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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y 13. 2024

찝찝하고 쓴, 봉준호 감독의 맛

영화 <플란다스의 개> 리뷰, 해석 / 영화 평론, 한국 블랙코미디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플란다스의 개> 소개, 줄거리

- 한번 버리는 건 어렵지만 두 번 버리는 건 쉬운 양심. 주인공 윤주가 양심을 버리는 순간들

- 영화에 나오는 개와 윤주에게 현남의 의미

- 영화에 나오는 노란색, 빨간색의 의미

플란다스의 개 (A Higher Animal, 2000)

찝찝하고 쓴, 봉준호 감독의 맛

개봉일 : 2000.02.19.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코미디, 블랙코미디

러닝타임 : 108분

감독 : 봉준호

출연 : 이성재, 배두나, 김호정, 변희봉, 김뢰하, 고수희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플란다스의 개>는 2000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기생충>을 비롯해 다른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과 비슷하게 계층 간의 갈등, 일상 속의 비일상성, 사라진 양심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익숙한 공간인 아파트 지하실과 옥상, 복도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적인 사건들과 비양심인들에 대한 대범하고 스산한 풍자와 그 시절의 아파트와 어리고 젊은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너무 날것의 느낌이 들어 일부 장면에선 불편함이 느껴지기도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초등학생 시절 아파트 옥상에서 그을린 개 가죽을 보았던 어린 날의 충격적 기억’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사건이 개 납치와 살해다. 이는 그다지 유쾌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이러한 소재를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라면 <플란다스의 개>를 절대로 추천하지 않겠다.

<플란다스의 개>는 한 중산층 아파트에서 일어난 개 실종사건에 연루된 아파트 주민 고윤주와 아파트 경비실 경리 직원 박현남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정식 교수가 되지 못하고 시간강사를 전전하는 반백수 고윤주. 그는 현재 아주 예민한 상태다. 주변 사람들은 잘나가고, 아내는 나를 대신해 임신한 몸을 끌고 회사에 출근하고, 교수가 될 희망은 보이지 않고.. 눈치는 보이지만 어디 탓할곳도 화풀이할 곳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땅한 화풀이 대상을 하나 찾는다. 그건 바로 아파트 어딘가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 한 마리. 윤주는 화난 상태로 아파트를 샅샅이 뒤지지만 개를 찾는데 실패한다.

그는 개를 포기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운명처럼 옆집 현관문 앞에 서있는 개 '삔돌이’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납치해 지하실에 가둔다.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 싶은 순간, 윤주는 자신이 성대 수술로 짖지 못하는 개를 납치했음을 깨닫지만 죄책감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는 삔돌이 납치보다 더한 짓을 저지른다.


현남은 아파트 관리실 경리 직원이다. 그녀는 매일 문구점 직원 장미와 어울리며 농땡이 치는 재미로 하루를 살아간다. 현남은 평소처럼 아파트 옥상에서 장미와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윤주의 범죄 현장을 목격한다.

범죄자를 검거해 용감한 시민상을 타는 게 목표였던 현남은 망설임 없이 윤주의 뒤를 쫓아 달린다. 하지만 현남은 윤주를 잡는데 실패하고 두 사람은 또다시 발생한 개 실종 사건을 계기로 만나게 된다.

기득권층이자 약자, 양심이 있기도 없기도 한 사람들
마냥 웃기는 어려운 블랙코미디


<플란다스의 개>는 보기보다 더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생충>과 같이 <플란다스의 개> 또한 계층과 양심을 주제로 한 블랙코미디다. 두 영화는 모두 정확히 양심적인 놈, 양심적이지 않은 놈. 기득권층과 약자의 선을 정확히 나누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다.

양심 없는 인간들을 욕하는 인물이 그보다 더한 양심 없는 짓을 하기도 하고, 정의감에 활활 불타는 인물이 누군가에겐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없이 나쁜 놈으로 보이던 인물이 작은 양심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기득권층인 것처럼 거침없이 행동하던 인물들이 한순간에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윤주와 현남을 포함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기득권층이자 약자이고 누군가에겐 양심 없는 인물, 누군가에겐 양심적인 인물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양심 없는 인간들은 좀 찔려봐라’하고 만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한번 넘는 게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양심은 삼각형 모양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양심은 삼각형이라고 했단다.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삼각형 모양의 양심이 움직이며 마음을 콕콕 찔러 불편하게 만드는데, 그 행동을 너무 오래 반복하면 삼각형이 닳아버려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플란다스의 개> 주인공 윤주를 보며 딱 이 말이 생각났다.


