행복하고, 믿기지 않을 만큼 아프고, 단단한듯하지만 한순간에 무너져내리기도 하는, 그저 어리다고도 성숙하다고도 할 수 없는 30대 초반의 연애와 여전히 명확히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유미의 세포들>을 보며, “30대가 되면 안정된 삶과 진정한 나를 찾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환상을 버리게 됐다. 그만큼 이 드라마가 현실적이기도 하고, 사실 나의 20대가 오래 남지 않아서 더 뼈저리게 느낀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와 닮은 유미
사랑과 일, 우정. 언제나 함께하고 있지만 당장 내일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소중하고 변덕스러운 이 모든 것들을 한곳에 모아둔 <유미의 세포>를 보며 함께 아프고, 웃고, 고민했다. 시즌 1이 끝날 즘엔 “결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내 세상이 무너졌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면 너무 우스워 보이려나.
내 마음속에선 사랑 세포가 깨어났다가 다시 쓰러졌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에 후루룩 빠져들었다가 답답함에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딘가 나와 닮은 유미의 순간들에 결국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모든 걸 꺼내 보여주는 그를 도저히 언젠가는 바보 같았다고, 답답했다고 말하며 미워할 수 없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
내 마음을 가져간, (아주 조금이지만) 나와 닮은 유미가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일이든, 사랑이든, 애써 미뤄온 꿈 앞에서든. 다음 시즌에선 더 행복한 유미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