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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y 16. 2024

누구에게나 나를 향한 사랑과 믿음은 필요하다

영화 <이프: 상상의 친구> 리뷰, 해석 / 애니메이션 가족 신작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이프: 상상의 친구> 소개, 줄거리

- 현실감을 얻고 순수함, 상상력을 잃은 어른들을 위한 영화

- 이프의 정체와 의미, 이프 뜻

- 비와 블루의 이름이 가진 의미

- 아이, 어른에게 모두 필요한 것. 자신을 향한 사랑과 믿음

이프: 상상의 친구 (IF, 2024)

누구에게나 나를 향한 사랑과 믿음은 필요하다

개봉일 : 2024.05.15.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코미디, 판타지, 드라마

러닝타임 : 104분

감독 : 존 크래신스키

출연 : 라이언 레이놀즈, 존 크래신스키, 케일리 플레밍, 피비 월러브리지, 루이스 고셋 주니어, 스티브 카렐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1개 (엔딩 크레딧 이후)


어릴 땐 어른이 되면 저절로 강해질 거라 생각했다. 누가 뭐라 해도 뒤돌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꿋꿋하게 무너지지 않는 존재. 어른이란 그런 존재라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정말 나이만 먹었지 어릴 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오히려 더 연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에겐 위로와 웃음, 사랑이 필요하다. 영화 <이프: 상상의 친구>는 언제나 필요한 그것들을 착하고 담백한 방법으로 전해준다.

아이들은 상상을 하며 자란다. 우리나라에선 이 상상력을 이용해 인형이나 장난감 등을 마치 생명을 가진 친구처럼 대해주는 아이들이 많고, 서양에선 이에 더불어 침대 밑, 옷장 속에 사는 형체 없는 상상 속 친구(Imaginary friend)를 만드는 아이들도 많다. <이프: 상상의 친구>는 어린 시절 한 번쯤 꿈꿔봤을 이런 상상 속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아이들의 상상력만큼이나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그들의 세상 속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순수함뿐만이 아닌 나를 위하는 마음까지 다시 느껴볼 수 있는 영화다.

상상 속 친구들과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라 어른이 보기엔 유치한 어린이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프: 상상의 친구>는 어린이보단 어른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어른을 위한 영화에 가깝다. 특히 어릴적 상상의 친구, 애착 인형에 대한 추억이 있는 어른이라면 이 영화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실 나는 어린이 영화를 나누거나 멀리하는 건 좀 무의미한 일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어린이는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어른용 영화를 피하는 게 맞지만 어른이 어린이 영화를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오히려 피하기보다 가끔은 어른의 무게감을 내려놓고 맘 편히 이런 이야기들에 위로를 받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침대 밑 괴물에서 시작된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와 알고 보면 인형에게도 영혼이 있을 거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영화 <토이스토리>를 생각해 보자. 어른이 되고 나서 더 감동적인 영화로 다가오지 않았나.


우리는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며 많은 걸 얻고 또 많은 걸 잃는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 현실감각과 순수함, 상상력이다. 우리는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며 현실감각을 얻는다. 그 대신 순수함과 상상력을 잃는다. 인형 친구, 로봇 친구, 형체 없는 상상 속 친구는 순수함, 상상력과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이 주던 따스한 위로도 함께 잊힌다. <이프: 상상의 친구>는 언제 잊힌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까마득한 그때의 감정들을 다시 불러온다. 난 아직 어른이 되지도 못했으면서 왜 어른인 척하며 그때의 마음을 다 잊고 살았을까.

<이프: 상상의 친구>의 주인공인 '비'는 12살 소녀다. 비는 어린 나이에 엄마와 이별했고 그로 인해 빠르게 어른이 된다. 이어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비는 병원 근처 뉴욕의 할머니 집으로 잠시 거처를 옮긴다. 할머니는 이전 여름(아마도 엄마가 입원했을 때로 추정)에 비가 머물렀던 방을 깨끗이 정돈하고 비를 맞이한다. 할머니는 지금보다 더 어렸던 비가 그린 그림과 재료들을 모아둔 박스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비는 단호하게 "저 12살이에요. 이젠 그런 거 안 해요."라고 대답한다. 비에게 그 여름은 그다지 기억하고픈 추억이 아닌듯하다.

