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a mia Itali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경 Oct 21. 2022

처음 걸어보는 크레마 골목 + 촬영 장소 주소 팁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덕후의 바삭한 여름 이탈리아 여행기 (14)

14. 처음 걸어보는 크레마 골목

2022.07.16.


크레마에 오기 전 다른 이들의 크레마 여행기를 찾아보던 중, 누군가가 “영화는 영화일 뿐, 직접 와보니 볼 거 없다.”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욕심껏 크레마 일정을 2주로 늘리면서도 가서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조금은 불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시계탑 앞에 선 그 순간, 걱정은 모두 사라지고 딱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나는 “이야… 오길 잘했다!!!!” 속으로 사자후를 내뱉으며 광장 주위를 폴짝폴짝 걸어 다녔다. 햇빛은 여전히 뜨거웠고 크로와상만 먹은 지라 배도 완전히 부르지 않았지만 그저 행복했다. 영화에서 본 거리, 영화에서 들었던 종소리. 모든 게 신기하고 완벽한 순간이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볼 수 있는 거리지만, 아마도 크레마를 떠날 때까지 전혀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더 오래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것 같다.


여기선 뭐하고 지내냐고 묻는 올리버와 그저 여름이 지나길 기다린다고 답하던 엘리오의 모습이 담긴 광장, 한 순간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다고,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고 속삭이던 골목,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소년 엘리오가 마르치아와 함께 지났던 골목들. 엘리오와 올리버의 눈에, 여름의 엘리오와 올리버를 연기했던 그 배우들의 눈에 담겼을 크레마의 작고 아름다운 골목들의 모습을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영화 속 장면들은 어느 정도 연출이 가미되어 있다 보니 완전히 똑같은 분위기를 느낄 순 없었지만, 아주 작은 흔적만으로도 충분했다.



가장 먼저 방문한 장소는 시계탑이 있는 광장이었다. 시계탑 앞은 카페와 음식점 테이블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영화에서와는 다르게 시끌시끌 활기가 넘쳤다.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영화에 담긴 것과 같은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온듯한 신기한 느낌이 든다.



시계탑 바로 앞엔 올리버가 서있었던 가게와 작은 골목이 있다. 그리고 골목으로 그대로 걸어 들어가면 두 사람이 사랑을 속삭였던 문을 마주할 수 있는데, 문에는 그동안 크레마를 다녀간 수많은 팬들이 남긴 흔적들이 가득했다. 나는 문 근처를 한참 서성이며 엘리오와 올리버의 머리끝이 닿았던 문 무늬 아래 서서 내 머리끝을 맞춰보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문 앞에서 실제 거주자 분과 마주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쓰읍… 사실 이 문이 우리에게는 낭만이지만 실제로 그 건물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에겐 어떻게 느껴지려나?... 나라면 문에 낙서하는 건 좀 싫었을 텐데.. 그럼에도 성지 순례하는 팬들을 제지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그들의 관대함.. 제법 멋지다.



골목을 드나드는 유동인구가 없어질 때까지 문 근처 벽에 딱 붙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삐져나오는 웃음을 살짝 풀어놓으며 문을 한번 쓰다듬고는 옆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이 있는 골목에서 그대로 꺾어 나오면 바로 오른쪽엔 엘리오와 마르치아가 걸어갔던 작은 터널 같은 길이 있고 왼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엘리오와 올리버가 자전거를 끌며 지나간 골목길(영화엔 나오지 않았고 사진으로만 공개된 걸로 기억)이 나온다. 그리고 골목을 조금 더 헤매다 보면 늦은 밤, 엘리오와 마르치아가 함께 돌 벤치에 걸터앉아 담배를 폈던 주차장이 나온다. 한국에서 미리 지도에 콕콕 찍어둔 핀들의 위치를 따라 한참 크레마의 골목을 헤맸다. 작은 골목 구석구석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왠지 엘리오와 올리버가 이길도, 저길도. 이 옆에 있는 길도 걸어보지 않았을까? 싶어 기분이 묘해졌다. 그들도 나와 같은 풍경을 봤을 거라 생각하니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촬영 장소를 대부분 둘러본 후, 더 이상 배고파서 못 걷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까지 방향도 잡지 않고 그냥 무작정 길을 걸었다. 평소엔 잘 보지 않았던 하늘도 올려다보고 계단이 있으면 잠깐 앉아보기도 하고, 힘들다 싶으면 잠깐 푹- 주저앉아보면서. 이 영화가 뭐라고, 이게 뭐라고 나를 이렇게 생각 없이 걷게 만드는 걸까? 정말 웃기다.


