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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y 02. 2024

욕망에 눈을 뜬 인형, 마침내 사람이 되다.

영화 <아이 엠 러브> 리뷰, 해석 / 루카 구아다니노 영화 추천

주요 내용

- 영화 <아이 엠 러브> 소개

- 탄크레디의 대저택과 안토니오의 집의 차이

- 우하 수프의 의미 해석

- 엠마의 의상에 담긴 의미 해석

- 딸 베타가 사진을 선택한 행위의 의미 해석

- 아들 에도의 죽음 의미 해석

- 엠마의 이름, 탄크레디와 안토니오의 행동 의미 해석

- <아이 엠 러브> 제목 의미 해석

아이 엠 러브 (I Am Love, 2009)

욕망에 눈을 뜬 인형, 마침내 생명력을 되찾고 사람이 되다.


개봉일 : 2011.01.20.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드라마, 로맨스

러닝타임 : 119분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 틸다 스윈튼, 플라비오 파렌티, 알바 로르워쳐, 에두아르도 가브리엘리니, 팝보 델보노, 다이안 플레리, 마리아 파이아토

개인적인 평점 : 4.5 / 5

쿠키 영상 : 없음


무겁고 포근한 눈에 눌려 만물이 납작 엎드리는 겨울부터 찬바람에도 굳건히 지켜온 생명력을 터트리는 여름까지. <아이 엠 러브>는 긴 겨울을 넘어 여름에 도달하고 마침내 생명력을 터트린 여성 엠마의 이야기다.

<아이 엠 러브>는 국내에서 루카 구아다니노라는 감독을 주목받게 만든 첫 번째작품이자 ‘루카 구아다니노의 욕망 시리즈’의 시초로 불리는 작품이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는 하나하나 모두 독특하고 아름답지만, <아이 엠 러브>는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영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비거 스플래쉬> 최근작 <챌린저스>까지. 국내에 공개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여름(또는 춥지 않은 날씨)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뜨거운 여름, 열대야처럼 쉽게 식지 않는 사랑이 찾아오고 극중 인물들은 거침없이 서로를 탐하거나 망설이면서도 사랑을 갈구한다.

그런데 <아이 엠 러브>는 특이하게도 겨울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주인공 엠마는 바짝 말라있으며, 그녀는 추운 날씨에 잔뜩 움츠러든 소동물처럼 가만히 작은 우리 안에 갇혀있다.


눈이 두껍게 쌓인 겨울의 밀라노, 모든 문을 걸어 닫은 대저택. 딱 봐도 고급스러운 옷과 실내장식, 분주히 움직이는 여러 고용인들과 안주인 엠마.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난초 같은 그녀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엠마는 미술품 복원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러시아인 여성이다. 대기업을 운영하는 레키 가문의 아들인 탄크레디는 미술품을 수집하기 위해 러시아에 왔다가 엠마의 아버지를 통해 엠마를 만나게 된다. 탄크레디는 아름다운 엠마에게 빠지고 엠마는 탄크레디의 살아있는 미술품이 되어 이탈리아로 이주하게 된다.


엠마는 겉으로 봤을 땐 남부럽지 않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여성이다. 아름다운 나라 이탈리아에 살고 있고, 남편을 잘 만나 대기업의 사모님이 됐고, 돈이나 미래를 걱정할 일도 없다. 그리고 남편도 엠마를 아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엠마는 이탈리아로 이주하며 고향을, 탄크레디와 결혼하며 이름을, 아이들을 낳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잃었다. 이것들을 잃어버린 대신 엠마 레키라는 이름과 대부호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지위와 고고한 아름다움을 얻었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

그렇게 외로운 겨울을 지내고 있던 엠마 앞에 운명처럼 생생한 여름 같은 남자 안토니오가 나타난다. 그는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직접 자연에서의 삶을 개척해가는 남자다. 안토니오에게 끌린 엠마는 그의 뒤를 밟고 기어이 그를 따라 높은 산을 오른다. 이어 엠마는 안토니오와 자연의 품에 안기게 되고 엠마 안에 웅크리고 있던 수많은 세포와 생명력이 깨어난다.

오감을 깨우는 영화


<아이 엠 러브>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게 아닌 체험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는 여러 방법을 이용해 오감을 자극하고 깨운다. 아웃포커싱과 거리감을 다채롭게 활용하여 만든 아름다운 그림은 시각을, 속삭이는 자연의 소리를 모두 담은 사운드는 청각을, 생생하게 담아낸 테이블과 음식, 풀밭, 나뭇잎의 질감은 후각과 미각, 촉각까지 깨워낸다. 생생하다, 아름답다, 살아있다. (사실 이는 <아이 엠 러브>뿐만이 아니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모든 영화에 잘 어울리는 수식어기도 하다.)