윤주는 시간제 강사다. 일단 시간제 강사라는 타이틀은 갖고 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일거리는 거의 없는 듯 보인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학장에게 돈을 대주고 대학 교수직을 차지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돈을 구하지 못해, 또는 양심을 버리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게 나름 마지막 양심을 지키고 있던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온다. 원래 교수직을 맡아둔 사람이 사고로 죽었다는 것. 선배를 통해 그 소식을 들은 윤주는 그 남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건 기회. 1500만 원만 준비하라’는 선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윤주와 선배가 서있는 뒷배경이 서서히 일그러지는 것을 보면 윤주는 선배의 속삭임에 완전 말려들고 있는듯하다.


뇌물에 대해 고민하다 집에 들어온 윤주는 잠든 아내 옆에서 “그래 나도 교수 좀 해보자!”, “내가 교수되면 일 그만둬!”라고 호기롭게 외치지만 적극적으로 돈을 마련할 만한 행동을 하진 않았다.

그가 ‘정말 학장에게 돈을 찔러줘야겠다’고 모든 양심을 내려놓은 시점은 바로 할머니의 개를 옥상에서 떨어트려 죽인 이후부터다. 윤주는 원래도 조금 양심 없는 놈이긴 했지만 적어도 눈치나 죄책감은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면 수발을 들고 투덜대긴 해도 아내가 먹고 싶다는 호두를 깠다. 처음 실수로 삔돌이를 납치했을 때도 삔돌이가 죄 없는 개라는 걸 안 후 죄책감에 시달려 지하실로 달려 내려갔다.


하지만 ‘나를 괴롭게 한 개는 죽여도 돼.’라는 합리화를 하며 할머니의 개를 죽인 후, 윤주는 더욱 막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내에게 호두 깨던 망치를 던지고 범죄 현장을 목격한 현남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리고 후반부에 들어선 돈을 깔아둔 케이크 상자를 들고 학장을 만나러 간다. 윤주의 아내가 케이크 박스에 돈을 깔고 케이크를 넣으려 할 때, 케이크 위의 딸기 장식이 박스 윗면에 닿아 잠시 멈칫하는 장면이 있다. 그걸 본 윤주는 딸기를 집어먹는다. 윤주는 마지막으로 양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치 과속방지턱과 같았던 딸기를 집어먹고 정식 교수직이라는 편안한 달콤함을 누린다.

개 = 윤주의 양심?
영화에 나오는 개의 의미, 양심을 찾아준 현남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는 윤주의 양심을 뜻하는 존재다. 평소와 같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윤주는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 소리에 자극을 받는다. 이때 윤주는 ‘누가 교수가 됐다더라.’는 소식을 전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순간 윤주의 양심 또한 시끄러운 개 한 마리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윤주는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시끄러운 개를 죽일까?’하고 고민했던 것처럼 ‘양심을 포기하고 뇌물로 교수가 될까?’ 고민하지만, 삔돌이를 바로 죽이지 않고 지하 옷장에 가뒀던 것처럼 날뛰는 양심을 고이 가둬둔다.

그런데 그 봉인은 타인에 의해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만다. 삔돌이는 윤주가 꺼내주러 오기 전에 이미 경비원의 손에 잡혀 보신탕이 되고 윤주의 양심은 공석이 생긴 지금이 기회라는 선배의 속삭임에 철저히 요리당한다.


그럼에도 윤주는 마지막 양심을 지키며 살아간다. 하지만 소음의 진짜 주인공이었던 할머니의 개를 본 순간 윤주는 그 개를 납치하고 옥상에 올라가 마지막 양심을 버린다. 개를 죽여선 안된다는 양심, 그리고 뇌물을 줘서는 안된다는 양심 모두를. 윤주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며 돈을 구해보려 하지만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 공석이 천년만년 유지되는 것도 아닐 텐데, 윤주는 점점 더 마음이 급해진다.

이런 심각한 상태에서 아내가 갑자기 푸들 순자를 데려온다. 윤주는 순자를 산책시키던 중 남이 버린 복권을 들고 일확천금의 행운이 오길 기대한다. 내가 복권을 돈 주고 산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온 것도 아니면서(얼마 전에 개도 죽여놓고..) 뇌물로 줄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길 바라다니. 참 없어 보이는 그림이다.

그렇게 복권을 긁는 사이 아내가 데려온 소중한 개이자 새로운 양심이었던 순자가 사라지고 잠시 조용해졌나 싶었던 윤주는 아내에게 망치를 던지는 등 폭력적이고 양심 없는 모습을 보인다.


아내와 다투던 중, 그녀가 퇴직금을 뇌물로 쓰려고 했다는 말을 들은 윤주는 뒤늦게 사라진 순자를 찾지만 스스로 찾아내는데 실패한다. 순자를 찾은 사람은 다름 아닌 현남이다. 평소에도 정의감에 불타고 있던 그녀는 연쇄 개 실종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에 끈질기게 집착해 결국 노숙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빠진 순자를 구해낸다.

