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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y 30. 2024

믿음,의심,우연,조작.
여러 갈림길 사이에서 갈팡질팡

영화 <설계자> 리뷰, 해석 / 강동원 신작, 한국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설계자> 소개, 줄거리

- 끓지 못하고 있는 전골 같은 영화

- 영화 <댓글부대>와 닮아있는 <설계자>

- 믿음이 가진 힘

- 꽉 닫아버리는 엔딩 / 엔딩, 결말 해석

설계자 (The Plot, 2024)

믿음과 의심, 우연과 조작. 여러 갈림길 사이에서 갈팡질팡

개봉일 : 2024.05.29.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범죄, 드라마

러닝타임 : 99분

감독 : 이요섭

출연 : 강동원, 이무생, 이미숙, 이현욱, 탕준상, 김홍파, 김신록, 이동휘, 정은채

개인적인 평점 : 3 / 5

쿠키 영상 : 없음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서 나왔을 때, 머리에 물음표가 가득 남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영화가 정말 좋아서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 하는 질문과 함께 커다랗고 힘있는 물음표가 만들어지는 경우. 두 번째는 영화에 담긴 정보가 너무 많아서 해석하지 못했을 때, "아, 이게 무슨 뜻인 것 같은데.. 궁금하다. 찾아봐야겠다."싶어 퐁당퐁당 뛰어오르는 즐거운 물음표가 만들어지는 경우. 세 번째는 아쉬움과 함께 물음표가 남는 경우.

<설계자>는 세 번째에 해당하는 영화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뭘까?

<설계자> 줄거리


<설계자>의 영제는 이야기의 구성, 줄거리. 또는 음모를 뜻하는 <The Plot>이다. 이 영화는 한, 영 제목 그대로 살인 사건을 자연스러운 줄거리를 가진 하나의 사고로 구성해 내는 설계자 '영일'의 이야기다. 영일은 청부살인을 의뢰받고 팀원 재키, 월천, 점만과 함께 사고를 위장해 타깃을 제거하는 청부 살인업자다. 높은 곳에 서서 조용히 사람들을 지켜보고 판을 짜는 설계자 영일의 모습에선 차가움과 약간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는 정체를 숨긴 채 자연물, 건축물, 사람이 만드는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날카롭게 판단하며 자연스러운 죽음을 써 내려간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이상한 우연, 죽음들이 영일과 팀원들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남들은 비극적인 사고라 생각하고 넘어간 것들인데 영일의 눈엔 그것들이 단순한 사고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연들은 점점 영일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과 의심이 피어오른다. 완벽한 판을 만들던 설계자인 영일과 팀원들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만든 더욱 큰 우연 속으로 말려든다. 그리고 이 우연의 끝에서 영일만 알고 있던 비밀의 정체와 그조차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진실이 밝혀진다.

살인 의뢰를 받고 사고로 위장해 타깃을 제거하는 청부 살인업자(설계자)의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영화 소개와 강동원 영상화보 그 자체일 것 같은 느낌을 줬던 예고편이 준 기대감, 그리고 왠지 이번엔 강동원 배우의 진짜 멋진 영화가 나올 차례인 것 같다는 개인적인 기대감을 갖고 이 영화의 개봉을 오래도 기다렸다.


2018년, <설계자>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사건'과 '진실'을 주제로 했던 리메이크 영화 <골든슬럼버>에서의 강동원 배우는 설계된 판 안에 던져진 작은 존재였다. 그땐 지면과 지하에 바짝 엎드려 몰아치는 위협을 따돌리고 도망치기 바빴는데 이번엔 높은 곳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직접 사건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영화의 분위기, 캐릭터가 그때와 정반대인 만큼 <골든슬럼버>때와 다르게 만족감을 얻을만한 영화가 아닐까 기대했다. 그런데 그 기대는 딱 절반 정도 채워진 것 같다.

준비는 완벽히 마쳤으나 결국 끓지 못한 전골


<설계자>는 분명 멋있는 영화다. 가장 전면에 앞세운 '강동원 배우'가 가진 분위기, 그의 멋진 목소리로 채운 긴 나레이션, 사고를 만드는 청부 살인업자라는 흥미로운 설정, 촬영과 편집에 힘을 잔뜩 넣은 게 느껴지는 일부 장면들, 뻐근하다 느껴질 만큼 비장한 음악과 음향 효과. 긴장감을 주기 위해 알차게 넣어둔 여러 요소와 등장인물들. 전체적으로 멋있어 보이는 영화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뭔가 아쉽고 부족함이 느껴진다.


<설계자>는 온갖 좋은 재료와 예쁜 냄비까지 다 준비해 놨는데 정작 불이 약해 끓지 못하고 있는 전골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있다. 흥미로운 설정과 촬영, 조명, 음향 등의 전문가들도 준비됐고 관객들의 관심을 모을 화제성 있는 배우들도 준비되어 있지만 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되어줄 각본이 너무 아쉽다.