모든 게 완벽히 짜인 커다란 장식장 속 예쁜 인형
인공조명으로 밝힌 대저택과 햇살로 가득 찬 안토니오의 집


레키 가문의 대저택은 완벽하게 짜인 장식장 같다. 겉모습부터 작은 장식품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고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운 대저택에 살고 있는 레키 가문은 완벽함과 승리, 성장을 추구한다. 엠마의 아들인 에도가 스포츠 경기에서 지고 오자 가족들은 에도를 둘러싼 채 그의 패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 레키는 지면 안된다, 집안의 스포츠 역사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래도 졌으니 한눈팔 일은 없어졌다. 이제 회사 경영에 참여해라. 등등..

레키 가문은 커다란 회사를 만들었고, 가주는 앞으로도 레키가 회사를 이어가길 바라고 있기에 레키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만을 가문에 들이려고 한다. 그들에겐 에도가 여자친구 에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단 에바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 출신인지가 더 중요하다.


엠마는 아름다운 외모로 레키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탄크레디는 처음 어머니인 지안루카에게 결혼 소식을 전할 때 “어머니보다 예쁜 여자랑 결혼한다.”라고 이야기했고, 지안루카는 아들의 말대로 정말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며 엠마를 칭찬한다. 탄크레디, 지안루카는 키티쉬로 불리던 엠마를 레키 가문으로 데려와 엠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그들이 바랐던 가문에 어울릴만한 기품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엠마는 레키 가문이 바랐던 예쁜 인형, 미술품이다. 이 예쁜 인형은 어두운 대저택을 벗어나지 못한다. 저택엔 수많은 창문이 있지만 그 창문은 모두 닫혀있고 엠마는 어두운 주방이나 창문이 닫힌 방만 왔다 갔다 한다. 저녁이 되면 저택 내부에 조명이 켜지긴 하지만 그것은 인공적인 빛과 열을 발산할 뿐, 엠마에게 에너지를 주진 못한다.

기운을 잃어가던 아름다운 인형에게 운명처럼 생명력으로 가득한 남자 안토니오가 찾아온다. 아들 에도의 친구이자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셰프인 그는 레스토랑 휴무날이면 밀라노에서 차로 2시간은 걸리는 시외 도시 산레모로 향한다. 안토니오는 그곳에서 야채를 키우고 심플한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어낸다.


밀라노가 너무 많은 것들로 꽉 찬 도시라면 산레모는 여유롭고 자연친화적인 도시다. 안토니오의 집은 레키 가문의 대저택과 반대로 작고 단출하며 모든 창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리고 전문가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 입구, 통행로, 장식품으로 차있는 대저택의 정원과 다르게 안토니오의 집은 온갖 식물이 뒤섞인 자연 그대로의 상태다. 안토니오의 집은 대저택에 비해 조잡한 느낌이 들긴 하나 만들어진 아름다움보다 더 값진 생명력과 밝은 빛을 품고 있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그리워하던 심플한 맛의 음식을 만드는 셰프 안토니오를 만나다.
우하 수프의 의미


레키 가문이 만찬을 먹는 장면. 고용인들과 엠마가 열심히 준비한 음식들 중 하나인 우하 수프가 식탁 위에 올라온다. 우하 수프는 러시아의 생선 수프로 엠마가 에도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특별히 준비하는 메뉴다. 우하 수프는 여러 민물고기류를 넣어 만든 맑은 수프인데, 엠마의 말에 따르면 어린 에도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며 자신의 할머니가 만들어줬던 음식이라고 한다. 엠마는 러시아가 그리워질 때면 이런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대기업 사모님이라면 화려하고 다채로운 맛의 음식들을 잔뜩 맛보고, 만들 수 있건만 엠마는 이 심플하고 맑은 수프와 그에 담긴 추억을 좋아한다. 이는 엠마가 심플한 맛의 음식을 좋아하거나 심플한 삶을 바란다는 의미가 될 수도, 할머니의 우하 수프를 먹던 러시아에서의 소소한 삶을 그리워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안토니오는 이 바람과 그리움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존재다. 안토니오와 함께하는 시간은 러시아에서의 삶처럼 편안하고, 그의 심플한 음식은 화려함에 지친 엠마를 위로한다.

