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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y 23. 2024

18년을 에둘러 돌아간 여행의 끝에서 얻은 것

영화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리뷰, 해석 / 신작 허광한

주요 내용

- 영화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소개, 줄거리

-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추천, 비추천

- 영화 <러브레터>와 닮아있는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 지미가 박스 안에 숨겨둔 것들의 의미

- 18살의 지미, 36살의 지미를 달라 보이게 만든 연출 포인트들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18x2 Beyond Youthful Days, 2024)

18년을 에둘러 돌아간 여행의 끝에서 얻은 것

개봉일 : 2024.05.22.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청춘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후지이 미치히토

출연 : 허광한, 키요하라 카야, 장효전, 미치에다 슌스케, 쿠로키 하루, 마츠시게 유타카, 구로키 히토미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혼자 하는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의미와 동시에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서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숨 가쁘게 달려온 청춘의 1막 끝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 홀로 여행을 떠난 남자 지미의 이야기다.

36살이 된 지미는 풋풋한 사랑을 꿈꿨던 여름, 그녀의 소식을 간간이 전해 들었던 가을을 지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듯한 겨울을 맞이한다. 지미는 대학 시절부터 열심히 달려 젊은 나이에 유능한 개발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일에만 몰두한 결과 주변을 잃게 되고 결국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재명 되고 만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과 먼 타이베이의 대학에 입학한 게 18년 전. 즉 그는 18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익숙한 거리를 거닐자 지미의 머릿속에 몇 가지 추억이 스쳐 지나간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 지미는 어릴 적 썼던 방을 둘러보다 상자 하나를 발견하고 엽서 한 장을 꺼내든다. 그 시절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엽서 한 장. 지미는 그 엽서의 향기를 맡으며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시절, 가장 큰 사랑이자 아픔이었던 소녀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나에게 나름의 기대작이었다. 드라마 <상견니>를 시작으로 영화 <해길랍>, <여름날 우리>, <기억해, 우리가 사랑한 시간> 등 쭉 청춘, 첫사랑에 관련된 작품들에 출연하며 청춘의 아이콘이 된 배우 허광한과 전작 <남은 인생 10년>으로 주목받은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만난, '청춘'에 관한 영화라니. 이건 무조건 내 취향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오래 묵혀온 기대가 무색하게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너무도 명확히 보이는 영화였다. 허광한, 키요하라 카야 배우를 좋아한다면 그들의 영상 화보집을 본다는 느낌으로 추천, 일본과 대만의 시골, 자연 풍경을 좋아한다면 추천, 잔잔한 일본풍 로맨스를 좋아하고 조금은 뻔한 영화도 OK라면 추천하겠지만 그 외엔 적극 추천하긴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잔잔함, 지루함, 작위적인 느낌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취향이라면 비추천한다. 잘 짜인 영화라기보단 우연의 연속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에 가깝고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지는 구간도 있다. 전체적으로 일본 로맨스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대만, 일본의 합작품인만큼 대만 감성도 어느 정도 묻어있는데 그래서인지 약간 애매한 맛의 영화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여름의 대만, 겨울의 일본을 잘 담아낸 영화라 약간의 기대를 내려놓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관람하길 추천한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감독의 전작 <남은 인생 10년>이 더 괜찮았던 것 같고, <남은 인생 10년>이 취향에 맞지 않았다면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또한 취향에 부합하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영화 <러브레터>와 닮아있는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러브레터>와 닮아있다. 극 중에서 지미와 아미가 함께한 추억 중 하나로 언급되는 영화이기도 하고 두 영화의 짜임새와 배경, 주인공의 상황 등이 오마주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상당히 비슷하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이 잃어버린 시간과 그에 얽힌 아련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으며 잊고 살았던 물건(편지와 엽서)을 촉매제로 삼아 여행을 시작하는 구조, 여정의 끝엔 첫사랑이 남긴 진심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같다.

영화의 바탕인 실화 자체가 <러브레터>와 닮아있는 건지,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러브레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도 확실히 <러브레터>를 마음속에 두고 있었는지 극 중에서 아미와 지미가 영화를 보는 장면에선 아예 아미를 <러브레터>가 나오고 있는 스크린 한가운데 넣어버리는 앵글이 나오기도 한다.


<러브레터>와 같은 영화를 기대하고 본다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지만 <러브레터>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반갑고 즐거운 마음으로 볼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잃어버린 마음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다.
18년 동안 박스 안에 잠들어 있었던 소중한 것들


지미는 이전엔 농구선수를 꿈꿨으나 부상으로 인해 그 꿈을 접게 된다. 꿈은 사라졌지만 어찌어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여름, 지루하고 밍밍하게 지나갈 것 같았던 그 여름의 중간쯤에 아미라는 일본인 소녀가 나타난다. 아미에게 반한 지미는 서툴게 마음을 표현해 보지만 아미는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않고 고향인 일본으로 돌아가버린다.

지미는 '꿈을 이룬 지미를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다'라는 아미가 남긴 말에 힘을 얻어 꼭, 꿈을 이뤄 그녀를 보러 가기로 다짐한다. 마침 대학에 입학한 후 만난 친구들 덕분에 게임 개발이라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된 지미는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이뤄낸다. 작게나마 꿈을 이뤘으니 당당히 아미를 보러 갈 준비가 되었는데, 아미는 여전히 지미를 받아주지 않는다.

