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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an 28. 2022

1초에 담긴, 마음 아린 시대의 순간

[영화 <원 세컨드> 후기 /개봉, 신작, 감동 영화 추천/결말 해석]


원 세컨드 (一秒钟, One Second, 2020)

“1초에 담긴, 마음 아린 시대의 순간”


개봉일 : 2022.01.27. (한국 기준)

감독 : 장이머우

출연 : 장역, 범위, 류 하오춘

쿠키영상 : 없음



원 세컨드 시놉시스


영화 시작 전 상영되는 뉴스 필름에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딸이 등장한다는 소식을 알게 된 장주성은 텅 빈 사막을 헤치고 외딴 마을의 영화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눈 앞에서 정체불명의 필름 도둑이 필름을 훔쳐 달아나 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황급히 그 뒤를 쫓아 나서는데…




“영화 앞에 ‘중화 뉴스’ 나오나요?” 꼬질한 행색을 한 남자가 간절히 묻는다. 그는 왜 영화도 아닌 잠시 지나가는 뉴스 한 편을 간절히 찾고 있는 걸까? 그의 간절한 물음에서 시작된 퍼석하고도 따뜻한 여정이 <원 세컨드>에 담겨있다.


필름 안에 기록된 단 1초의 순간과 1초를 위해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아버지의 여정에 담긴 그 시절에 대한 향수, 사랑, 미련. 그리고 새로운 위로까지. 2시간 동안 퍽퍽한 배경 위에 흘려지는 소중한 감정들의 흔적을 밟으며 마지막쯤엔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또 다행이라는 감정이 들기도 해서 말이다.



<원 세컨드>의 감독은 장이머우다. 1988년 <붉은 수수밭>으로 데뷔함과 동시에 1989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하며 이어 <홍등>, <귀주 이야기>, <5일의 마중>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든든한 마니아층을 소유한 그분 말이다. ‘장이머우의 작품들은 대부분 좋더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개인 취향상 중국 영화는 잘 찾아보지 않는 편이어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를 접하는 건 <원 세컨드>가 처음이었다.


보통 아는 이름 또는 신박한 소재를 기준으로 영화를 고르곤 하는데,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예고편. 딱 예고편 하나만 보고 관람을 결정했다. 예고편에 대놓고 깔려있던 필름 시대의 감성, 그것도 중국을 배경으로 만들어낸 필름 시대의 감성이 궁금했다.



클래식하고 레트로한 영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한창 문화 혁명이 일어나고 있던 혼란한 시기였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두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작은 일탈만을 기다리던 그때쯤이다.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제 1-2 농장과 그 사이에 위치한 넓은 사막, 마을을 채우는 사람들의 웅성임과 땀 냄새가 짙게 배어있을 듯한 너덜한 옷들. 박물관이나 역사 책에서 한 번 쯤 봤던 것 같은 얇은 문을 가진 건물들. 그리고 커다란 필름 통과 검은 필름. 진하게 멋을 부린 것은 없지만 낯선 만큼 새롭고 멋있게 느껴지는 레트로적인 요소들과 깔끔한 시선, 절절한 감정들이 합쳐져 영화의 클래식한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거기에 급하게 큰불을 올리는 것이 아닌, 은은한 불로 서서히 달궈내는 이야기의 진행 또한 부드럽고 매력적이다.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


<원 세컨드>는 장이머우 감독이 겪었던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장이머우 감독은 1966-1976년, 총 10년간 일어났던 중국의 문화 대혁명의 파동을 정통으로 맞으며 3년이란 시간 동안 정치 개조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0년이란 시간을 빼앗겼지만 포기하지 않고 영화인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시절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줄거리엔 남자의 이름이 ‘장주성’이라고 나오지만, 영화내에선 딱히 부르는 사람이 없어 본 리뷰에선 ‘주인공 남자, 도망자’로 칭하겠습니다.)


<원 세컨드>는 주인공 남자와 그의 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대혁명 시기에 겪었던 변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인물들이 만나 서로를 보듬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혼란한 시기를 지나며 겪었던 아픔과 미련. 그럼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필름과 옆에 서있는 인연을 통해 얻게 되는 위로가, 아주 얇은 모양새를 하고 한 겹, 두 겹 쌓여간다. 쓸모없는 말과 소리를 줄이고 조심스레 찍어놓은 이야기는 마냥 슬프지도, 마냥 후련하지도 않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장이머우 감독님의 다른 영화들은 어떤 크기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날이다.