예쁜 인형이었던 엠마가 처음 욕망을 느낀 순간
엠마의 의상에 담긴 의미


엠마는 엠마 레키라는 이름을 가진 후 철저히 레키 가문에 맞춰 살아왔다. 레키 가문은 보수적이었기에 엠마는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왔다. 그러다 안토니오가 에도의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대저택에 온 날, 엠마는 안토니오를 만나게 되고 안토니오는 요리에 도전해 보라며 엠마의 손에 토치를 쥐여준다. 두 사람의 손이 겹쳐지는 순간, 그릇 위 음식과 엠마의 욕망에 동시에 불이 지펴진다.


레키 가문의 여자들과 안토니오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간 날, 엠마는 빨간 원피스를 입는다. 주로 은은한 색 또는 딥퍼플이나 블루 같은 차갑고 차분한 색의 옷을 입던 엠마가 처음으로 강렬한 옷을 꺼내 입은 것이다. 두 사람이 음식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엠마는 온전히 안토니오의 음식에 집중한다. 엠마에게만 밝은 조명이 떨어지고 카메라는 엠마의 얼굴과 음식을 아주 가까이서 샅샅이 훑어나간다. 엠마의 얼굴에 황홀함이 떠오른다. 그녀는 안토니오의 음식을 먹으며 욕구를 채운다. 이는 엠마가 처음으로 레키 가문의 여성, 인형으로서의 금기를 깨트린 순간이다.

억압적이었던 레키 가문의 분위기, 가장 먼저 그것을 깬 딸 베타
베타가 그림을 그만두고 사진을 선택한 행동, 베타가 머물렀던 니스의 의미


극 중에서 엠마보다 더 빠르고 완벽하게 금기를 깨트린 여성이 있다. 그건 바로 그녀의 딸 베타다.


레키 가문은 미술과 미술품을 좋아하고 산업뿐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한다. (탄크레디는 미술품 수집 취미가 있고 할아버지 또한 베타의 그림을 모으고 나중에 비싸게 전시할 계획이었다고 말한 것, 에도가 스포츠 경기에서 졌다고 하니 집안의 스포츠 역사를 이어가지 못했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

그에 맞춰 에도는 스포츠, 베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에도는 패배로 인해 스포츠를 타의적으로 포기(기업을 운영하라는 명을 받음)하게 되고, 베타는 자의적으로 그림을 포기하고 사진을 찍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뒤이어 가족들 모두가 알고 있던 남자친구 그레오리오와 헤어진 그녀는 앙가라드라는 여자친구를 만난다. 앙가라드를 향한 사랑에 확신을 가진 베타는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쓰고, 머리를 짧게 정리한다.


베타가 그림을 그만둔 것엔 그녀가 레키 가문의 전통을 벗어났다는 것, 엠마를 데려온 어른들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크레디와 그의 부모는 엠마를 데려와 새로운 이름을 주고 레키에 걸맞은 사람으로 만든다. 이는 화가가 작품을 계획하고 그에 맞춰 아름다운 결과물을 내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런데 사진은 존재하는 것의 순간을 담아내는 일이다. 그림을 그만둔 베타는 사진을 선택하고 앙가라드를 향한 사랑을 고백한다. 베타는 앙가라드의 모습, 성별에 연연하지 않고 앙가라드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으며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저 앙가라드의 빛나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살아있는 미술품을 만들어내려 하는 어른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집으로 돌아온 베타는 엠마에게만 앙가라드의 사진을 보여주며 ‘앙가라드를 만나러 니스에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니스는 베타에게 사랑과 자유를 준 도시다. 니스에 같이 가자는 제안은 엄마도 나처럼 사랑과 자유를 찾으러 떠나라고 제안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베타는 엠마에게 말한다.

“행복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말이야.”

부유한 집안의 여성인 엠마와 베타는 행복할 것처럼 보인다. 만약에 이들이 불행하다고 하면 누군가는 ‘배가 불렀다’고 욕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정형화된 행복은 엠마와 베타 개인의 인생을 막는 벽이 된다. 베타는 엠마보다 빨리 이것의 존재를 눈치채고 부수려 한다. 분명 모두가 이해 못 할 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밀라노를 떠나 니스로 향한다.

