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즈 앤 올> 리뷰, 해석 / 영화 평론
주요 내용
- 영화 <본즈 앤 올> 소개
- 카니발리즘이라는 낯선 소재를 받아들이는 방법
- 설리의 머리카락 밧줄, 3인칭 말투의 의미
- 매런이 태어난 날의 의미
- 매런이 가진 가족에 대한 애착과 연민
- 매런이 잇터들과 어울리지 않은 이유, 엄마의 사진을 버린 이유
- 본즈 앤 올의 의미와 리가 자신을 먹어달라고 한 이유
개봉일 : 2022.11.30.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공포,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130분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 테일러 러셀, 티모시 샬라메, 마크 라이런스, 마이클 스툴바그, 안드레이 홀랜드, 클로이 세비니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쉽게 채울 수 없고, 채워서도 안될 허전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본즈 앤 올>은 동족 포식 본능을 가진 외로운 소녀 매런과 리의 이야기다.
<본즈 앤 올>은 시리진 않지만 미지근하고 공허하지만 외롭진 않다. 아름답진 않지만 못 견디게 추하지도 않다. 사람을 먹는 사람,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식인종. 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그들을 외롭게 만든 잔인한 본능의 시작점을 향해 조용히 나아간다. 그리고 기어이 새로운 시작점을 찍는다.
주인공 매런에겐 엄마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녀의 인생에 남은 건 아빠뿐이다. 아빠는 하나뿐인 딸 매런을 지키기 위해 항상 매런과 함께하고 자신이 잠든 사이 매런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방문을 걸어 잠근다. 하지만 한창 친구 관계에 관심이 많을 나이인 매런은 아빠 몰래 창문을 열고 밤 외출을 감행한다.
그날 밤 아빠가 그토록 걱정했던 일이 터진다. 매런은 금방이라도 타오를듯한 붉은빛의 매니큐어가 발린 친구의 손을 물어뜯는다. 매런과 아빠는 급하게 짐을 싸 메릴랜드로 도망친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때쯤, 아빠가 매런을 포기하고 떠난다. 매런은 아빠가 남긴 테이프와 출생증명서를 확인한다. 테이프엔 매런의 첫 식인 경험과 그녀의 본능, 아빠가 겪었던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고 출생증명서에는 아빠가 지금껏 알려주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엄마가 나를 낳은 곳은 미네소타주, 엄마의 이름은 저넬 메이 컨스. 매런은 한줌의 정보를 쥐고 나를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난다.
아빠의 보호 없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그녀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세상과 같은 본능을 가진 잇터들을 만난다. 매런과 비슷한 나이대의 소년 리는 기꺼이 매런의 여정에 함께하기로 약속한다.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던 두 사람은 같은 상처를 가진 서로를 보듬으며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매런과 리가 처한 상황과 그들이 가진 본능이 이들을 망설이게 만든다. 누군가를 향한 애정은 곧 큰 욕망과 굶주림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매런과 리는 불안한 사랑을 느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린다. 이어 매런이 태어난 동네 미네소타주에 도착한 그들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아무튼 청춘물
카니발리즘이라는 낯선 소재를 받아들이는 방법
개인적으론 항상 아름다운 것만 그려낼 것만 같았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이런 충격적인 소재로 영화를 만들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티모시 샬라메가 함께하는 두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 <본즈 앤 올>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이을 또 다른 청춘물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면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본즈 앤 올>은 청춘물이 맞다. 영화에 나오는 소년 소녀는 사랑을 느끼고 서로 마음을 나누며 성장한다. 그런데 이 성장의 과정을 담은 그릇이 평범하지 않을 뿐이다.
카니발리즘이라는 소재가 쓰인 만큼 거부감이 드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사람을 해치고 온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게 어떻게 성장의 과정인지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소재 자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기대한 이들에겐 당연히 추천할 수 없는 영화인 건 맞다.
하지만 이 영화와 소재를 너무 극단적으로 받아들이진 않으면 좋겠다. <본즈 앤 올>은 카니발리즘을 판타지화, 미화하는 영화가 아닌 그저 그러한 본능을 가진 소년 소녀의 외로움과 사랑을 담은 이야기다. 카니발리즘이란 특성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밀어내기보단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하나의 장치로 받아들인다면 이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 것이다.
<본즈 앤 올>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생김새, 입맛, 체취, 체질 등 고유의 특성을 부여받는다. 이는 살아가면서 변하기도 하고 평생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본즈 앤 올>은 이러한 고유의 특성으로 식인 본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 잇터들이 주인공이다. 원하지 않았으나 태어나 보니 그렇게 된 사람들.
이 본능을 갖고 태어난 건 죄가 아니지만 사회에서 이는 아주 큰 죄다. 잇터들은 이런 본능을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된다. 주인공 매런은 뒤늦게 타고난 본능을 깨닫고 절망하고 방황하지만 지속적으로 이에 저항하며 자신이 바라는 올바른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카니발리즘'이라는 소재는 이러한 소외된 사람들과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을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영화는 이 소재를 오락 요소나 관심 끌기, 자극성을 위한 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식인 행위보다 외로움, 정체성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낯선 불쾌감은 점점 흐려진다.
