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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Oct 03. 2022

첫 도전과제! 이탈리아 마트에서 장보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덕후의 바삭한 여름 이탈리아 여행기 (7)

7. 첫 도전과제! 이탈리아 마트에서 장보기

2022.07.14.


고단했던 여행의 첫날.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스파게티와 맥주를 후루룩 삼킨 후, 창 너머로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지켜보다 잠에 들었다. 한 4시간쯤 잤나? 한국 시간으론 오후 2시쯤이 되어가는 시간, 비척비척 일어나 바깥을 잠시 쳐다보며 '오늘 첫 끼는 근처 마트를 털어보리라!' 생각하다 자연스레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여독이라는 것을 핑계로 미적거리다 오전 10시가 넘어 침대를 벗어났다. 늦잠을 잔 후에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을 누리며 세수를 하고 파우치에서 스프레이 공병을 하나 꺼내 얼굴에 칙칙 뿌렸다. 당연히 따로 챙겨온 에센스라고 생각하면서. 근데 얼굴이 이상하게 화했다. 아주 잠깐, 이게 무슨 상황인가 머리를 굴리다 한 3-4초 지났을 때쯤 알았다. 내가 얼굴에 뿌린 건 투명한 에센스가 아닌 투명하고 화한 냄새가 나는 헤어 픽서라는 것을. 화끈거리는 얼굴을 클렌징 폼으로 박박 씻으며… 어제는 열쇠, 오늘은 에센스… 내가 너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잠은 확실히 깼다.


지퍼만 열어둔 채 바닥에 던져둔 캐리어를 뒤적여 가벼운 옷을 주워 입고 문을 나섰다. 아파트 복도에 붙어있는 발코니, 인생 처음으로 걸어보는 서양권 나라의 길거리, 내 눈앞에 지나가는 트램! 상상 이상으로 뜨거운 아침 햇빛… 여기가 우리나라가 아니긴 하구나. 시각적으로도 촉각적으로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진짜 나의 여행이 시작됐다. 여행을 오기 전, 나는 이게  설레는 여행이자 인생에서 손에 꼽을만한 엄청난 도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평생 살아온 도시가 아닌 비행기로만 13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먼 도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그 도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나를 책임져야 하는, 어찌 보면 여행보다는 '살아남기’에 가까울 수도 있는 시간이 이제 시작된 거다. 그리고 오늘, 이 여행에서 첫 번째로 주어진 도전과제는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하기’다. 어제는 너무 지쳐있기도 했고 사람 사이에 섞여 걷긴 했지만 몸이 힘든 상태라 별 생각이 안 들었는데 오늘은 밝은 아침, 또렷한 정신으로 나 혼자 마트에 가서 계산까지 해야 하다니…! 괜스레 긴장됐다. 뭐랄까… 마트에 가는 동안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볼 것같고, 누군가는 싫어할 것 같고, 눈을 보면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왕쫄보가 된 나는 여유롭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을 여기저기 굴리며 빠르게 걸었다. 그렇게 5분쯤 걸어 가장 가까운 마트에 도착했다. (실제 거리는 가까웠는데, 쫄아서 그런지 체감상은 좀 멀었던 느낌?)



문이 열리자 약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졌고 문 바로 앞엔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 안엔 로망 그 자체였던 납작 복숭아와 살구, 샐러드 등이 가득했고 그 옆에 쭈욱 늘어서 있는 음료수들 중엔 익숙한 것도,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쌓여있는 밋밋한 색의 빵들과 낯설지만 사진만 봐도 맛있을 것 같은 과자들!!… 신기해하는 티 안 내고 싶었는데, 10초도 안 돼서 구경꾼 모드가 되어버렸다. 마트를 두 바퀴 정도 돌고 고심 끝에 과자 몇 개와 아침용 빵과 푸딩을 담아 계산 줄에 섰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일단 'Buon giorno~' (아침 인사)를 한다던데.. 맞나? 괜히 내가 오버하는 건 아닐지 걱정되어 앞서 계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사를 하는지 열심히 관찰했다. 이 외에도 계산은 카드로 그냥 하면 되는지, 직원분이 어떻게 말을 걸고 손님은 뭐라고 답하는지, 봉투는 어떻게 사고 필요 없으면 뭐라고 말하면 되는지… 등등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도는 여러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눈과 귀에 온 힘을 집중했다. 그 결과 카드를 쓴다 해도 문제 없음! 사람들은 진짜 'Buon giorno~' 하고 인사를 함! 바코드를 찍은 후 뭐라고 물어보는데 저건 아마 봉투가 필요하냐고 묻는 것 같음!이라는 정답을 도출하는데 성공했다. 이게 우리나라라고 생각해 보면 당연하고, 궁금하지도 않을 부분들이긴 한데 이탈리아에 와서 물건을 사는 건 처음이니 모든게 궁금했다.