잠시 머뭇거렸던 엠마
모든 억압을 풀어준 아들 에도의 죽음


베타의 고백과 제안을 들은 후, 용기를 낸 엠마는 강한 색감의 주황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산레모에 가서 안토니오를 찾는다. 베타의 말에 따르면 산레모는 대저택이 있는 밀라노에서 니스까지 가는 길에 경유하는 도시다. 베타는 그 중간 도시에서 안토니오와 만나고 몇 번의 관계를 나눈다. 모든 게 충만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하지만 엠마는 현실적인 이유에 걸려 더 나아가지 못한다. 안토니오는 아들 에도의 친구고 그녀에겐 남편과 가정이 있다. 엠마는 다시 욕망을 억누르고 저택으로 돌아온다. 안토니오와 함께할 때 입었던 빨강, 주황색의 의상은 다시 옷장 속으로 들어간다.


엠마가 저택으로 돌아간 후, 런던에서 돌아온 에도가 안토니오의 집을 찾는다. 에도는 텅 빈 집 마당에서 잘린 엠마의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엠마와 안토니오가 함께 시간을 보냈음을 직감한다.

여느 때와 같이 중요한 만찬이 열린 저녁, 식탁에 안토니오가 만든 우하 수프가 올라오자 에도는 화를 내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나의 엄마와 친구의 외도라는 도의적 문제와 더불어 안토니오와는 사업 문제도 엮여있었고, 앞서 에도와 안토니오가 함께 나왔던 장면들을 보면 에도가 안토니오를 애정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화를 내던 에도는 엠마의 손을 뿌리치려다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다쳐 죽는다. 에도의 죽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번째는 에도가 죽음으로써 에도만 알던 엠마의 외도는 영원한 비밀이 되었다는 의미. 두 번째는 레키 가문이라는 엠마를 가두던 큰 틀이 깨졌다는 의미다.

에도는 탄크레디와 함께 레키 가문을 이어가고 키워갈 후계자다. 그는 회사를 매각하라는 이들에게 “레키는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라고 답하는, 레키라는 이름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에도는 일부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공장을 키워왔다는 임원의 말을 그대로 흘려들으며 레키는 진실한 회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레키 가문의 현재이자 미래임과 동시에 가장 사랑하는 래키 사람이었던 에도가 죽었다는 건 엠마가 더 이상 래키라는 이름에 묶이고 억압되어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차례 폭풍과 에도의 장례식이 지나간 후, 엠마는 남은 힘을 모두 짜내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지고 대저택을 떠난다.

엠마가 아닌 키티쉬로, 인형이 아닌 사람으로, 사랑으로
장신구, 구두로 엠마를 옥죈 탄크레디와 모든 걸 벗겨준 안토니오


엠마라는 이름은 결혼하며 탄크레디가 지어준 이름이다. 안토니오는 엠마에게 결혼 전 이름을 묻는다. 엠마는 진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집에선 자신을 키티쉬라고 불렀다고 답한다. 엠마는 키티쉬라는 이름과 편안한 삶을 그리워하고 있다.

첫 번째 만찬이 있기 전, 탄크레디는 엠마에게 팔찌와 장신구를 채워주고 안토니오는 첫 관계를 갖기 전 엠마 몸에 둘러진 장신구를 가장 먼저 벗긴다. 탄크레디는 성당에 맨발로 서있던 엠마에게 자켓을 걸쳐주고 구두를 신긴다. 안토니오는 조심스레 엠마의 샌들을 벗기고 더 편하게 바닥을 밟게 한다.

엠마는 안토니오와 함께할 땐 아름답고 불편한 옷이 아닌 헐렁한 나시를 입고, 단단한 올림머리를 풀어헤치고 안토니오의 손에 머리카락을 맡긴다. 안토니오와 있을 때 엠마는 바싹 마른 아름다운 인형이 아닌 욕망과 생명력을 가진 인간 키티쉬가 된다.


성당에서 엠마는 탄크레디에게 말한다.

“당신이 알던 나는 없어요.”

“나는 안토니오를 사랑해요.”

이제 탄크레디가 만든, 탄크레디가 사랑한 예쁜 인형인 엠마는 사라졌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세포가 깨어나는 여름을 음미하고, 매서운 한차례 비를 견딘 엠마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나를 얻는다.

아이 엠 러브. 나는 사랑이다.

엠마는 사랑을 통해 생명력을 되찾았고 안토니오를 향한 사랑은 그녀의 정체성이 된다.


엠마가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현실에선 불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아들의 친구와 벌이는 불륜. 지독하고 지저분하다. 하지만 <아이 엠 러브>는 엠마의 욕망을 엠마의 입장에서 생생하고 아름답게 풀어내고, 그녀의 여정은 고단하고 거룩하게 다가온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다. 나도 이 이야기가 현실에 펼쳐진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와 엠마는 기어이 나를 설득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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