이후 지미는 18년이란 시간 동안 일에 매진해 젊은 나이에 성공한 개발자가 된다. 하지만 36살의 지미는 18살의 지미와 다르게 퍼석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무작정 달리기만 하다가 설렘, 떨림, 웃음 그리고 일과 관련된 모든 걸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소중한 과거의 흔적을 발견한다.


지미는 18년 동안 많은 걸 잊고 살았다. 대학생 때 아미의 죽음을 알게 된 지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미와 관련된 추억과 감정들을 모두 외면해버린다. 그 여름의 추억이 담긴 사진, 함께 본 영화 티켓, 아미가 보내준 엽서들은 눈에 띄지 않는 상자 속에 봉인된다. 한때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걸 제외하고 나니 남은 건 일과 회사뿐이다. 지미는 아미가 죽은 후 더욱 일에 집착하게 되고 여러 실수를 반복한다. 결국 동료와 관계자들의 신임을 잃게 된 그는 회사에서 쫓겨나 마지못해 고향 동네로 돌아온다.

"멈춰 서면 나 자신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미에게 아버지가 해준 말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지미는 잠시 멈춰 서서 추억이 담긴 상자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소녀, 아미를 마주한다. 지미는 아미와 함께한 추억을 되짚으며 그때의 나와 아미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18년의 시간을 에둘러 돌아간 여행의 끝에서 얻은 것
18살의 지미, 36살의 지미를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배우의 연기와 연출 포인트들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두 개의 계절, 두 개의 나라, 두 모습의 지미, 다른 화면 온도, 반대의 운동 방향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 보여준다. 18살의 지미는 여름의 대만에 있다. 화면은 따뜻한 색채, 지미의 옆모습이 나올 땐 항상 우측 얼굴이 나오며 지미는 스크린의 우측으로 이동한다. 36살의 지미는 겨울의 일본을 여행하고 있다. 화면은 차가운 색채, 지미의 옆모습이 나올 땐 항상 좌측 얼굴이 나오며 지미는 계속해서 스크린의 좌측으로 이동한다. 발랄하고 가벼운 18살과 차갑고 버석한 36살의 모습을 가볍게 넘나드는 허광한 배우의 열연과 더불어 이 연출들은 18살의 지미와 마음을 잃어버린 현재의 36살의 지미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란 사실을 짐작하게 만든다.


지미는 아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스스로 청춘의 시작점이었던 18살 그 여름의 모든 걸 마음속에서 지워버린다. 아미의 죽음을 직접 들었기에 이별을 받아들일만한 기회가 있었으나 그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 일부를 뜯어내고 만다. 그리고 18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실수였음을 눈치챈다.

우연히 동향인 이자카야 사장 리우을 만나 여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리우는 지미의 여행 루트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지미는 왜 직진이 아닌 멀리 돌아가는 방향으로 가냐는 리우의 질문에 "전 늘 멀리 돌아가고 매번 후회해요."라고 답한다.

지미는 뒤늦게 시작한 여행 내내 아미를 떠올린다. 그리고 내가 그때 마음을 고백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미의 마음은 어땠을까. 후회하고 궁금해한다. 지미는 아미가 했던 단 한 번의 여행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었던 그녀의 고향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답을 얻게 된다. 그 여름에 아미와 지미는 사랑을 했고 아미는 지미를 응원했다. 아미의 여행은 끝났지만 그녀의 그림이 담긴 책은 여행의 끝에서 지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편지를 쓰면서 대만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함께 일했던 고베 노래방, 함께 스쿠터를 타고 달렸던 도로, 함께 야경을 봤던 전망대 등 오랜 시간 외면해왔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을 찾아간다. 지미의 표정은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한결 부드럽게 변해있고 연출도 18살의 지미를 표현했던 방식으로 바뀐다. 온기가 느껴지는 색채, 지미의 우측 얼굴, 스쿠터를 타고 스크린 우측으로 달려가는 지미. 지미는 여행의 끝에 만난 아미의 흔적을 통해 잃어버렸던 마음을 되찾는다.

어두운 터널을 뚫고 흰 눈밭으로, 겨울을 지나 봄으로


지미가 탄 기차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끊임없이 달린 끝에 마침내 흰 눈이 가득한 아미의 고향(목적지)에 도착한다. 지미는 여행을 하며 아미와 함께했던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터널처럼 어두운 기억(아미의 죽음을 듣던 날)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는 아미가 남긴 흔적을 더듬으며 어두운 기억을 인정하게 되고 아미의 진심(여행의 목적)과 그녀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지미는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여행이 끝나면 다신 만날 일 없겠지만 문득 떠오르는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여행을 할 땐 최고의 친구, 가이드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지만 대부분 여행이 끝나고 나면 거의 만날 일이 없는 사이가 된다. 아미도 그들과 비슷하다. 아미는 지미의 인생이란 긴 여행에서 잠시 함께했던 사람이다. 지미의 첫사랑이 되어준 그녀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고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지미를 지나쳐간다. 지미는 여행을 마치고 나서야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지미는 떠난 아미를 다신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아미와 함께한 추억은 지미의 마음속에 문득, 아름답게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미가 인생 여행을 지속할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이를 깨닫고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미는 이제야 오래된 이별에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건넨다.


지미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뀐다. 시간이 더 지나면 봄은 여름으로 바뀔 거고 지미는 또 다른 여름을 맞이하게 될 거다. 18살의 추억과 함께. 또는 새로운 사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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