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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Feb 23. 2024

땅은 기억하고 우리는 잊은 것

영화 <파묘> 리뷰, 해석 / 신작, 오컬트, 스릴러 추천




파묘 (Exhuma, 2024)

"땅은 기억하고 우리는 잊은 것"


개봉일 : 2024.02.22.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미스터리, 공포

러닝타임 : 134분

감독 : 장재현

출연 :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전진기, 홍서준, 김재철, 김태준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X

국가 : 대한민국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세상에 선보이며 한국 오컬트의 신세계를 연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가 개봉했다. 이번에도 역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영화다.


<파묘>는 무당 화림과 봉길이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고 있는 한 부자 집안의 의뢰를 받으며 시작된다. 유전병도 아니고 환경 탓도 아닌데, 이 집안의 장남들은 환청, 환각 등의 기이한 현상을 앓고 있다. 돈 많은 집안이니 이것저것 손을 써봤을 텐데.. 결국 어떠한 이유도 찾지 못해 무당을 부른 모양이다. 왜 돈이 많은 지도 모르지만 그냥 태어나 보니 돈이 많았던 집안. 모든 게 충만해 보이는 그 집에서 화림은 거대한 그림자를 느끼고 조상의 묘를 이장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장을 함께할 사람으로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을 섭외한다.


화림과 봉길, 상덕, 영근은 평소처럼 별 걱정 없이 문제의 묫자리를 찾아가지만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문제의 묘는 음산한 기운을 잔뜩 풍기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묫자리. 상덕은 파묘를 포기하려 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어두운 존재가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운 관점으로


장재현 감독의 영화 안엔 종교, 신화, 영적 존재 같은 직접 눈으로 본 적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이번에도 역시 영화의 표면적 주제는 양지에 사는 이들은 볼 수 없는, 음지에 웅크리고 있는 존재들이다. 귀신, 악마, 도깨비, 요괴. 불리는 이름도 퍽 다양한 미스터리한 존재. 정확히 표현할 방법은 없으나 어쨌든 존재한다는 것은 설핏 느껴지는 그런 존재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가 서양의 종교적인 관점과 일부 한국적인 요소들을 넣어서 이들을 이야기했다면 <파묘>는 한국적인 이론인 음양오행설과 우리의 역사와 관련된 구전을 베이스로 놓고 이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실화가 아닌 감독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어딘가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며 탐구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난 종교는 안 믿어도 장재현 감독의 영화는 믿는다. 특히 <사바하>를 본 후로부터는 무조건 그를 믿기로 했다. 그래서 <파묘>가 이러한 나의 무조건적인 믿음에 얼마나 답을 해주었느냐고 묻는다면 85%쯤이라고 말해두겠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와는 달랐던 <파묘>
이전 작품과 다른 점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이전 작품인 <검은 사제들>, <사바하>와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꽤 다른 이야기였다. 간단히 비교해 보자면 <파묘>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확실히 더 현실적이고 파격적이며, 명료도가 높은 영화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검은 사제들>은 80% 정도, <사바하>는 50% 정도가 허구로 느껴졌다면 <파묘>는 30% 정도만 허구로 느껴졌을 만큼 상당히 현실적이었고, 세 작품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영화지만 <파묘>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가장 명료하게 제시하는 영화였다. 우선 <파묘>는 묫자리, 조상의 영혼, 우리의 장례 문화 등이 영화의 표면 주제를 담당하고 있어 종교나 설화에 대한 지식 없이도 접근하기 쉽다.(앞서 얘기한 음양오행을 몰라도 괜찮다.)


또한 묘를 파낸 이후 새롭게 떠오르는 주제도 우리의 뿌리와 관련이 있어 더욱 가깝고 깊숙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 언젠가 어른들을 통해 들었던 조상을 잘 모셔야 하는 이유, 묫자리의 중요성 같은 이야기들이 떠오르며 정말 저~ 먼 지방 어딘가의 선산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상당히 현실적이고 직관적이었기에 접근하기 쉬웠다.


<파묘>가 이전보다 파격적인 영화라고 한 이유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시청각적으로 가해지는 자극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날씨, 소리,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만들어낸 긴장감이 극 중에 꽉 들어차있어 스릴러로서의 매력도 함께 가져가는 영화였다. 분위기가 비슷해 보여서 인지 주로 <곡성>과 비교해 얼마나 무서운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공포, 긴장감, 불쾌감 모두 <곡성>보단 약한 편이라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얘기할 <파묘>와 이전 작들의 가장 큰 차이점의 명료도다. <파묘>는 전체적으로 명료도가 매우 높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사바하>와 비교해 보자면 <사바하>는 “이 존재의 정체는 이거야!” “여기서 말하는 건 이거야!”하고 명확하게 외치지 않고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치밀한 영화였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이 특정 현상, 인물의 외적 특징 등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나눴을 만큼 여러 가지 물음표가 생성되는 흥미로운 영화였다. 하지만 <파묘>는 초반엔 눈에 보이지 않았던 존재를 후반부 들어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고, 상상을 크게 넓혀갈 틈 없이 이야기를 딱- 닫아버리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보이지 않는 것과 싸워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힘에 좌절하고 이겨내고 물음표를 던지는 맛을 기대했는데! 나의 기대는 딱 영화의 중후반부쯤에 고이 접혀버렸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취향 차이에 따라 갈릴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아쉬웠지만 객관적으로 대중성과 상업성 면에선 이전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땅은 기억하고 우리는 잊은 것


<파묘>는 과학과 미신,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그 애매한 사이에 위치한 사람들. 그리고 과학과 미신, 삶과 죽음을 모두 품고 있는 땅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기 바빠 많은 걸 잊어버린다. 하지만 땅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화림, 봉길, 상덕, 영근.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디디기 전, 100년 전쯤의 우리나라는 엄청난 수난기를 겪었다. 그 시절을 살아간 일부 몰지각한 이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많은 죄를 지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죄가 밝혀질 것을 염려해 여러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하거나 죄를 부인하고 있다. 이런 나쁜 이들 중 특히 친일파, 그리고 그들의 후손의 삶(재산, 지위 등..)은 현재까지도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다.


