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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28. 2022

이탈리아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 열쇠로 문 열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덕후의 바삭한 여름 이탈리아 여행기 (6)

6. 이탈리아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 열쇠로 문 열기

2022.07.13.


아직 몇 주민들이 남아있는 농구 코트를 지나 회사원 아저씨와 함께 얼떨결에 아파트 내부로 들어온 후, 진짜로… 나 진짜로 밀라노에 왔다. 숙소에 왔다! 내적으로 환희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메시지로 안내해 준 대로 문 옆에 붙어있는 열쇠함을 열었다. 열쇠함 안에는 열쇠 2개가 들어있었다. 언제쯤부터였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부턴 열쇠가 아닌 도어록만 써와서 열쇠로 집을 여는 경험은 참 오랜만이었다. 호스트의 말을 따르면 머리 쪽에 빨간 고무 코팅이 된 열쇠가 아파트 현관 열쇠, 작은 열쇠가 집 열쇠란다. 그럼 난 이 작은 열쇠로 문을 열면 되겠지? 설명을 숙지한 후 당차게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힘껏 돌렸다.


?어? 근데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딸-깍-이 들려야 하는데?? 보통… 열쇠를 넣고 왼쪽으로 한 바퀴 돌리면 잠기고 오른쪽으로 다시 돌리면 열리고… 뭐 그런 시스템이 아닌가? 순간 당황한 나는 열쇠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빙빙 돌리다가 애초에 문이 잠겨있었던 건지 아니면 열려있었던 건지… 나는 지금 어느 방향으로 열쇠를 돌리는 건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덜컹… 덜컹… 달그락… 딸깍… 분명 열쇠가 잠기는 소리는 들리는 것 같은데 오른쪽으로 두 바퀴를 돌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중앙역까지, 중앙역에서 이 아파트까지 걸어오는 동안 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는데 이 흰 문 앞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밤 11시가 되어가는 시간, 수분째 계속 열쇠를 돌리고 문을 덜컥거리는 외부인이라. 누군가가 집문을 열고 나온다면 오해하기 좋은 딱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춘 상황이잖아…? 사실 11시가 다 되어 호스트에게 다시 연락하기는 싫어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해결하기 전에 이웃들의 의심만 살 것 같아 결국 호스트에게 도움을 청했다.


비행기 시간을 고려해 늦은 시간까지 체크인 절차 안내도 해줬는데… 열쇠가 안 열린다고 도움을 청하다니. 너무 바보 같고 미안해서 식은땀과 마음의 눈물이 줄줄 흘렀다. 친절한 인상을 한 중년의 호스트는 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열쇠를 어떻게 돌리는지 보여달라고 하더니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돌려!"만 반복했다. 아니.. 오른쪽으로… 몇 바퀴를 돌리지…? 얼마나 돌려야 열리는데…? 나의 열쇠 컨트롤을 보던 그는 더 이상 열쇠가 돌아가지 않냐며 나에게 되물었고 나중엔 “I don’t know…”를 읊조렸다. 그렇게 열쇠 때문에 한 20분을 넘게 문 앞에서 헤맸나 보다. 그러다 얼떨결에 문을 열게 됐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오른쪽으로 열쇠를 조~금 더 돌려야 마지막으로 딸깍- 문이 열리는 건데 문이 제대로 맞물려있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마지막 그 조금이 돌아가지 않아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다. 문고리를 몸 쪽으로 잡아당기며 열쇠를 돌리니 아주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정말 눈물 나는 오픈쇼였다. 내 인생 가장 바보 같은 순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벌써 11시 10분이 넘은 시간. 뭐라도 먹어야겠다며 지도를 켰다. 운명처럼 1분 거리에 23시 반까지 하는 음식점이 있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주 길었던 오늘 하루를 위로할 야식과 맥주를 먹어야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짐을 모두 내려놓고 가벼운 몸으로 카드와 키만 들고 문 열기를 두어 번 더 복습한 뒤, 커다란 아파트 문을 열고 이젠 조용해진 농구 코트를 지나 음식점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다급하게 "주문 가능한가요!!?"를 외쳤다. OK 사인을 받자마자 메뉴가 뭐인지도 잘 모르지만 일단 뭐라도 시키겠다며 열심히 메뉴판을 훑었다. 엄… 근데 낯선 언어로 적힌 메뉴판은 단숨에 읽히지 않았고 간신히 알아본 건 'pomodoro spagheetti' 뿐이었다. 토마토. 토마토.. 토마토 스파게티. 이탈리아의 토마토 스파게티! 클래식하고 실패할 확률이 희박해 보이는 조합이라 일단 이것부터 먹기로 했다. 그리고… 맥주는… 상표명도 아닌 다른 이름으로 적혀있었는데, 뭐가 뭔지 감이 안 와 일단 가장 큰 사이즈가 있는 맥주로 달라고 했다. 종업원은 냉장고를 열어 "이 맥주를 주문하는 거지?"라며 내 주문을 확인했다. 그가 짚은 맥주는 하이네켄. 스파게티와 하이네켄…!! 완벽한 야식이다. 어영부영 주문을 마치고 나니 그제야 가게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근데, 여기… 인테리어가 꽤 중국풍이다? 생각해보니 주문을 받은 종업원분도, 주방에서 잠시 나온 분들도… 중국인이었다.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 중국인분들이 만든 토마토 스파게티와 하이네켄이라니. 왠지 재밌었다. 밀라노에 오긴 왔는데, 먹는 건 어째 한국에서 먹는 것과 다를 게 없네.


내 기준으로 2인분에 해당하는 양의 스파게티와 커다란 하이네켄을 사들고 돌아와 이제야 겨우 샤워를 하며 "아… 오늘 진짜 끝이다. 진짜. 샤워 빨리하고 야식 먹어야지." 생각했는데, 아… 또 사건이 생겼다. 이틀 전에 염색한 머리에서 옅은 보라색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근데 하필 이 숙소의 수건은 흰색. 흰 수건에 보라색 물이 뚝…뚝… 발수건에도 뚝뚝… 생각 없이 머리를 비빈 수건에도 보라색이… 절망적이었다. 세탁기가 없는 숙소라 비누와 치약을 묻혀 박박 비비며 마음의 눈물을 한 번 더 흘렸다. 진짜 찐찐 마지막으로 수건의 물기를 짜고 우여곡절 끝에 정말,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스파게티와 아마도 750ml의 사이즈인듯한 하이네켄 한 병을 앞에 두고… 오늘의 진짜 진짜 마지막 일기 끝.


나를 당황하게 했던 바로 그 열쇠


l  일기 속 하루를 다시 생각하며

정말 긴 하루였다. 서울 집에서 일어난 시간을 생각하면 대략 24시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활동을 한 건데, 이동거리가 길다 보니 피로감 또한 굉장했다. 게다가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한 순간 문을 못 여는 변수가 생겨 얼마나 서러웠는지… 열쇠로 문 여는 게 이렇게 어렵고 굉장한 일이었다니. 이 이후로도 열쇠 때문에 한 2주 정도는 애를 먹었다. 처음엔 조금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문을 여는 요령과 낡아서 한 번에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도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는 평정심까지 배웠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이런 사소한 생활 양식, 환경의 차이를 자주 느꼈다. 이들의 생활에 익숙해지는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치 어릴 적에 어른들을 따라 하며 생존 스킬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던 그때처럼,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무력해지기도 했고, 한편으론 흥미롭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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