비의 아빠는 어른인 척, 괜찮은 척하고 있는 비를 위해 일부러 더 밝은 모습으로 유치한 장난을 치며 비를 맞이한다. 비는 자신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니 괜찮다고 말한다. 어린 소녀는 불안감을 숨기고 의젓한 모습으로 뉴욕에서의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벽장 속에서 낡은 캠코더를 발견한 날 밤. 충전기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낯선 느낌이 드는 한 생명체를 마주치고, 윗집에 살고 있는 '이프'들을 만나 그들을 돕게 된다. 비와 이프들은 이 여정을 함께하며 각자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을 찾아간다.

너무 빨리 어린아이이기를 포기한 소녀와 어린아이들을 떠나보낸 이프들의 만남


비는 어린 나이에 엄마와 이별했다. 시간이 지났지만 비의 나이는 아직 12살, 어린 나이다. 비는 12살 답지 않게 의젓하고 덤덤해 보인다. 아빠가 데리러 오지 않아도 혼자 짐을 싸 들고 할머니 집을 찾아오고 일부러 밝게 장난을 걸어오는 아빠를 되려 진정시킨다. 아무도 비에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라 하지 않았음에도 이른 이별은 비를 필요 이상으로 어른스러워지도록 만든다. 엄마가 보고 싶고 아빠가 아픈 게 무섭다고 눈물 콧물 다 빼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건만 비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마음의 문을 꼭 걸어 잠근다.


비가 만난 이프들은 모두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은퇴한 이프들이다. 이프들은 아이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다. 이프들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나가고 현실 속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잊어갈 때쯤 아이들을 떠나 은퇴 이프 모임으로 들어간다. 이프들은 각각 다른 모습과 개성을 가졌지만 은퇴 후엔 긴 복도에 쭈욱 늘어선 비슷한 방 안에 앉아 아이들을 그리워한다.


비는 처음엔 윗집에 사는 이프들을 경계하지만 은퇴 이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비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상상력 그 자체인 이프들을 만나고 그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방문하며 아이다운 마음을 회복해간다. 비는 메모리 레인에서 오랜만에 상상의 나라를 펼친다. 그러자 답답해 보였던 천장이 높아지고 각 이프들에게 딱 맞는 공간들이 생겨난다.

비가 상상한 숲 사이에서 등장한 유니콘 이프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꼭 꿈같다!" 이프들과 비, 어린아이의 만남은 마치 꿈같다. 어른들은 말해도 믿지 못할 꿈. 이프와 비, 아이들은 어른들은 알지못하는 그 꿈속에서 이프와 마법같은 우정과 위로를 나눈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혼자가 아닌 우리. 어쩌면 지금도 가까이 있을지 모르는 이프
이프의 정체 / 의미


칼과 비가 은퇴 이프 모임을 찾아 처음으로 루나 파크에 갔을 때 칼은 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혼자 아니잖아! 이젠 알 때도 됐잖아."

비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아빠까지 입원을 하게 되자 큰 불안감을 느낀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겨질까 봐. 그런데 비는 몰랐지만 칼은 비의 가장 가까운 곳, 비의 마음과 추억 속에서 비를 지켜주고 있었다.


이프는 표면적으론 아이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존재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가장 가까운 곳인 내 마음속에 있는 나를 향한 사랑과 믿음. 한마디로 내 마음의 결정체가 아닐까 싶다. 이프는 아이의 생각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자신을 만들어낸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응원하고 사랑한다. 이프를 만드는 것도 이프를 통해 위로와 사랑을 받는 일 모두 한 아이의 마음과 상상력에 의해 일어난다. 하지만 아이는 커가면서 이프를 잊고 외로운 어른이 된다.

이프가 잊혀지는 과정은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나를 위해 마음을 쓰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외로운 어른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순수한 아이들은 나를 사랑하고 믿고, 위로하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경쟁을 겪고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며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기애와 믿음을 잃어간다. 그리고 나 자신을 의심하고 겸손의 탈을 쓴 자기 비하를 반복한다. 두렵고 걱정되고 무서워도 어른이니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참고, 가끔은 어른스럽지 못한 자신을 자책한다. 어른들은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나를 위하는 방법을 잊고 마음의 일부를 잃어간다.


