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리뷰 / 신작, 드라마, 영화 해석
개봉일 : 2022.01.28. (넷플릭스 공개)
감독 : 이재규, 김남수
출연 :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유인수, 이유미, 임재혁
개인적인 평점 : 3/5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동명의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을 원작으로 한 새로운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2022년 1월 28일 날짜로 공개됐다. 2021년을 뜨겁게 달궜던 <오징어 게임> 이후,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아진 만큼 ‘한국 드라마 콘텐츠’라는 타이틀을 달면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만만치 않은 시기가 아닐까 싶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공개된 <지옥>은 ‘한국 드라마 콘텐츠’로 큰 관심을 받으며 스트리밍 1위를 달성했고, <고요의 바다>는 1위를 찍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한국형 SF’의 새로운 장을 열며 마무리되었다.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공개된 시리즈들 모두 어떤 방향으로든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꽤 괜찮은 성공이 거듭되면서 기대감이 더욱 쌓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어딘가 모자랐던 걸까. 나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 시리즈는 장단점이 뚜렷한, 완전한 성공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작품으로 남아버렸다.
긴 러닝타임, 길게 늘려진 답답한 이야기
<지금 우리 학교는>은 <킹덤>에 이어 넷플릭스에서 2번째로 제작된 한국형 좀비 드라마다. <킹덤>은 시즌당 4-60분 내외의 러닝타임을 가진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것에 비해 <지금 우리 학교는>의 러닝타임은 거의 두 배에 달한다. 그렇다고 <킹덤>이 특히 짧았던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사용한 <스위트홈>과 최근 공개된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D.P>, <마이네임>, <고요의 바다>, <지옥> 등이 모두 10편 내외로 구성되었던걸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눈에 띄게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시리즈다.
한 회차당 60분 정도, 총 러닝타임은 709분에 달하는데, 처음엔 “원작에도 등장하는 인물이 워낙 많으니까.. 12화인 이유가 있겠지?”싶었는데, 시리즈를 다 보고 나니 “왜 12화까지 만들었지?”싶었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많았다는 부분은 어느정도 느낄수 있었으나, 깊게 표현됐다기보단 한번 쓰고 내팽개치고, 또 잠깐 보여주고. 하는 식으로 짧게 반복되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8-10화 내외로 과감하게 쳐냈다면 지금보다 만족도가 훨씬 올라갔을지도.
여러 인물들이 만나게 되면 당연히 갈등이 생기게 되고, 어느 정도 고구마를 먹은듯한 답답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시청자들이 그 고구마를 견디는 이유는 갈등이 해소될 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 즉 사이다를 꿀꺽꿀꺽 마시며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인데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사이다가 부족하다. 숨 막히게 반복되는 답답한 상황과 고립. 갈등 요소가 해소되나? 싶은 순간, 갈등을 야기한 인물이 얼렁뚱땅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래... 상황상 어쩔 수 없지...”, “그래... 얘네 고등학생이잖아...”를 반복하며 마음을 달랬다.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구성과 납작한 인물들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꽤 많은 캐릭터들이 나온다. 초반부엔 이름조차 제대로 외우기 힘들 만큼 말이다. 교내에는 청산과 온조가 주축이 된 무리와 하리와 미진이 주축이 된 무리, 은지와 철수로 구성된 폭력의 피해자 무리, 교내 최고 빌런 귀남까지 총 4개의 시점이 있다. 그리고 학교 밖엔 온조의 아빠 소주 무리와 도시로 들어온 스트리머와 형사 무리, 효산시 봉쇄 작전을 실행하는 사령관까지.
사실 등장인물들이 많은 건 단점이라고 할 수 없으나, 문제는 한 무리 안에서도 인물들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는 점과 각 무리가 갖고 있는 톤 자체가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곧 멸망해버릴듯한 세상이 주는 절망과 무거움을 작은 코믹 요소들로 중화시키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특정 인물들의 이야기만 너무 큰 변주를 준 느낌이라 아쉬웠다. 톤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다양함보다는 산만함이 크게 느껴졌다.
정말 가감 없이 이야기하자면, 산만한 이야기를 꽉 잡고 갈 중심인물이 많이 없었다는 점도 이 시리즈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 학교는> 원작을 접한지 오래 지나서, 원작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아니지만 이 시리즈를 보며 이런 생각을 정말 자주 한 것 같다. “얘 웹툰에서도 이랬었나?”
