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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19. 2022

비와 함께 시작된 첫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덕후의 바삭한 여름 이탈리아 여행기 (2)

2. 비와 함께 시작된 첫날

2022.07.13.


작년에 장마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여름 장마는 유독 제멋대로인 느낌이 있다. 흐리다가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다가, 해가 났다가, 며칠 동안 습하기만 하다가… 강수 예측도 맞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상청 직원들도 힘들겠다 싶을 만큼 날씨의 감정 기복이 널을 뛴다. 이렇게 제멋대로 굴던 날씨는 내 여행 첫날에도 역시나 제멋대로다. 출국 날은 수요일, 지난 주말엔 폭염이더니 비가 온다던 월, 화요일엔 비가 오지 않았고, 오늘은 비가 내린다. 이른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 내렸고, 내가 집을 나서 지하철역에 도착할 때쯤엔 더 강하게 내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지하철을 타고 쭉 안전하게 터미널로 갈 수 있다는 거다. 내가 내린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하필 고장이라는 큰 벽이 있었지만 바퀴를 텅텅 찧으며 어떻게든 지하철을 타는데 성공했다. 계단도 정말 많았는데… 이 충격으로 바퀴가 고장 난다면… 백 퍼센트의 확률로 눈물이 날것이다. 나의 빨간 캐리어가 이번 여행을 무사히 견뎌주길 바랄 뿐이다.


캐리어가 20kg 어깨에 걸친 가방이 6kg. 총 26키로다. 내 몸의 절반에 해당하는 무게를 끌고 가려니 근육 없는 물몸이 사정없이 펄럭인다. 점자블록에 바퀴가 걸리면 저항 없이 캐리어에 머리채를 잡혔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릴 때마다 무릎까지 이용해서 겨우 캐리어를 이동시켰다. 반바지 밑으로 나와있는 무릎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마스크를 쓴 얼굴에 땀이 고였고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눈은 동태눈으로 변했다. 아… 설렘이 가득해야 할 순간에 어째 “죽겠어요…”만 연발하고 있는 나. 진짜 힘없는 어른 같다.


공항에 도착해 무거운 캐리어를 보내버리고 나니 숨이 좀 트인다. 이제야 공항 밖 풍경이 보이고 웃음도 났다. 공항에서 보니 어둑한 하늘도 좀 예쁜 것 같기도 하고… 나 진짜 가네?! 슬슬 실감이 난다. 여권을 손에 들고 괜히 찔리는 마음으로 검색대에 서고, 최대한 착한 눈빛으로 직원분들의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눴다. 근데 내 가방이 엑스레이 기계를 지날 때 삐 소리가 울렸다. 바로 다른 기계를 이용해 검사를 넘기긴 했지만 그 순간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무튼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니 대략 2시간 정도가 남았다. 면세 구역에 도착하자마자 선글라스 코너로 돌진해 한참 동안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패션쇼를 했다. 사고 싶었던 브랜드의 선글라스를, 그것도 아주 운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할인가에 구매하고 스타벅스에서 여유롭게 자허블 한잔을 주문하고 탑승장으로 왔다. 사실상 시간은 여유로웠는데 탑승장이 생각보다 너무 멀어서 괜히 좀 겁났단 건 비밀. 나 이제 진짜 이탈리아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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