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거 스플래쉬> 리뷰, 해석 / 루카 구아다니노 영화 추천
주요 내용
- <비거 스플래쉬> 영화 소개
- 구불구불 불편한 인물들의 관계
- 욕망의 정도에 따른 인물들의 노출 정도
- 이성의 땅, 욕망의 물
- 영화에서 마리안의 역할, 치정극 한가운데 위치한 마성의 락스타
개봉일 : 2016.08.03.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멜로, 로맨스, 치정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 틸다 스윈튼, 랄프 파인즈, 다코타 존슨, 마티아스 스후나르츠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사람은 누구나 숨겨야만 하는 여러 욕망을 갖고 살아간다. 마음속에 욕망을 품고있는 것은 그 누구도 잘못됐다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밖으로 꺼내놓게 되면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을 받는 건 순식간이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은 욕망을 숨기고 절제한다. 하지만 어디든 이 보통을 넘어서는 이들은 존재한다.
<비거 스플래쉬>는 숨겨야만 하는 욕망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 보이는, 다소 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전설의 록스타 마리안과 그녀의 남편인 영화감독 폴, 마리안의 옛 남자친구인 음반 제작자 해리와 그의 딸 페넬로페다.
마리안과 폴 부부는 이탈리아의 작은 섬 판텔레리아에서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섬에 묵고 있다는 걸 안 해리가 갑자기 자신도 곧 섬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연락을 해오고, 마리안 부부가 도망가거나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공항에 등장한다.
전 애인이라니.. 찜찜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오래된 친구를 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 마리안과 폴은 일단 해리와 그와 함께 온 딸 페넬로페를 받아들이고 저녁 식사를 한다. 해리는 불편한 부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쉴 새없이 떠들어댄다.
게다가 아무 계획 없이 섬으로 왔다는 해리는 당장 잘 곳도 없다고 한다. 해리와 페넬로페를 외면할 수 없었던 마리안은 “우리 빌라에서 같이 지내자”고 제안하고 해리는 그걸 덥석 문다.
네 사람이 함께하는 여름휴가는 이렇게 얼떨결에 시작된다. 그리고 평화로웠던 마리안과 폴 부부의 일상에 커다란 파도(Bigger Splash)가 몰아친다. 해리는 남편인 폴이 옆에 있음에도 마리안에게 딱 붙어 애정을 표현하고, 조금 선을 넘었다 싶은 순간엔 세 사람의 우정을 핑계 삼아 하하 웃어넘긴다.
마리안은 목 수술을 핑계로 해리 앞에서 입을 꾹 닫고 있었지만 해리의 애정 공세에 그녀의 입술엔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마리안이 해리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쯤, 페넬로페는 폴에게 은근한 신호를 보낸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치정극
여름의 이탈리아는 눈이 부시게 반짝이고 아름답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그 아름다움을 넘치게 담아내는 감독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과 최근작 <챌린저스> 같은 이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건 시각적인 아름다움, 여름이 가진 힘이다.
<비거 스플래쉬>에서도 이런 힘을 느낄 수 있다. 따가운 햇살, 시원한 물,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의 활기. 인물들의 행동과 관계는 불쾌하고 짜증 나지만 아름다운 섬의 풍경이 불쾌함 일부를 정화시켜준다.
구불구불 불편한 관계
섬을 깎아만든 구불구불한 도로처럼 주인공 네 사람의 관계는 구불구불 구부러진불편한 형태로 이어진다.
마리안 부부와 그들에게 찾아온 오랜 친구이자 전 애인 해리. 그리고 1년 전에 알게 되었다지만 친딸인지는 정확하지 않은 딸 페넬로페. 해리는 남편이 있는 전 애인에게 들이대고, 딸이라는 페넬로페와 필요 이상의 스킨십을 나눈다. 그리고 페넬로페는 아빠의 친구이자 유부남인 폴에게 다가간다.
그래도 폴은 페넬로페를 어느 정도 밀어내지만 마리안은 해리를 매정하게 내치지 못하고 애매한 포지션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와중에도 폴의 신발을 구겨 신고 방으로 들어가는 페넬로페를 바라보며 불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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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옥죄던 옷과 도덕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본능을 따르다.