혼자만의 문답을 끝낸 후 나름 여유 있는 척하며 직원분과 인사를 나눈 후 카드 계산이 가능한지, 지금 물건을 담아도 되는지 바디 랭귀지를 몇 번 주고받으며 뚝딱 계산을 마쳤다. 아, 현지인과 제대로(?) 대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떨지 않고 계산을 해냈다. 오늘의 첫 미션을 성공한 느낌! 어제… 문을 열기 위해 호스트와 나눈 대화와 파스타를 산 건… 그냥 영어로 더듬거렸던 수준이니까…? 이탈리아 사람과 제대로 대화한 건 오늘이 처음이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와 익숙한 LG 전자레인지에 아침용 빵을 돌리고, 납작 복숭아를 씻어 접시에 올리고, 초코 푸딩과 음료수. 그리고 비스킷까지 뚝딱 차려놓고 나니 나름 밥 잘 챙겨 먹는 사람이 된 느낌이랄까? 사실 따져보면 영양가가 높은 식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배를 곯는 건 아니니 이 정도면 잘 하고 있지 뭐. 어제부터 정주행하기 시작한 <빌어먹을 세상따위>를 보며 천천히 밥을 먹고 나니 오전 11시가 훌쩍 넘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오후 2시 16분. 근데 난 아직도 입으로 “화장품 사러 나가야지~”만 반복하며 푸지게 침대에 누워있다. 진짜, 이따 햇빛 조금만 약해지면 나가야지. 아침 햇빛도 이렇게 뜨거운데… 대체 오후엔 어떻게 돌아다니는 거지?


   

일기 속 순간을 다시 생각하며


사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담고 계산대에 올리고 카드를 내밀며 계산을 하는 순서는 어딜 가나 같으니까. 그런데 이탈리아에 막 도착했을 땐 이 당연한 순서가 '정말 당연한 건가?'하는 궁금증과 의심이 들었다. 여행 준비 기간이 짧아 언어까지 배우진 못했지만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보며 짧은 지식들을 몇 가지 습득한 상태로 여행을 가긴 했으나 막상 앞에 닥치니 모든 게 다 못 믿을 정보 같았다. 안 그래도 의심이 많은 성격인 나… 이탈리아에선 돌다리를 두들겨보다 못해 망치로 쾅쾅 쳐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트에서 이렇게 긴장했던 건 초등학생 시절, 엄마가 나를 계산대에 남겨두고 무언가를 더 가지러 갔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 이탈리아 마트에 갈 때 알고 가면 좋은 것 (별거 없는 팁)


- 마트마다 다르긴 하지만 출구와 입구가 정해져있는 마트들이 있다. 보통 입구는 "ENTRATE" 출구는 "USCITA" 대부분 화살표가 같이 표시되어 있긴 하지만 단어를 알고 가면 좋음! (지하철에서 출구 찾을 때도 필요한 단어)


- 왠지 이탈리아에선 카드 사용이 잘 안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어느 가게든 카드가 안되는 곳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NFC 카드(카드를 꽂는 게 아닌 기계에 접촉하는 방식)를 사용한다. 여행 전에 발급받아두면 편하다. (나는 트래블 월렛 카드 발급!)


- 이탈리아 역시 봉투를 유상 판매한다. 계산할 때 직원분이 영어로 백이 필요하냐고 묻는 경우도 있지만 이탈리아어로  Borsa(보르사/가방)라고 묻는 경우도 있고, Sacchétto(사께또/주머니?)라고 묻는 경우도 있음. 이 단어가 들리면 필요에 따라 답하자. Yes or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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