초반부까지는 참 재밌다. 이것저것 넣어둔 요소들이 많아서 시간도 빠르게 지나간다. 그런데 중후반부쯤엔 이야기가 점점 이상하게 꼬여가더니 마지막엔 무심하게 모든 걸 내팽개쳐 버린다. 흥미가 붙어 사건에 다가오려는 관객을 그대로 튕겨내버리고 재미를 위해 넣어놓은 캐릭터와 사건들을 책임지려는 마음 또한 없어 보인다. 영일을 제외한 캐릭터들은 거의 텅 빈 채로 끌고 가다가 끝이 다가오자 순식간에 휙휙 날려버린다. 이런 무심함에 얕은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긴장감을 주기 위해 잡은 대립구도엔 팽팽함이 느껴지지 않고 헐거운 채로 한쪽으로 휙 당겨졌다가 맥없이 풀어져 버리고 만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어떤 걸 말하고 있는지는 전달이 되지만 그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오진 않는다. 기대감을 내려놓고 영화에 가볍게 휩쓸릴만한 마음으로 감상한다면 그래도 빛 좋은 개살구는 될만한 영화지만 예고편에서 보여준 정도의 깊이감과 무게감을 원한다면 아쉬운 영화로 느껴질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설계자>를 보면서 최근 개봉한 영화 <댓글부대>와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댓글부대>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여론을 조작하고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내는 댓글부대 3인방과 사명감 투철한 기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댓글부대가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며 기자와 접촉하고 그 과정에서 기자는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영화는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댓글부대가 양심고백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님 기자를 놀리고 있는 것인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등 다방면으로 열려있는 질문들을 제시하여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설계자>도 <댓글부대>와 비슷한 류의 질문을 던지고, 모호함과 찝찝한 긴장감을 동력으로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만약 <댓글부대>가 취향에 맞지 않았다면 <설계자> 또한 불호일 확률이 높을 것 같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믿음이 가진 힘


영일은 설계자다. 그는 햇빛, 도로 위 운전자, 공사장, 비, 전기 등 영일이 만들지 않아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모아 하나의 진실을 만든다. 그는 "그게 가능해요?"라는 말이 나올 만큼 완벽하게 사고를 만들어낸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올려다볼 일도 없는 높은 곳에서 의뢰인과 타깃을 지켜보는 설계자의 모습은 전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영일의 설계를 의심하지 않고 그것이 우연한 사고라는 믿음을 보인다.

이 믿음은 영일을 지켜주는 가장 큰 힘이자 그를 해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영일은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하기 위해 오히려 인파가 많이 몰린 상황에서 일어나도록 설계한다. 보는 눈이 많으면 실수가 쉽게 드러날 위험이 있지만 반대로 사고에 대한 믿음도 커지기 때문이다. 영일은 이렇게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믿음을 성공적으로 이용해왔다. 그런데 영일이 한순간의 감정에 치여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 그 또한 믿음에 휩쓸려 혼란을 겪게 된다.


영일은 설계일을 그만두겠다는 짝눈이를 붙잡고 싶어 청소부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었다. 영일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쫓는 척하고 짝눈이는 '우리 업체보다 훨씬 큰 업체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라는 공포감에 다시 영일에게 기대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봉합되나 싶었던 타이밍에 짝눈이가 의문의 사고로 죽게 되고 영일은 청소부가 자신의 상상속 존재가 아닌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물어보다가 갑작스레 꽉 닫히는 엔딩
엔딩, 결말 해석


영화는 영일의 믿음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치현이라는 남자를 등장시켜 청소부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하고 재키, 점만, 영선의 사고를 통해 청소부와 그의 동료가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후반부에 들어선 이치현이 죽고 사이버 렉카 하우저가 거대한 음모론을 끌고 나타나 빌딩 상단부에 영일의 얼굴을 띄우는 등 다소 어지럽게 사건이 이어진다. 청소부가 존재하나? 모든 게 영일의 망상인가? 여러 추측들이 난무할 때쯤 영화는 다소 싱거운 방법으로 이야기를 꽉 닫아버린다.


일부 영일의 과대망상이 있었을진 몰라도 일단 청소부는 존재했다. 경진에 손에 있는 체스 말, 짝눈이와 같은 사고로 죽은 남성(영일), 스프링쿨러에 죽은 남성(월천), 집 베란다에서 떨어진 여성(재키), 버스에 치인 남성(점만)등 그동안 일어났던 사고 위장 살인들이 역순으로 나열되는 엔딩 크레딧과 크레딧 직전에 들려오는 교통사고 소리는 영일이 사고가 아닌 위장 살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넌지시 던져준다.

단단하게 이야기를 꽉 닫아준 건 엔딩에 대한 호불호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결말로 향하는 과정이 너무 아쉬웠다. 짧은 러닝타임 내에 청소부가 존재한다 vs 영일의 망상이다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보여주기 위해 빠르게 사건을 터트리다 보니 이야기가 제대로 정리될 틈이 없다. 그 사이에 만들어진 빈틈들을 강동원 배우의 나레이션으로 간신히 끌어 맞추긴 하지만 재미와 설득력을 주기엔 부족하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를 위해 열어둔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안타까울 만큼 갈팡질팡한다.

차라리 꽉 닫힌 엔딩을 향해 달려갈 예정이었다면 초반부를 줄이고 청소부의 존재를 더 빠르게 부각시켜 긴장감을 주거나 러닝타임을 늘려 캐릭터들을 더 깊이감 있게 보여주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청소부는 왜 영일을 노리고 있는지, 짝눈이는 왜 죽은 것인지, 월천은 정말 영일을 믿은 것인지 등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 많은데 이게 '이야기에서 중요하지 않아 일부러 안 보여줬다.'는 느낌보다는 '힘이 안돼서 못 보여줬다.'는 느낌이다.


<설계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영화 자체의 만듦새가 아쉽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아무렇게나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도 참 아쉬웠다. 텅텅 비어있지만 서로에게 작은 믿음과 사랑을 주려 노력했던 팀원들의 관계와 조작된 진실로 타인들을 속이다 진실과 조작의 사이에서 헤매게 된 영일의 서사를 조금 더 재밌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었을까? 원작 영화도 이런 방향인 걸까?. 조금만 더 잘 다듬었다면 재밌는 영화가 나왔을 것 같은데..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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