욕망의 정도와 비례하는 등장인물들의 노출 정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억제한다. 불편하고 더워도 다른 사람들 앞에선 옷을 입어야 하고 다른 이성과 신체적, 정신적으로 끌리더라도 나와 상대에게 애인, 배우자가 있으면 그 끌림을 쳐내거나 참아야 한다.
그런데 뜨거운 날씨,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작은 섬이라는 특별한 환경이 주는 흥분감에 도취된 것인지 해리와 페넬로페는 아무렇지 않게 신체를 노출하고 물에 뛰어들거나 망설임 없이 욕망을 드러낸다.
마리안과 폴은 처음엔 가벼운 상태로 물놀이를 즐겼지만 해리와 페넬로페가 빌라로 찾아온 이후엔 함께 물놀이를 하지 않거나 어느 정도 몸을 가리며 거리를 유지한다. 반대로 해리, 페넬로페는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어던지거나 물로 뛰어든다. 해리는 마리안의 빌라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내팽개치며며 수영장에 뛰어들고 페넬로페는 폴과 절벽에 갔을 때, 보란 듯 가벼운 몸으로 물가에 누워 폴을 바라본다. 그리고 두 사람은 뻔뻔하게 말한다.
“내가 너(마리안)를 고지식한 놈(폴)에게 넘기다니...”
“제 문제는 모든 매력 있는 존재(폴)와 사랑에 빠진다는 거예요.”
각 인물들이 얼마나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있는지는 그의 노출 정도/빈도를 통해 알 수 있다. 해리는 짧은 옷을 입진 않지만 수영을 하며 수시로 신체를 노출한다. 페넬로페는 대부분 짧은 옷을 입고 등장하며 폴에게 어필하기 위해 신체를 노출하지만 마지막에 섬을 떠날 땐 이제껏 입었던 것 중 가장 긴 길이의 원피스를 입는다.
마리안은 직접적인 노출은 많이 하지 않지만 몸선이 보이거나 등이 파이거나, 지퍼만 내리면 쉽게 탈의할 수 있는 원피스, 스커트를 주로 입는다. 폴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적당한 길이의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등장한다. 네 사람 중 가장 정돈되고 보수적인 느낌의 옷차림이다.
신체 노출이 많은 해리와 페넬로페는 적극적으로 욕망을 어필하고. 단정한듯하면서도 탈의하기 쉬운 옷을 입은 마리안은 대놓고 욕망을 보이진 않지만 결국 서서히 입을 열고 해리와 키스한다. 상대적으로 신체적 노출이 적었던 폴은 페넬로페의 유혹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폴과 절벽에 다녀온 날 저녁, 페넬로페가 다 놀았으니 집에 가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페넬로페가 유혹에 실패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페넬로페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절벽이 더 좋았다는 둥, 쉴 틈 없이 놀았다는 둥 도발적인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방에 들어가선 지친 표정이 된 걸 보면 폴이 정말 그녀에게 넘어갔을 확률은 적을 것이다.
극 중엔 옷과 노출처럼 인물의 상태를 표현하는 장치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땅과 물이라는 두 가지 배경이다. 땅과 물은 똑같은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물엔 부력이 있어서 중력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몸이 가볍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이러한 땅과 물의 차이를 하나의 장치로 이용한다.
땅은 중력처럼 인물을 붙잡는 무언가(이성이나 도덕적 관념)가 있는 장소, 물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장소다. 앞서 이야기했듯 해리는 누구보다 자주 가벼운 몸으로 수영을 즐기고 페넬로페 또한 홀로 수영장 위에 떠있거나 수영장과 절벽 근처 물가에서 폴을 유혹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마리안과 함께 수영장 옆에 누워있을 땐 폴과 6년 동안 만났다는 마리안에게 대놓고 6곡이 지나면 판을 뒤집어야 한다고 말하며 마리안을 자극한다.
반대로 마리안과 폴은 전처럼 물가에 자주 가지 않는다. 이들이 물에 가까이 가거나 닿는 장면은 해리, 페넬로페와 엮일 때가 전부다.