파묘를 요청한 상주 ‘박지용’의 집안은 언제부터 부자였는지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현재 엄청난 부를 가진 집안이다. 하지만 이 부자 집안엔 후손들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파묘가 시작되며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박지용의 할아버지는 일본에 충성을 바친 친일파였다. (일본 장교들과 찍은 사진, 박지용의 몸에 들어와서 불렀던 군가와 구호는 그의 할아버지가 친일파였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는 땅에 묻히는 순간까지 철저히 일본의 편의, 어떠한 의도를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그렇게 어떠한 의도를 품은 잘못된 묘가 하나 만들어진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는 ‘밝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밝은 것만 보고, 대개 눈에 직접 보이는 것들만 믿는다’고 말한다. 밝은 곳에 사는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 영화의 초반, 상덕과 영근이 다른 묘를 이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 묘의 문제는 어린 손자가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어 할머니의 틀니를 가져간 것이었다. 상덕은 아이에게 할머니가 식사를 못하시니 틀니를 돌려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는 울면서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물건이 하나도 남은 게 없는데, 그럼 난 어떻게 할머니를 기억해요?”


그렇다. 무언가를 더 오래 기억하고 믿으려면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진이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죄를 저지른 이들은 눈에 보이는 증거를 깊은 땅속에 파묻는다. 시간이 지나 모두가 잊어버리길 바라면서. 그것은 다른 것을 덮어쓴 채 오랜 시간을 버티고 누워있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두운 곳을 오가는 인물들이기에 남들은 보지 못하는 무덤 속 위험한 존재에 집중한다. 그들은 잘못된 자리에 누워있는 진실을 끈질기게 파내려 간다. 진실 하나가 드러나고 또 다른 진실이 드러나고.. 이들은 끝내 오래 묵은 안 좋은 것을 뽑아내는데 성공한다. 가장 어두운 곳에 묻혀있었던 가장 어두운 존재, 잘못된 과거는 그렇게 사라진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은 화림, 봉길, 상덕, 영근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잘 모르겠다. 화림과 영근은 여전히 환영을 보고, 상덕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이는 네 사람이 음과 양의 사이가 아닌 음지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사건 후 후유증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들 앞에 펼쳐진 길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적절한 선을 아는 영화


<파묘>는 일제강점기라는 현실과 구전으로 내려오는 풍수 침략설을 섞어 만들어낸 우리의 이야기다. 풍수 침략설이란 일본이 호랑이 모양을 한 한반도의 중심, 즉 호랑이의 허리에 해당하는 땅에 쇠말뚝을 박아 땅의 정기를 막으려 했다는 구전이다. 이런저런 추측성 이야기들은 많지만 확실하진 않다고 한다. 극 중에 나오는 ‘뱀이 호랑이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 봉길의 손상된 척추, 도굴꾼 치고는 꽤 비장했다는 청년들(쇠말뚝을 뽑으러 다닌 단체)과 그들이 갖고 있었다는 장비(쇠말뚝)는 이 구전을 암시한다.


그리고 <파묘>는 극 중에서 독립운동 단체(철혈단)의 이름이 언급하기도 하고, 그들의 이름이 적힌 나무로 정령을 무찌르기도 한다. 또한 화림, 봉길, 상덕, 영근이라는 이름 또한 실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며 이 네 사람이 묘를 파고 일본 정령에 맞서는 모습은 독립운동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는 위험한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파묘>는 이러한 주제를 사용하면서도 적당한 선을 지키는데 성공한다.



특히 영화의 중후반부쯤 관속에 있던 거대한 장수가 나타나고 봉길이 혼수상태에 빠져있을 때, 화림, 상덕, 영근은 병실에서 쇠말뚝과 봉길을 구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자칫하면 ‘일제가 한반도의 허리에 의도적으로 쇠 말뚝을 꽂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앞서 모두 허구라고 이야기했어도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파묘>는 그 쇠말뚝은 모두 측량 용일 거라는 영근의 대사와 쇠 말뚝의 여부는 완전히 믿을 수 없지만 어찌 됐든 봉길을 구할 수 있다면 정령을 끌어내 보겠다는 화림의 다짐, 쇠말뚝이 아닌 정령, 흙 자체를 지목한 상덕의 마지막 판단 등을 통해 논란의 여지를 잠재운다. 그리고 오래되어서, 어두운 곳에 묻혀버려서 잊고 살았던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파묘>를 막 보고 나왔을 땐 아쉬운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의 장면들을 몇 번 곱씹어 보니 물론 장르적 쾌감도 중요하지만 그 아래에 담긴 메시지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던, 알고 보니 더 많은 걸 품고 있었던 영화 속 그 이름 없는 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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