일기 속 순간을 다시 생각하며


처음 크레마에 도착해서 시계탑이 있는 광장을 봤을 때, 진심으로 세상이 한 단계 더 밝아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밀라노에서 본 이탈리아의 풍경도 신기하고 아름다웠지만 크레마는 정말… 몇 년간 마음속에 품어온 로망, 꿈 그 자체였으니까. 크레마 다녀오기라는 목표를 딱 이룬 순간,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크기의 감동이 밀려오며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렇게 오래 무언가를 바랐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현실에 잘 타협하는 편이라 거의 현실적인 목표들만 세우며 살아왔고 그것들은 대부분 빠른 시일 내에 이뤄졌기에 나는 어떤 종류든 목표를 길게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간혹 오래된 목표가 리스트에 남아있는 걸 발견할 때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쓱싹 지워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조용히 품었던 '한 여름! 크레마 여행하기!'라는 목표는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름이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생각났고 영화를 다시 보고 나면 또 크레마에 가고 싶어 졌으니까. 아무튼 내가 여름의 크레마에 도착했다는 건 오래 묵혀온 내 꿈 하나가 이뤄졌다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여행 한번 하면서, 별것도 아닌 것에 참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여행은 나에게 정말 많은 의미가 되었다.



+ 크레마 시내에서 촬영 장소 찾는 법

영화가 성공하면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촬영지는 크레마의 중심 관광지가 되었다. 그래서 도시 어디를 가든 영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관광 안내소에 들리지 않아도 에어비앤비 숙소나 식당에서 촬영 장소가 표시된 지도를 나눠주기도 하고 촬영 장소 근방을 기웃거리다 보면 다른 장소는 어느 쪽이라며 알려주시는 주민분을 만날 수도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공급하는 것인지 어딜 가든 똑같은 지도를 받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론 그 지도만 보면서 길을 찾는 건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당연히! 기념으로 받아두는 건 추천! 하지만 편하게 찾아가려면 지도 어플을 추천한다.


시내에 있는 촬영 장소를 찾아갈 때 참고할만한 위치 정보를 함께 기록해둘 테니 지도에 미리 핀을 찍어두시길! * 나는 구글 맵 스트리트 뷰를 이리저리 보면서 정확한 장소를 찾았는데 애매한 길의 경우는 지도를 클릭했을 때 나온 명칭으로, 정확히 등록되어 있는 장소는 구글 맵에 표기된 명칭 기준으로 작성했다.



Via Federico Pesadori, 29 : 영화 초반, 두 사람이 별장에서 크레마로 오는 장면에서 잠깐 나오는 높은 담벼락이 있는 골목

Piazza del Duomo : 엘리오와 올리버가 앉아있었던 시계탑이 있는 광장. 신문과 잡지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Porta di Call me by Your Name : 엘리오와 올리버가 함께 걸어 들어갔던 큰 문이 있는 골목

Associazione Proloco Crema Ufficio informazioni : 관광 안내소



Arco del Torrazzo : 시계탑의 공식 명칭, 시계탑 아래 통로는 책을 든 엘리오와 마르치아가 만나는 장소. 시계탑 뒤편에 있는 Libero Milano 가게 건너편에는 엘리오와 마르치아가 걸어갔던 작은 동굴 같은 길이 있음

Palazzo Premoli : 엘리오와 마르치아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곳



Via Verdelli 19 : 엘리오와 올리버가 자전거를 끌고 걸어간 길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https://www.instagram.com/movie_read_together/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kyung769

유튜브 : https://youtube.com/channel/UCTvKly8P5eMpkOPVuF63lwA

매거진의 이전글 드디어 크레마에 도착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