사랑을 기대할 수 없는 외로운 사람들
외로운 매런, 리, 설리. 설리의 머리카락 밧줄, 말투의 의미
본능을 숨기지 않으면 괴물이 되고 본능을 숨기려면 외로워져야 한다. 남들과 다른 본능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잇터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외로운 삶을 이어간다. 이들에게 외로움은 인생의 기본값이다.
매런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수도, 사랑을 할 수도 없다. 매런이 사랑한 대상인 베이비시터, 캠프에서 만난 남자아이는 매런에게 잡아먹혔고 동족 포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잇터는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사랑은 곧 죽음이고 나는 괴물이다. 괴물은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매런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외롭다.
리의 삶도 외롭다. 리는 가족에게 본능을 숨기고 여러 핑계를 대며 길거리를 떠돈다. 리가 본능을 숨긴 덕분에 리의 가족은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리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삶의 형태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설리도 외롭다. 그는 어린 나이에 가출을 했고 노인이 된 지금까지 홀로 지내고 있다. 죽은 사람만 먹는다는 설리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모아 두껍고 튼튼한 밧줄을 만든다. 곁에 사람을 둘 수 없으니 머리카락 밧줄로 위로를 하는듯하다.
설리는 3인칭 화법을 쓴다. 그는 스스로 설리는 어땠고, 설리는 뭐 했다고 말한다. 그가 3인칭 화법을 쓰는 이유는 유아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또는 설리라는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소녀 매런이 설리의 이름을 불러준다. 설리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그 소녀에게 집착한다.
모든 것이 시작된 5월
생명이 움트는 계절인 봄에 태어난 죽음을 부르는 소녀, 18번째 봄에 다시 태어나다.
5월, 생명이 움트는 봄. 죽음을 부르는 식인종 소녀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5월에 시작된다. 출생 신고서에 적힌 매런이 태어난 날은 1970년 5월 19일, 엄마의 이름은 저넬 메이 컨스(Janelle May Kerns)이다. 아빠는 매런이 18세가 되는 해의 5월. 매런을 남겨두고 떠나고 그녀는 준비도 없이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매런은 아빠의 테이프를 통해 자신이 식인 본능을 지니고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이런 본능을 가진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매런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허기가 느껴지면 어떻게 달래야 하는 건지, 사람이 사람을 먹어도 되는 건지, 먹게 된다면 누굴 먹어야 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평생 혼자 외롭게 살아야 하는지. 왜 이런 욕구를 느끼는지. 떠오르는 질문들은 많지만 이에 답해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매런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삶이 시작된 곳에서 나를 낳아준 사람을 만난다면 이 질문에 알맞은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매런이 다른 잇터들과 다른 점
가족에 대한 애착,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진 매런
매런은 여행을 하며 다른 잇터들을 만난다. 죽은 사람만을 먹는 잇터, 뼈까지 먹는 잇터, 본능이 없음에도 사람을 먹는 잇터. 그리고 가족이 없는 사람만을 먹는 잇터 리와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스스로 손을 먹어버린 엄마까지. 매런은 그들의 식습관과 삶을 지켜보고 몇 사람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잇터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긴 어려워 보인다.
잇터가 사람을 먹는 것은 우리가 소, 돼지를 먹는 것과 같은 행위다. 잇터의 입장에서 보면 식인 행위에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매런은 사람을 먹는 것에 큰 죄책감과 거부감을 느낀다. 의도치 않게 가족이 있는 남자를 먹게 된 매런은 큰 충격에 빠지고 리는 우리가 가족이 있는 걸 모르고 먹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위로하지만 매런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리와 다른 잇터들, 매런은 같은 식습관을 가졌지만 이들에겐 다른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매런은 가족이란 관계에 애착이 있다는 점, 사람을 먹으며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극 중에서 돈을 훔치기 위해 도축장에 몰래 들어간 매런과 리가 잠시 그곳에 앉아 소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매런은 이렇게 묻는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얘들(소)도 다 엄마, 아빠, 형제자매, 사촌, 자식이 있다고? 친구도?" 리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말을 돌린다.
설리와 제이크 같은 잇터들은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떠돌며 산지 오래되었고 큰 죄책감 없이 사람을 먹는다.
리는 폭력을 일삼는 아빠 밑에서 자랐고 여동생 케일라를 사랑하긴 하지만 가족 자체에 대한 애착은 없는 편이다. 가족이 없는 사람만을 골라 먹는다는 리는 식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가족이었던 아빠를 먹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매런은 아빠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가 설리와 함께 하몬 부인을 먹을 때, 카메라는 하몬 부인이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비춘다. 리의 이모집에 도착한 매런은 집안을 구경하던 중 이모가 남긴 사진들을 구경하고, 할머니가 준 엄마의 사진을 손에 소중히 쥐고 있기도 한다. 이 장면들과 앞서 언급한 소에 대한 질문은 매런이 여전히 가족에 대한 애착과 그로부터 나오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 연민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잇터의 삶을 거부하는 매런
몸에 피를 묻히지 않고 다른 잇터들을 따돌리는 행동, 엄마의 사진과 아빠의 테이프가 가진 의미
매런은 다른 잇터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그들과 다르게 몸에 식사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잇터들을 거부한다.
