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리뷰, 해석 / 여성 성장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소개, 줄거리
- 로맨스이자 성장물인 <사.누.최>
- 율리에가 원한 삶. 율리에의 글, 버섯을 먹고 본 환영의 의미
- 율리에가 사랑한 사람. 영화 제목의 의미
개봉일 : 2022.08.25.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128분
감독 : 요아킴 트리에
출연 : 레나테 레인스베, 앤더스 다니엘슨 리, 할버트 노르드룸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주인공 율리에는 항상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어떤 기준에 맞춰 살아온 여성이다. 그녀는 의학에 뜻이 없지만 최고의 성적을 인정받는 느낌이 든다는 이유로 의대를 선택한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는 갑작스레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을 느낀다. 불안감은 율리에의 모든 것을 방해했고 그녀는 해부 수업용 인체를 앞에 두고 갑작스레 새로운 생각을 활짝 펼쳐간다.
내가 원한건 육체가 아닌 정신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율리에는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바로 행동에 옮긴다. 그녀는 긴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고 새로운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교수와 연애도 해본다. 그런데 이것도 내 길이 아닌것 같다고 생각한 율리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빌려 고가의 촬영 장비를 구매한다. 곧바로 새로운 장소인 오슬로로 향한 그녀는 그곳에서 작가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사진 모델을 거쳐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나이많은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다.
율리에의 나이는 어느덧 29살이 되었고 악셀과 함께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다. 악셀과 동거를 하고있기에 풀타임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경제적인 문제가 없고, 악셀은 율리에를 사랑한다. 율리에는 천천히 현재 자신이 하고싶은 일인 글쓰기를 해나가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내가 이 사랑에 진심인 것인지, 글쓰기를 진짜 하고싶은 것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율리에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 사랑과 이별, 선택과 포기를 반복한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랑은 가차없이 포기하고 내 가슴을 뛰게하는 사랑에 망설임없이 뛰어든다. 율리에의 사랑은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이라기보단 자기개발의 한 종류에 가깝게 보인다.
솔직히 그녀가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는 과정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이기적인 이별과 바람이라니. 누군가에겐 최악으로 기억될 행동이다. 하지만 그 최악의 선택은 또다른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 되기도한다. 율리에가 진짜 사랑한건 누구였을까, 무엇을 기대했기에 그렇게 열심히 달려갔을까, 대체 그녀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이야기 내내 지속되는 궁금증은 그녀가 진심어린 웃음을 짓는 순간, 비로소 해소된다.
내 삶을 찾아가는 여정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로맨스이자 성장물이다. 얼핏보면 주인공 율리에는 자신이 하고싶은 걸 모두 경험하며 살고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공을 바꾸고 직업을 바꾸고 연애도 하고 놀아도 보고. 이렇게 할거 다하고 사는 삶이 또 어디있을까 싶은데, 재밌게도 그녀는 자신을 여전히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 불안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사실 율리에는 이 변화들을 즐기는 게 아니고 그저 길을 잃고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는 상태다. 최고의 성적을 받아 의대에 가면 모든게 잘될줄 알았지만 율리에가 원하는것은 그게 아니었고 내가 바라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한 율리에는 처음 전공을 바꾼 이후 꾸준하게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고 새로운 사람과 연애를 한다. 그런데 일에 대한 만족감은 잠시뿐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연인과의 관계는 틀어진다.
답답하다. 그런데 가장 답답한 건 율리에는 자신이 왜 이 일과 연인에게 불만족을 느끼는지, 내가 어떤걸 원하고 있는지를 아예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율리에의 인생은 다시 시작된듯하다가도 금방 그 자리에 멈춰버린다.
"내 인생은 언제쯤 시작될까?" 율리에는 의문을 가진다. 내가 주인공인 인생, 만족스러운 인생. 어떻게 찾아내야할지. 그녀는 그 답을 찾아 여러 인연 사이를 헤맨다.
주어진 삶이 아닌 독립적인 나의 삶을 원한 율리에
율리에의 글과 그녀가 버섯을 먹고 본 환영의 의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원제:THE WORST PERSON IN THE WORLD)>는 영화의 제목처럼 율리에는 누군가와 사랑을 할때면 최악이 된다. 기껏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따스한 품을 내어줬더니 한순간 휘리릭 떠나버리는 사람. 그게 바로 율리에다.