현남 덕분에 겨우 아내의 퇴직금을 쓸 수 있게 된 윤주는 학장에게 돈을 건네고 아파트로 돌아온다. 모든 개를 죽이거나(할머니의 개) 죽게 만들고(삔돌이) 또 스스로 찾지 못한(순자) 윤주에게 양심이란 건 남아있지 않다. 그는 스스로 양심을 죽였고 죽게 만들었고, 잃어버린 것을 스스로 찾지도 못했다.


현남은 윤주에게 순자를 찾아줬다. 그리고 약간의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함께 돌려준다. 윤주는 현남이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라도 생긴 건지 죄책감을 좀 덜고 싶었던 건지, 현남에게 갑자기 자신의 범죄 사실을 밝힌다. 하지만 현남은 윤주를 욕하지도 위로하지도 화내지도 않고 그저 그가 잃어버린 신발을 신겨줄 뿐이다. 차라리 현남에게 욕을 먹었다면 마음이 한결 편해졌을지도 모르는데, 윤주는 그렇게 찝찝한 마음을 안고 교수가 된다.

정확히 구분되지 않은 약자와 강자. 양심 있는 자와 양심 없는 자


윤주와 현남이 엘리베이터와 복도를 이용해 아파트의 입구부터 옥상을 막힘없이 오르내리는 그림처럼 극중 인물들은 약자와 강자. 양심 있는 자와 양심 없는 자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윤주는 힘없는 할머니와 꼬마의 개를 납치하는 강자이지만 약자이기도 하다. 윤주의 대학원 동기들은 우리 같은 인문계 대학원생은 ‘결혼 시장에서 선호하는 직업 중 50위’라고 하며 결혼 시장에서의 최약체라고 말한다. 또한 윤주는 학장에게 돈을 바쳐야만 하는 약자이기도하고 모임 비용 만원에 고민할 만큼 동기들 사이에서도 뒤처진 약자다. 그리고 그는 개를 죽이고 뇌물로 취직하는 양심 없는 인간이지만 지하철에서 구걸을 하는 아기 엄마에게 만 원을 꺼내주는 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현남은 약자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딱히 약자랄 것도 강자랄 것도 없는 중간 위치에 있는 그녀는 약자인 할머니와 꼬마가 들고 온 실종 전단지에 도장을 찍어주며 그들의 사건에 관심을 갖는다.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한 정의라 해도 어쨌든 현남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개 실종 사건에 집중하고 순자를 구해낸다.

하지만 이렇게 양심 있어 보이는 현남도 다른 면에선 양심이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밥 먹듯 업무를 빼먹고 장미와 농땡이를 치고 사건을 해결하겠다며 아파트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지하철 노약자 석에 앉아 졸던 현남은 윤주가 돈을 줬던 그 아기 엄마의 전단지를 무시하고, 장미와 함께 주차된 차의 사이드 미러를 부수고, 술을 잔뜩 먹은 날 지하철에서 토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경비는 개를 잡아먹는 강자였다가 또 ‘관리소에서 (노숙자가 지하실에 살았다는)이 사건을 알면 곤란해진다’고 말하는 약자이기도 하다. 계급 구조 속에서 이들은 약자이자 강자이고 누군가에겐 양심적인 사람이 되기도 양심이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영화에 나오는 노란색, 빨간색의 의미


개 납치 사건을 기준으로 보면 극중 계급은 이렇게 나뉜다.


개를 죽이거나 먹는 인간 > 범인을 쫓는 현남 >= 개를 잃어버린 주인 > 개


이러한 인물 간의 계급/힘 차이는 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강자는 빨간색, 약자는 노란색. 빨간색은 윤주가 할머니의 개를 죽일 때 입었던 옷과 모자, 경비가 깔고 앉는 플라스틱 통에서 찾아볼 수 있고 노란색은 현남이 윤주를 쫓을 때 입었던 후드티, 개를 잃어버린 꼬마와 윤주가 비 오는 날 전단지를 붙일 때 입었던 우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빨간 옷을 입고 개를 죽이던 윤주가 개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노란 우비를 입고 전단지를 붙이게 되는 부분이 아이러니하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란다스의 개>엔 비일상적인 장면이 없다. (개를 죽이는 행위가 일상적이란 게 아니라, 그냥 일상에서도 일어날만한 일이라는 뜻이다.) 개, 아파트, 사람, 소독차, 술집, 지하실 등.. 판타지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비일상적으로 느껴짐과 동시에 한편의 소설 같은 구석이 있다. 현실적인 것으로만 이루어진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소설. 첫맛은 참 찝찝하고 쓴데 다시 먹어보면 또 괜찮은 맛의 소설. 너무 날것의 느낌이라 소화시키기 만만치 않았지만 후회는 없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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