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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y 18. 2022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그 어디에서도 하지 말라

영화 <아르튀르 람보> 리뷰 /전주 국제영화제/JIFF 상영작 추천,해석




아르튀르 람보 (Arthur Rambo, 2021)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그 어디에서도 하지 말라”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87분

감독 : 로랑 캉테

개인적인 평점 : 3.5/5


아르튀르 람보 줄거리


나는 예리하고 지혜롭다. 그리고 시와 정치를 잘 안다. 나는 사회 집단의 일원에서 ‘프랑스 파리의 도발적인 작가’라는 자리로 나섰다. 소설 한 편을 출간했지만 SNS에 140자짜리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SNS에 글을 쓰면서 목표물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내가 나서기를 바라는 것이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하지 말아야 하며 교만한 혀와 손은 함부로 놀리는 것이 아니다. <아르튀르 람보>를 보면서 생각했다. 2022년 제23회 전주 국제영화제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로랑 캉테 감독의 신작 <아르튀르 람보>는 SNS와 익명성에 익숙해진 우리가 꼭 경계해야 할 어느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크게 눈에 띄거나 극적이지 않은 연출 스타일이다 보니 “이건 꼭 봐야 할 명작이다!”라고 외치긴 살짝 애매한 영화였지만, 전개 속도도 괜찮았고 충분히 공감이 되는 이야기라 꽤 괜찮게 본 작품이다.


<아르튀르 람보>는 익명성 뒤에 숨어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과 현실에선 아닌 척 하지만 SNS 안에선 거친 혐오 발언에 함께 깔깔 웃는 동조자들. 관심에 눈이 멀어 디지털 쓰레기를 쌓아가는 사람들까지. SNS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아니 꽤나 자주 마주쳤을 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주인공 카림 데는 자신의 어머니가 힘들게 프랑스에 정착한 과정을 ‘상륙’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풀어내며 엄청난 스타가 된다. 상륙은 아름다운 책이라며 박수갈채를 받고 그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 또한 연일 화제를 모은다. SNS엔 여러 해시태그와 함께 카림의 이름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그를 도발적인 선구자라며 칭송한다. 변두리 마을에서 자란 카림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큰 관심과 사랑에 날이 갈수록 교만해진다.


‘우리의 이야기’ ‘건전한 분노’라는 널따란 방패를 하나 들고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 넘어선 안될 선을 넘어버린다. 책의 성공을 기념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유명한 영화 제작자와 책의 영화화를 이야기하며 한껏 술과 분위기에 취해있던 카림의 귓방망이를 제대로 떄린건 다름아닌 SNS 속의 나. ‘아르튀르 람보’다.



나쁜 글을 쓴 사람을 욕하지만, 과연 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카림이 소설을 쓰기 위해 감정 몰입용으로 썼다는 SNS엔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한 다양한 혐오가 가득하다. 최근 가장 핫한 인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인 만큼 카림의 SNS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된다. 카림을 지지하고 그의 책을 몇 권씩 사야 한다며 칭송하던 팬들이 순식간에 돌아서고 그의 곁을 지키던 친구들마저 등을 돌린다.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카림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 카림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이 혐오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하고 즐겼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카림이 누군가를 욕하고 조롱하는 트위터를 올리면 꽤 많은 사람들이 그 멘션을 RT(공유)했고, 람보의 총에서 나오는 총알들처럼 우다다다 흩뿌려지는 혐오를 보며 같이 웃고 공감하는 팔로워들도 꽤 많았다.


카림을 탓하는 관계자들에게 카림은 이렇게 말한다. “글이 과격할수록 팔로워는 늘어요.”

아름다운 소설을 쓰는 작가이자 음침한 SNS 중독자였던 카림처럼 겉으론 평등을 외치면서 뒤에선 카림과 함께 혐오의 감정을 나눈 사람들이 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걸까?. 영화 속에서 카림을 욕하던 사람들중에 떳떳하게 그를 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의심이 피어오른다.


이건 <아르튀르 람보>를 보기 전에도 꽤 자주 했던 생각이다. (물론 카림은 작은 실수를 한 게 아니지만) 공인이 무언가 작은 실수를 했을 때, 사회적 문제 한 가지가 대두되었을 때 그 주제를 지독하게 파고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 중에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살아온 사람이 있을지, 남의 실수를 욕하기에 한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온 걸지. 의심스러운 순간이 정말 많았다.



어떻게든 관심받고 싶었던 사람


카림이 정말 인종차별주의자였을까? 나는 그 말들이 100% 진심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가 인종차별 주의자라는 증거는 SNS에 적힌 글이 전부다. 물론 그 글의 양이 상당히 방대하고 공격적이기에 누군가는 충분히 그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 상종 못할 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면 그는 그저 관심이 고팠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악플을 쓰는 관종들처럼 말이다.


아름다운 말은 주목받기가 어렵다. 하지만 자극적이고 나쁜 말은 사람들의 이목을 한 번에 사로잡는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누군가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잊지 맙시다!”라고 외친다면 사람들은 “음 그렇지. 잊어선 안되지.” 라고하며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휴가는 즐거운 아우슈비츠로~(실제 영화에 나오는 트윗)”하는 식의 조롱을 올린다면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와 그를 질타하고 분노를 쏟아낼 것이다. 긍정적인 관심은 아니지만 어쨌든 '관심’이란 것이 고팠던 사람이라면 이 질타와 욕도 하나의 관심으로 받아들이며 즐기는 것이다. 카림도 딱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카림은 SNS 밖에서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욕하는 행위를 한적도 없고, 오히려 가족, 친구들을 아끼고, 변두리에 살아온 가족과 많은 빈곤층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려 애쓴다. 하지만 SNS 속 ‘아르튀르 람보’는 관심을 받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뛰어난 시인 아르튀르 랭보 + 총을 들고 모든 걸 파괴하는 람보의 이름이 합쳐진 ‘아르튀르 람보’는 총 대신 말로 수많은 사람들을 겨냥한다.



무관심과 SNS의 익명성이 만들어낸 람보


SNS가 인생의 낭비라고도 하지만, SNS가 가진 힘을 제대로 이용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중심이 없는 사람이 SNS를 한다면? 그건 100%의 확률로 흑역사가 만들어지거나 엄청난 파멸을 불러올 뿐이다.


카림은 아르튀르 랭보처럼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도 있었다. 첫 책부터 아주 큰 히트를 친 작가인 그의 미래는 꽤 밝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관심에 눈이 멀어 아름다운 말을 엮어내는 작가가 아닌, 총알 같은 나쁜 말들을 쏘아대는 SNS계의 람보를 선택했다. 카림이 스스로 “아르튀르 람보는 오늘 밤 죽었다”고 말했지만 과연 그가 정말로 SNS를 등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를 믿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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