율리에는 누군가 만들어주는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거부한다. 그녀는 공부를 때려치고 엄마의 곁을 떠나 오슬로에서 사진 기사 일을 한다. 악셀이 집 한켠을 내어주고 열심히 일해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갈 때쯤 그녀는 자신을 조연이라 느끼고 새로운 남자 에이빈드와 만나 떠난다. 그리고 에이빈드와 만난 이후 아이가 생겼을 땐 잠시 이별을 재고하지만 아이가 유산이 된것을 알고 작은 기쁨을 느끼며 또다시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난다. (좋게 말하면 이별을 재고, 솔직히 말하면 아이에게 발목잡힌 느낌)
율리에는 운이 좋게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들을 만나고 그들은 진심을 다해 율리에를 지원해준다. 율리에가 헤어짐을 통보하자 악셀은 두 사람의 사랑을 "(다시 만나기)쉽지 않은 사랑"이라고 표현하는데, 나또한 악셀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만큼 악셀은 율리에에게 진심을 바쳤다. 에이빈드도 그렇다.
율리에는 그렇게 두 남자의 호의를 받으며 어렵지 않게 살아가지만 그녀의 마음 한편엔 늘 작은 불편함이 남아있다. 율리에는 이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아이를 유산하고 에이빈드를 떠난 후에야 그 불편함의 이유를 알게된다. 율리에는 누군가가 주는 편안한 보금자리를 원하지 않았다. 내 손으로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홀로 살아가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율리에는 그런 삶을 원했던 것이다.
율리에는 "단단한 것보다 직접 만들어가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녀가 쓴 글 '미투 시대 속 오럴 섹스'의 전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율리에는 이 글을 언급하며 이 행위를 단순히 남자를 위한 일이 아닌 '스스로 단단함(결과)을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율리에는 상대가 가진 완성된 단단함을 그저 받아들이는 게 아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상대의 그것처럼 내 삶도 내가 직접 단단하게, 내가 원하는 것들로 채워 만들어가길 바랐다.
그래서 그녀는 선택하지도 않았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따라온 '엄마/여성으로서의 삶', '딸로서의 삶'을 앞에 뒀을 때, 큰 거부감을 느낀다. 아직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데 악셀의 나이를 생각해 아이를 가져보자는 말, 생각치도 않았는데 갑자기 찾아온 에이빈드와의 아이, 나와 같은 나이에 이미 여러 아이들을 키우던 여성 조상들의 존재와 딸에게 관심도 없는 아빠 앞에 앉아 딸노릇하기. 율리에는 이것들을 모두 거부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람들로부터 도망친다.
엄마/여성/딸로서의 삶에 대한 거부감은 율리에가 버섯을 먹고 환영을 보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갑자기 품안에 안긴 아이, 나도 모르는새 늙어버린 몸과 그것을 더듬는 여러 손들. 그리고 그 모든것에 대항하듯 탐폰을 빼서 던지는 율리에. 그녀는 타인과 사회가 원하는 당연한 여성의 삶(아이를 안고 늙어가는 여성의 삶)이 아닌 나만의 삶을 살고 싶어한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최악인 사람
율리에는 악셀과 에이빈드에게 최악의 전 애인이다. 바람 피고 갑자기 화내고 막말도 하고, 바람핀 남자랑 임신하고는 병실까지 찾아와 좋은 엄마가 될거라는 위로까지 해주길 바란다. 율리에는 악셀과 안정감 있는 사랑, 에이빈드와는 마법같은 순간을 함께하는 사랑을 경험했지만 그 사랑이 주는 안정감과 황홀함을 마음껏 즐기기만하고 자신을 희생해야 할 순간이 오면 후다닥 도망친다. 내가 겪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류의 사람이다. 그리고 율리에는 엄마로서도 최악인 사람이다. 엄마가 될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실수로 아이를 갖고 아이가 유산 되었을 때 그녀의 얼굴엔 슬픔이 아닌 해방감과 기쁨이 떠오른다.
하지만 율리에에게 율리에는 최악이 아닌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최고의 파트너다. 율리에는 율리에를 가장 사랑하고 율리에를 최우선으로 아껴준다. 항상 더 많은 걸 원하고 있는 율리에는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그저 자신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율리에는 최악인가 아닌가. 이건 그녀가 쓴 글 미투시대 속 오럴섹스처럼 논쟁이 될만한 주제인 것같다. 일단 나에게 율리에는 최악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최고로 솔직하고 열정적인, 부러운 사람이기도 하다. 나쁜 사람인건 확실한데 이상하게 부러워서 더 미운 사람. 정말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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