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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19. 2022

난 지금 이탈리아로 가고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덕후의 바삭한 여름 이탈리아 여행기 (3)

3. 난 지금 이탈리아로 가고있다

2022.07.13.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순이에 타고난 왕왕 쫄보인 내가, 아름답지만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그 나라에 간다. 그것도 혼자 40일의 일정으로.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내가 정말 가는 건가?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난 정말 이탈리아로 가고 있다. 지금 위치는 대략… 어딘지 보려고 좌석 모니터에 달린 지도를 켜봤지만 사실 어딘지 모르겠다. 중국의 어딘가를 지나는 느낌? 아무튼 비행기가 출발한 지 3시간 반쯤 됐다.


장기 유럽권 나라 여행, 그것도 혼자 가는 여행. 여름에 햇볕을 쬐는 것도 싫어하고, 이 나이 먹도록 혼자 어디 가본 경험도 별로 없는 내가 갑자기 장기 여행을 계획하자 모두가 놀랐다. 나조차도 평생 못해볼 것 같다고 생각해 본 일을 갑자기 추진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내가 덕후이기 때문이고 이제 빼박 20살 후반이 됐기 때문이다.



여름. 여름이 되면 꾸준히 찾는 영화가 있다. 사실 사계절 언제든 찾긴 하지만.. 아무튼 여름이면 더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그건 바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극장 상영 당시엔 이 영화를 모르고 있다가 그 다음 해 여름쯤이었나.. 이 영화를 처음 만났다. 조용한 낮 시간,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영화를 봤는데 첫인상은 이랬다. “이탈리아는 여름이 이렇게 예쁜가?”와 “아니, 이 남자 뭐지? 무슨 그리스 신화에 나올 것 같네;”였다. 영화의 첫인상,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첫인상이기도 했다.


콜바넴을 처음 본 후로 잔잔하게 계속 그 여름이 맴돌았다. 덥기도 겁나게 덥고 습하기도 겁나게 습하고, 입맛은 죽죽 떨어지고, 햇빛을 받아 달아오른 피부엔 여드름 몇 개가 생기고, 죽죽 흐르는 땀이 끈적하게 남는 그 계절, 여름. 엄청난 한파에도 “그래도 쪄죽는 것보단 얼어 죽는 게 나아. 한파가 낫지.”를 외치는 여름 혐오자의 눈에도 영화 속 그 계절은 참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 여름의 이탈리아, 여름의 크레마가 참 가보고 싶었다. 크레마. 크레마.. 영화의 배경이긴 하지만 주인공들의 입에선 직접적으로 딱 한 번 언급됐던 도시 이름 크레마. 어떻게 가는지 어떤 마을인지 하나도 모르지만, 그냥 엘리오와 올리버가 걸었던 그 길을 꼭 여름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왠지 내가 가기에 너무 먼 나라 같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사실 거리가 먼 만큼 항공권만 해도 우리가 자주 가는 나라 (일본, 중국 등 가까운 아시아권 나라)에 비해 아주 비싸지 않은가. 나이가 먹고 경제적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봐야지- 미루고 미룬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거기에 최근 몇 년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 여행길이 완전히 막혀버리는 바람에 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올해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올해 나는 27살이 되어 빼박 20대 후반이 됐고 퇴사를 했다. 20대 후반이라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내 멋대로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진.짜.어.른. 같아서. 그래서 퇴사 후 마음껏 놀았다. 하루 종일 최애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지금껏 듣기 싫다 생각했던 내 목소리로 글을 읽어 유튜브에 올렸다. 머리를 짧게 잘랐고 탈색을 하고 또 염색을 했다. 인연이 닿아 혼자 영화제도 다녀왔다. 내 가장 오래된 친구, 반려 거북이 ‘엉금이’를 모델로 생애 첫 타투도 했다.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니 더 새로운 게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작년 내내 모아둔 돈을 싹 긁어 여행을 계획했다.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이탈리아. 이탈리아에 어떤 공항이 있는지도 모르고, 북부엔 어떤 도시가, 남부엔 어떤 도시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무작정 검색했다.


‘이탈리아 크레마 가는 법’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면 한 시간 거리란다. 그래서 밀라노로 가기로 하고 밀라노 말펜사행 비행기를 끊기로 결정했다. 내 계획을 들은 아빠는 처음 가보는, 그것도 혼자 가는 여행이니 4주만 있다가 돌아와도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4주를 계획하다가.. 그냥 갑자기 40일 일정을 잡았다. 비행기 표값을 이리저리 재다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큰 계획은 없었다. 밀라노에서 이것저것 쇼핑을 하고, 동네를 둘러보고 크레마에 가서 덕후로서 성지 순례를 하기로 했다. 근처 다른 소도시들도 몇 곳 돌면서 남들이 말하는 꼭 가봐야 하는 곳 말고, 그냥 흘러가보기로 했다. 사실 소매치기가 무서워서 관광지는 안 가기로 했다.

40일이란 시간 동안 나는 밀라노, 브레시아, 베로나, 시르미오네, 레꼬를 갈 것이다. 물론 그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할지도 모르고. 그때그때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기로 했다. 어디가 가장 내 마음에 남을지 궁금하다.


l  일기 속 하루를 다시 생각하며

습하고 비가 오는 날이었다. 해외여행 경험도 별로 없고, 코로나 이후로 처음 나가는 해외여행이다 보니 설렘에 심장이 쿵쾅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아예 못 잘 거라 예상했는데 3시간이라도 잤고, 공항으로 향할 때도 예상외로 꽤 덤덤한 기분이었다. 실감이 안 나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대략 하루 뒤에 만날 이탈리아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현재, 몸 곳곳에 틀어앉은 피로감이 훨씬 생생했기에 공항에 도착한 후 “빨리 이 무거운 캐리어를 냅다 던지고 비행기에 앉고 싶다.”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커다란 캐리어와 무거운 몸, 눅눅한 날씨에 붕붕 뜨기 시작한 곱슬머리, 마스크 아래에 숨겨진 축축한 얼굴… 설렘이 있었는데? 없어요. 없어졌어요… 그래도 캐리어를 수하물에 냅다 던지고 나니 어느정도 컨디션이 올라왔다. 아마 공항철도가 편하게 이어져있지 않았다면 난 여행 초반부터 씩씩대는 글을 써댔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썼는데, 딱 이때쯤부터 여행이 정말 실감 나기 시작하고 슬슬 설렘이 올라왔던 기억이 있다. 기내 콘텐츠 리스트를 정독한 후, 들뜬 마음을 남기겠다며 글을 썼는데… 이 땐 몰랐다. 장거리 비행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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