하먼 부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설리는 온몸에 피를 묻히며 하며 식사를 하지만 매런은 가디건을 마치 앞치마처럼 사용하여 가디건을 제외한 부분엔 피를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식사를 마친다. 배리를 먹은 리와 마주치는 장면에서 매런은 리가 피를 묻히고 나타나자 몸에 피가 묻었으니 닦아야겠다고 말한다. 함께 가족이 있는 남자를 먹었을 때도 리는 피를 그대로 묻히고 차를 운전하지만 매런은 차에 있는 티슈를 이용해 피를 깨끗이 닦고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매런은 설리가 씻으러 간 사이 급하게 집을 벗어나고 함께 가자며 따라오는 설리와 캠핑지에서 만난 제이크와 브래드를 따돌리고 도망간다. 이 행동들은 매런이 그들과 같은 식습관을 갖고 있긴 하지만 잇터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잇터들과는 다른 삶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매런이 엄마의 사진을 버리고 아빠가 남긴 테이프를 풀어버리는 행동들은 아빠가 알고있고, 엄마가 물려준 잇터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그녀의 의지를 보여준다.
매런이 엄마를 만나기 위해 병실로 들어갔을 때, 매런은 손을 살짝 등 뒤로 모은 채로 엄마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이때 매런의 몸은 곧 등장할 그녀의 엄마처럼 팔의 일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엄마가 괴물들은 없어져야 한다며 매런에게 달려들고 매런은 팔을 뻗어 엄마를 밀어낸다.
핏줄은 강하다. 매런은 엄마의 피를 받아 잇터로 태어났다. 매런이 엄마처럼 잇터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외로움에 지쳐 사랑을 하게 된다면 엄마와 비슷한 엔딩을 맞이할 것은 뻔하다. 매런은 엄마를 밀쳐내고 병원을 나서며 지금껏 반복해온 정체성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린다. 외롭게 살고 싶지 않다면, 사랑하는 이를 해치고 싶지 않다면 잇터의 본능을 버려야 한다고.
본즈 앤 올. 스스로를 내던져 매런이 되고자 한 리
사랑하는 이에게 물들고 결국엔 그의 일부가 되다.
매런과 리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사랑을 나눈다. 여정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서서히 닮아간다.
리는 다른 잇터들과 매런의 중간 지점에 있는 인물이었다.
배리를 먹고 매런과 함께 그의 집으로 온 리는 턴테이블을 작동시켜놓고 신나게 노래를 즐긴다. 배리는 가족과 함께 살지 않는 약에 절은 사람이었고 리는 그를 먹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는 상태다. 리는 방안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이어간다. 그러다 거울 하나가 리의 시선에 들어온다. 리는 피로 범벅이 된 채 거울 안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춤을 멈춘다. 그리고 곧바로 욕실로 들어가 피를 전부 씻어내고 밖으로 나온다. 유원지에서 가족이 있는 남자를 먹었을 때, 아빠를 먹었을 때도 리는 뒤늦게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리는 매런처럼 적극적으로 이 본능에 저항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함께 여행을 하며 매런에게 물들게 된 리는 매런의 뜻에 따라 본능을 누르고 부족한 허기를 사랑으로 채워가며 평범한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사람, 집도 없고 차는 이틀에 한 대꼴로 지나다니는 공허한 도로를 헤매던 두 사람은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 속 다세대 주택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설리가 다시 등장하며 둘의 평범한 삶은 위기를 맞는다. 온 집안이 붉은빛으로 물들고 리는 치명상을 입는다. 매런은 리를 일으켜 병원에 데려가려고 하지만 리는 매런에게 자신을 전부 먹어달라고 부탁한다. 케일라는 설리에게 죽었고 리의 몸도 서서히 죽어간다. 리는 더 이상 자신이 살아있을 이유도 힘도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사랑하는 이의 일부가 되기로 한다. 매런은 리의 뼈까지 전부 먹으며 온몸으로 그를 받아들인다.
캠핑지에서 매런, 리, 제이크, 브래드 네 사람이 모닥불을 피우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 제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뼈까지 다 먹기 전, 후는 완전히 달라."
"사랑이 널 자유롭게 해줄지도 몰라."
리를 전부 먹은 이후 매런에게 펼쳐질 세상이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평범한 세상일지 잇터의 외로운 세상일지, 제이크가 말했던 '자유'가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인지 본능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되는 것인지는 엔딩에 정확히 제시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껏 매런이 본능에 저항해왔던 것, 매런과 리가 마음을 맞춰 평범한 삶을 살려 했던 것을 생각 해보면 매런이 잇터가 아닌 다른 정체성을 얻고 평범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평범한 삶을 바랐던 외로운 두 개의 삶이 만났으니 그 결과는 파멸이 아닌 사랑이 깃든 평범한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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