모든 인물들이 매력적이고 입체적일 순 없다. 그래도 이 산만함을 꽉 쥐고 끌어갈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았다면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4-5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크게 아쉬웠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시청 중에 지쳐버린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영리한 좀비 액션
그럼에도 <지금 우리 학교는> 시리즈를 끝까지 완주한 이유.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좀비들과 펼치는 영리한 액션신들 덕분이었다. 학교라는 고립된 공간 속, 길쭉하고 좁은 복도의 특성을 활용한 아슬아슬한 액션, 교내 물품들과 건축 자재들을 이용해 구성한 영리한 액션들과 그 안을 유연하게 비집는 카메라의 시점. 그 모든 액션들을 받아쳐주는 좀비들의 그로테스크한 움직임. 그리고 역하게 느껴질 만큼 잘 만들어진 비주얼까지. 아쉬운 점은 다 미뤄두고, 이 액션신과 배경을 만들기 위해 담당자분들과 배우분들 모두 정말 고생하셨다는 칭찬은 아끼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론 고지대를 선점한 상태로 이어진 액션신들이 인상 깊게 남았다. (특히 도서관 장면)
신선한 얼굴들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신선한 얼굴들이 대거 출연한다. <벌새>로 소중한 날갯짓을 보여준 박지후 배우,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유미 배우, 여러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뽐낸 이상희 배우처럼 은근 낯이 익은 배우들도 있고, 언젠가 한 번쯤 봤었던 <슬의생>의 장윤복 역을 연기했던 조이현 배우, 영화 <생일>에서 설경구 배우의 아들 수호를 연기했던 윤찬영 배우, 조금은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는 로몬, 유인수 배우까지. 이 신선한 얼굴들엔 기시감 같은 뻔한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보여준 연기와 배우들 간의 합이 빈틈없이 완벽했다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적어도 이들의 차기작이 궁금해지게 만든 시리즈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순간에 지옥이 된 세상에서 꼬집고자 하는 것. 호불호가 갈리는 표현 방법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효산 고등학교에서 살아남은 학생들과 학교 밖, 효산시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바이러스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며 한순간에 지옥이 된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뿌리치고, 달려오는 좀비들에 맞서며 구조의 순간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갇힌 세상은 온통 공포와 괴성, 불신으로 가득하다. 학교 밖에서 이 사태를 알게 된 어른들은 아이들을 구하러 지옥으로 몸을 내던지기도 하고, 다수의 생존과 소수의 희생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 안에 그려지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공감과 울분, 분노 등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꼬집고자 하는 방향은 확실하다.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가 누군가에겐 지옥일 수 있다는 것.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방관자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 폭력의 구렁텅이가 깊어질수록 그 안에선 더욱 지독한 폭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폭력이 지배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면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혐오 등등.. 방향성은 충분히 알겠으나 표현 방식에 대한 호불호가 꽤나 갈리고 있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이 문제들을 꼬집기 위해 사용된 국회의원 캐릭터와 가해자와 피해자 캐릭터들이 다소 일회성으로 소비되었다는 점과 논란이 될만한 폭력 표현 방식 등이 있겠다.
지옥 같은 학교에서 손을 잡는 아이들
폭력이 만들어낸 작은 멸망과 그 상황에서도 파이 게임을 하는 어른들. 아이들은 어른들을 기다리며 지쳐가고, 끝내 버려졌음을 알게 된 순간 더욱 견고하게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그들의 작은 세계 속에선 믿음, 사랑, 우정, 희생이 교차하고, 이 모든 감정은 단 하나의 목표. 생존을 위해 사용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생존이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천국, 누군가에겐 지옥이던 학교가 이젠 모두에게 공평한 지옥이 되어버린 상황. 희망 같은 건 가질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잠시나마 희망의 스파크를 튀겨본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보면 아이들끼리 손을 잡고 서로에게 몸을 기대며 휴식이나 수면을 취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순간들이 정말 좋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에게 기대는, 본능이자 깊은 믿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이 좋았다. 좀비가 창궐한 와중에도 수능과 고3이 될 내년을 걱정하는 팍팍한 분위기를 잠깐이나마 풀어주는 것 같아서.
좀비물이라기보단 하이틴 로맨스로 본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을 설명하는 가장 큰 카테고리는 ‘한국형 좀비 드라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분야를 즐겨보는 팬들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은 부족함이 많은 시리즈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클리셰로 가득한 진행에 생존을 앞에 뒀다기엔 예상보다 더욱 답답하게 행동하는 인물들까지. 특히 좀비물의 스탠더드로 불리는 <워킹데드>나 앞선 한국형 좀비 <킹덤> 정도를 기대했다면..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이틴 로맨스 초점으로 바라본다면.. 어쩌면? 좀비에 집중했을 때보다 조금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탈출과 고립, 희생과 이별이 반복되며 자연스레 쌓여간 감정들이 언젠가 한 번쯤은 훅- 다가오는 순간이 있을 테니까. 슬픔으로든 아주 큰 분노로든, 그 어떤 형태로든.
감정을 제대로 마무리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남은 건 맞잡은 손뿐인 아쉬움이 가득한 시리즈였지만... 이를 계기로 ‘K-좀비’의 장이 더 넓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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