아이들은 당연히 자신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결정체인 이프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 어른들은 비처럼 슬픔에 마음을 닫고 이프를 잊어버린 아이들을 위해 지속적인 사랑과 믿음을 주어야 하고 곁에서 아이를 안아주어야 한다.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고 믿으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당연히 어른들에게도 이프가 필요하다. 괜찮을 거라며 나를 안아줄 자기애와 나를 믿어주는 마음. 그 결정체인 이프가 있어야 한다.

극 중에 등장하는 어른인 할머니, 제러미, 아빠, 간호사 재닛, 프론트 직원 등도 모두 잊고 지냈던 이프들을 다시 만난다.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잊어버려야 했던 상상 속의 친구와 재회하고 든든한 내 편을 얻은 그들의 표정 또한 전보다 밝고 행복해 보인다. 비의 말처럼 삶은 항상 재밌을 수 없고, 벤저민처럼 넘어지고 다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나를 믿고 사랑해 줄 이프를 꼭 마음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추억과 사랑의 흔적
비와 블루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이프 외에도 아이의 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 더 있다. 그건 바로 사랑과 추억이다.

극 중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이프 블루와 비에겐 공통점이 있다.

아빠의 병실을 찾아가던 비가 벤저민과 처음 만나는 장면, 벤저민은 비의 이름을 듣고 "비? 뭐의 줄임말 이야?" 라고 묻는다. 비는 "무엇의 줄임말인지는 몰라. 그냥 엄마가 나를 비라고 불렀어."라고 답한다.

보라색 털 뭉치인 블루는 자신의 이름을 블루라고 소개하고 비는 "블루? 무슨 소리야? 넌 보라색인데"라며 의아해한다. 블루는 "내 사람 친구(제러미)가 나를 블루라고 불렀어. 색맹이었거든."이라고 답한다. 내 이름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내 이름이 내 털과 다른 색인 걸 알아도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이 불러준 이름이기에 비와 블루는 여전히 그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사랑하는 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새로운 아이에게 이프들을 소개하려다 실패한 비는 이프들을 예전에 함께했던 친구들에게 다시 소개해 주는 방향으로 작전을 수정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이프를 잊어버린 이들에게 어떻게 다시 이프들을 보여줄 수 있을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장 나이가 많은 이프 루이스(곰인형)는 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아이들은 이프가 필요해. 어른이 되면 더더욱."

"추억은 사라지지 않아. 추억을 불러낼 방법만 알면 돼."

루이스는 자신이 사람 친구와 처음 만났던 그날 들었던 바닷소리와 해변을 걷던 사람들의 발소리, 추억을 떠올리며 순식간에 루나 파크를 과거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 추억이 가진 마법 같은 힘을 느끼게 된 비는 블라썸과 블루의 손을 잡고 그들의 옛 친구에게로 향한다. 블라썸과 비의 할머니는 함께 발레를 연습했던 추억, 블루와 제러미는 크로와상과 관련된 추억을 통해 다시 이어진다.


어른이 되며 모두 잊어버린 것 같았지만 사랑과 추억, 그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타고 다시 돌아온 상상의 친구는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지친 어른을 위로한다. 이프들이 다 큰 어른 친구를 꼬옥 껴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폭신한 감동이 밀려온다.


비의 아빠는 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멋진 이야기가 되어줄 거야. 어린 시절 이야기 말이야."

비가 아빠, 엄마,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이프를 찾아간 이 마법 같은 어린 시절 이야기는 비의 멋진 추억이 되어 오래도록 비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다.


어른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자연히 나의 어린 시절과 그때의 나를 키워준 것들을 떠올려보게 될 것이다. 이제 나의 멋진 이야기를 모두 회상했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혹시 이프를 잊은 아이를 보게 된다면 아이가 이프를 떠올릴 수 있도록 사랑과 믿음을 주고 그 아이의 어린 시절을 멋지게 만들어주는 어른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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