사건의 시작과 끝, 마리안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그녀 / 마리안의 목소리와 앨범
극중 사건은 모두 마리안과 그녀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고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리안이 처음 다짐했던 것처럼 해리 앞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이 아슬아슬한 관계가 시작되지 않았을 거고 해리가 죽는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거다.
그녀는 얼마 전 가벼운 목수술을 하고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태다. 하지만 해리와 대화를 나누는 걸 피하고 싶어서인지 마리안은 해리가 오기 전, 폴에게 자신의 목 상태를 꼭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목 수술을 핑계로 입을 꾹 다문다. 그리고 폴 또한 마리안이 전 애인인 해리와 말을 섞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해리는 마리안의 목 상태를 듣고도 끊임없이 마리안에게 말을 건다. 묻지 않은 잡다한 이야기와 근황부터 마리안과 둘만 아는 이야기까지. 결국 해리에게 마음이 동한 마리안은 스스로의 다짐과 해리와 대화하지 말라던 폴의 부탁을 뒤로하고 해리 앞에서 입을 연다. 이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급격히 줄어든다. 그리고 이 가까워진 거리는 폴과 해리의 싸움과 해리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불러온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 사건을 마무리 짓는 것 또한 마리안과 그녀의 목소리다. 해리가 죽은 후 마리안, 폴, 페넬로페는 경찰서로 가 진술을 하게 된다. 앞서 빌라에서 세 사람을 만난 서장은 마리안의 얼굴에 난 상처를 눈여겨보고 있는 듯 보였으나, 경찰서에 와선 “수영장에 뒷길이 있어요.” "누구라도(어쩌면 난민이) 들어올 수 있었어요.”라는 마리안의 증언에 집중한다.
서장에 말에 따르면 사건 당시 판텔레리아 근처 섬인 람페두사는 ‘주민보다 난민이 더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고, 판텔레리아도 어느 정도 난민 관련으로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판텔레리아는 난민을 그냥 길거리에 방치해두고 있으며, 여러 난민이 익사한 사건도 발생했지만 경찰들은 그에 크게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다. 심지어 서장은 “이번(해리) 사건도 끔찍하지만 더 끔찍한 일이 생길 것”이라며 난민을 범죄자 취급한다.
이 섬에서 난민은 골칫덩어리다. 그런데 마리안의 증언(뒷길, 난민 익사사건과 해리 익사사건의 발생 시기가 비슷함)을 빌미로 해리의 죽음에 난민을 엮으면 해리 사건도 해결이 되고 난민을 몰아낼만한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긴다.
서장이 마리안의 증언을 듣고 난민들을 심문해 보겠다고 하며 자리를 뜬다. 그리고 페넬로페가 떠나던 날, 그는 마리안의 앨범에 사인을 받으며 그녀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마리안을 사건 용의자에서 완전히 제외했다는 의미 난민을 큰 사건에 엮을 빌미를 제공한 마리안에게 감사한다는 중의적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야기를 돌아보면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은 모두 마리안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폴은 아내인 마리안을 온전히 지키고 싶어하고 해리는 마리안을 폴에게 소개해 준걸 후회하며 그녀를 되찾고 싶어 한다. 경찰 서장은 마리안과 직접적으로 엮일 수 없는 위치라 대신 그녀의 앨범에 사인을 받고 ‘이건 당신이 내게 준 것’이라며 기뻐한다. 대체 그녀에겐 무엇이 있기에 수많은 관중들과 이 남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걸까.
욕망은 수면 아래 묻어두는 게 좋다.
풀숲으로 던져도 다시 빌라 안으로 들어오는 뱀처럼, 펌프를 통해 물을 뺐지만 강한 비가 지난 후 다시 차오를 빌라 수영장처럼 욕망과 유혹은 언제든지, 몇 번이고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욕망은 이성이란 수면 아래 묻어두는 게 좋다. 하면 안 될 짓, 못된 짓은 하면 안 된다. 욕망을 이성 아래 묻지 못하고 날뛴다면 해리처럼 잔잔한 물 밑에 묻혀버리는 엄청난 엔딩을 맞이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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