* 아래 내용부턴 영화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필름이 필요한 사람들, 필름으로 이어진 인연


<원 세컨드>의 주인공은 세명이다. 이름을 불러줄 사람도 없는 도망자이자 딸을 보고 싶어하는 아버지. 길을 떠도는 여자아이. 그리고 제2농장의 판 기사. (판 기사 또한 필름을 통해 남자와 인연을 맺는 주인공이긴 하지만, 본 리뷰에선 남자와 여자아이의 관계에 더 집중할 예정.)


꼬질한 행색으로 숨 한번 편히 쉬지 못하며 주위를 급하게 둘러보는 남자와 어린아이라기엔 필요 이상으로 날카롭고 단단한 눈빛을 가진 여자아이. 두 사람은 한 통의 필름을 매개체로 인연이 된다. 보통 이야기의 시작은 인물에 대한 소개와 배경 설명으로 이뤄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이런 것들을 모두 제외하고 ‘두 사람 모두 필름을 필요로 한다.’는 상황만을 먼저 제시하고 시작된다.


어느 농장의 출신인지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하다못해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고 서로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이들의 인연은 함께 트럭을 타고 제2농장으로 향할 때쯤부터 더욱 깊어지게 된다. 트럭 기사에게 둘러댔던 ‘아버지와 딸’이라는 핑계는 영화가 끝날 때쯤 더 이상 핑계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이 되어버린다.



필사적으로 필름을 찾은 이유, 무언가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필요했던 필름.


영화의 중반부쯤이 되어서야 왜 아이가 필사적으로 필름을 훔쳤는지, 아이의 이름과 생활 배경은 어떠한지 남자는 왜 이렇게 숨 가쁘게 달려와 필름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다. 이 짧은 설명 과정들을 거치며 남자와 아이는 이름과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게 된다.


우리 식으로 친다면 ‘류씨’와 ‘류동생’같은 사랑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이름을 가진 아이와 억울하게 교화소에 끌려가 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남자. 부모가 없는 아이, 딸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 각자 다른 상실을 가진 두 사람을 맞대놓으니 상실된 공간이 꼭 맞물리는 듯한 모습이 만들어진다. 류가네는 주웠던 필름을 남자에게 던져주고, 남자는 류가네에게 필요한 필름 갓을 만들어준다. 두 사람은 극장에서 함께 싸우고, 등을 맞대고 포박당한 채 영화를 보며 끝내 채우지 못한 상실에 대한 아픔을 나눈다.



부모가 없어 부모 대신 남동생을 보살펴야 했던 류가네에게 필요했던 필름갓, 딸을 보고 싶었던 아버지에게 필요했던 단 1초의 시간을 담은 필름. 이들에겐 필름이 필요했고, 필름을 통해서라도 채우고 싶었던 빈자리가 있었다.


수많은 모래 알갱이 밑에 묻혀버린 필름 조각과 류가네가 재빨리 주워 간직한 종이 한 장. 남은 건 종이 한 장과 류가네와 동생뿐이지만 어쩐지 남자는 마냥 슬퍼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그렇게 남자와 류가네는 핑계로 말했던 ‘아버지와 딸’과 비슷한, 진한 인연이 되어 팍팍한 모래 위에 함께 서있다.



1초의 필름 속에 담긴 장이머우의 어린 시절


장이머우 감독은 출신 성분을 이유로 정신 개조 교육을 받고, 1971년부터 1978년,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고 싶지 않았던 노동을 했다고 한다. <원 세컨드>에서 남자가 그렇게 찾아헤맸던 14살의 딸 또한, 그 시절의 장이머우 감독처럼 ‘인민과 혁명을 위해’ 일하는 어린아이다.


남자는 딸이 8살일 때 교화소에 끌려가 6년을 보냈고, 딸이 나왔다는 1초를 보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그렇게 애타게 찾았던 딸은 ‘인민을 위해선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타이틀 아래서 무거운 포대자루를 옮기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훌쩍 큰 딸의 모습을 마주한 감동의 눈물보다는 속상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남자의 딸을 본 판이 ‘나서서 일 잘하고 있네.’와 같은 뉘앙스로 말을 건네고, 남자는 “나서봤자 어린애”라며 아픈 마음을 나타내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난 이 대사가 특히 깊이 다가왔다. 혁명이라는 핑계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일상마저도 가차없이 파괴했던 그 시절을 표현한 1초가 얼마나 아련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 2년이 지나고, ‘정책이 바뀌어서 다행’이라는 대사와 함께 남자가 자유를 되찾은 그 시기. 남자의 딸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필름 속의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노동을 하고 있을지, 필름이 모래에 묻혀 사라진 것처럼 필름 속 모습이 사라지고, 자유를 되찾은 명랑한 16살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당연히 후자였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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