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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Oct 05. 2022

이제야 제대로 맡아본 밀라노 냄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덕후의 바삭한 여름 이탈리아 여행기 (8)

8. 이제야 제대로 맡아본 밀라노 냄새

2022.07.14.


아점과 비슷한 첫 끼를 해결하고 오후 4시쯤 된 시간, 처음으로 진짜 외출을 했다. 오늘의 목표는… 별거 없다. 관광지나 도심 한가운데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천천히 그늘을 따라 걸어보기, 선케어 용품, 페이스 크림, 생필품 사기. 이 정도뿐이다. 악명 높은 소매치기, 인종 차별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아직 사람 많은 곳을 가기엔 조금 겁나기도 하고, 쇼핑엔 큰 욕심도 안 나고, 곧 크레마로 떠나기 전 체력을 비축해야 하기도 하고 말이다.


4시쯤이면 해가 조금 식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해님은 여전히 쨍쨍- 힘이 넘쳤다. 아, 맞다. 어제 비행기에서 내릴 때(오후 9시경)도 날이 밝았지? 괜한 기대였다. 뜨거운 햇볕에 얼굴이 형편없이 찌그러졌다. 분명 난 기분이 좋은데 휴대폰 액정에 비친 나는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찌그러진 얼굴로 걸은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그제야 시야에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라… 다들 선글라스를 쓰고 있네? 아. 나도 선글라스 사 왔잖아? 그것도 내 생애 처음으로 산!! 비싼 선글라스! 한국에서라면 도심에서 선글라스를 쓰는 건 왠지 관심을 끄는 느낌이라 엄두를 못 냈겠지만… 여기서의 선글라스는 뭐랄까 '패션', ‘시선’과 거리가 있는 '생존템’ 그 자체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패션을 위해 고심해서 선글라스를 고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가방에 고이 모셔온 선글라스를 꺼내 당당하게 얼굴 위에 얹고 나니 약간의 안정감이 찾아왔다. 이제 눈도 덜 부시고 선글라스로 인해 시야가 살짝 덜 선명한 느낌으로 바뀌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도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졌다. 목적지를 찍어두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구경하며 한참을 걸었다. 땅 위에 깔려있는 트램 철길, 알록달록한 건물들, 건물 벽에 달린 나무 덧창, 익숙한 듯 새로운 냄새가 풍기는 음식점, 다양한 모습을 한 사람들. 골목을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고 모든게 흥미로웠다. 하다못해 바닥에 떨어진 소프트콘 아이스크림의 모습마저 재밌어 보였다. 나는 처음 야외로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여기저기를 걷고, 구경하고, 마음껏 킁킁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새로운 냄새에 눈을 뜨고 말았다.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 말로는 각 나라마다 나는 냄새가 다르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마늘을 많이 먹어서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마늘 냄새를 느낀다는 말을 들어본 것도 같다. 그리고 우리가 외국에 나가면 그들의 땀 냄새를 아주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말도.

“흠. 밀라노에선 무슨 냄새가 날까?” 잠들지 못했던 비행기 안에서 눈을 꿈뻑이며 생각해 봤다. 그래도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 세련된 도시니까 특별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향수 냄새? 그런 거 아닐까 혼자 몇 가지 냄새를 상상해 봤다. 그래서 어제도 역을 벗어난 후 가장 먼저 도시의 냄새를 맡아봤는데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 다시 짚어보니 중앙역을 벗어나기 전, 무슨 냄새를 맡긴 맡았었다. 중앙역을 벗어나기 전, 기차에서 내린 내가 가장 먼저 맡은 냄새는 (아주 안타깝게도…) 지린내였다. 공항에서도 별 냄새가 안 났고, 밀라노로 이어지는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도 특별한 냄새가 나진 않았다. 그렇게 코가 심심한 상태로 무사히 쭉 밀라노까지 실려온 나는 중앙역 플랫폼에서 처음으로 강렬한 냄새를 맡았다. 플랫폼 어느 구간에선가 잠깐 올라왔던 지린내. 출처가 어딘진 모르겠지만 잠깐, 이 도시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질 뻔했다. 그래도 냄새나는 구간이 길진 않았고, 나는 애써 이건 밀라노에서 맡은 첫 냄새가 아니다… 최면을 걸며 그 기억을 구겨놨던 것 같다. 그리고 역을 벗어나 맡은 진짜 밀라노의 첫 냄새도 딱히 특별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나에게 ‘밀라노 냄새’라는 정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디어 오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이 도시의 냄새를 느꼈다. 다양한 향수 냄새가 났고, 그 안에서 공통적으로 나는 하나의 냄새를 찾았다. 무슨 과일 같기도 하고, 도브 샴푸 냄새 같기도 한 게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그리고 뜨거운 계절에 걸맞게 그들의 땀 냄새 또한 꽤나 진했다. 뭐, 땀 냄새는 어딜 가나 나는 냄새니까. 이들에게도 내 땀 냄새가 낯설고 진하게 느껴질까? 여기 음식을 오~래 먹으면 내 체취도 비슷해지려나? 밀라노의 냄새를 찾아보겠다고 열심히 킁킁대다가 한참 동안 땀 냄새에 대한 고찰을 했다. 아마 내일은 또 다른 냄새를 맡게 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내가 맡은 밀라노의 냄새는 여러 과일이 섞인 샴푸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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