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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12. 2024

조각난 이야기가 나부끼는 미완성의 원더랜드

영화 <원더랜드> 리뷰, 해석 / 김태용 감독 신작 한국영화


원더랜드 (WONDERLAND, 2024)

조각난 이야기가 나부끼는 미완성의 원더랜드

개봉일 : 2024.06.05.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13분

감독 : 김태용

출연 :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개인적인 평점 : 3 / 5

쿠키 영상 : 엔딩 크레딧 초반에 1개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 교내에서 과학 글짓기, 그림 대회가 열릴 때마다 가장 핫하게 다뤄졌던 소재는 크게 세 가지였다. 수상 도시, 날아다니는 자동차, 사람 같은 로봇/AI. 그땐 한 사람의 목소리, 외모를 데이터화해 새로운 존재를 형성해낸다는 건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휴대폰 속 AI 비서는 물론이고 고인의 생전 영상, 목소리, 사진 등을 모아 AI 인물을 형성하거나 VR로 구현해 만남을 가지는 일까지 가능한 세상이 왔다. 모두가 처음 누려보는 기술이다 보니 장점과 단점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AI는 어느덧 우리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문학 작품이나 영상물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원더랜드>는 이 AI 기술을 사용해 만든 가상 사후세계 '원더랜드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원더랜드는 신체가 사망하거나 사망에 준하는 상태에 빠진 이들을 AI로 만들어 가족들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사망한 이는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제외한 생전의 모든 기억을 갖고 원더랜드에서 새롭게 만들어진다. 이들은 사망 전 자신의 직업과 환경 등을 직접 고를 수 있고 가족들과 자유롭게 통화를 할 수도 있다.

<원더랜드>엔 다양한 이유로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바이리'와 그녀의 엄마, 딸. 사고로 누워있는 남자친구 '태주'를 원더랜드를 통해 만나고 있는 '정인'. 죽은 손자 '진구'를 만나기 위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할머니. 원더랜드의 수석 플래너이자 산증인인 '해리'까지. 영화는 다양한 이들의 사연을 옴니버스 식으로 보여준다.

<원더랜드>는 다양한 등장인물만큼 여러 가지 소재를 풍성하게 채워 넣으려 노력한 게 느껴지는 영화다. 하지만 이미 넣어놓은 요소들을 모두 풀어내기엔 2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다양한 스토리와 너무 많은 감정들을 빠르게 들이미니 마음이 한곳에 안착하지 못하고 퐁당퐁당 튀어 다니기 바쁘다. 중간중간 몰입을 깨트리는 구멍들도 몇 개 보인다. 이건 어쩌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이야기는 홀로 다른 곳으로 달리고 있고, 뜬금없이 들이닥치는 클라이막스는 슬픔 대신 당황스러움을 선사한다.


영화가 끝난 후 한 명 한 명의 감정을 다시 되짚어 보고,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그들의 마음 등을 상상해 보고 난 후에야 약간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론 영화가 아닌 각 화마다 서비스 신청자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OTT 드라마로 제작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추가로 <만추>에서 김태용 감독이 보여줬던 섬세함을 기대하고 있다면 <원더랜드>를 추천하긴 어려울 것 같다.

맞잡을 수 없는 손
거울 같은 원더랜드


극 중엔 거울, 유리를 이용해 두 개의 세계를 나누거나 인물을 담아내는 연출이 자주 나온다. 원더랜드는 거울에 비친 세계 같다. 원더랜드 속 사람들은 현실과 완전히 같은 환경 속에서 사망하기 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 서비스 신청자들은 생생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그가 같은 세계 어딘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현실과 원더랜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고 거울 너머 나와는 손을 잡을 수 없듯이 각 세계 속에서 아무리 손을 뻗어도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순 없다.


AI 태주는 정인에게 물로 만든 탁구공을 보내지만 정인은 그 공을 받지 못한다. 현수는 해리의 AI 부모님에게 와인을 따라주려 하지만 와인병은 스크린을 넘어가지 못한다. 바이리는 엄마를 위해 스카프를 선물로 사 가겠다고 하지만 현실 속 엄마는 그 선물을 실제로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거부한다. 지아가 공항에서 사라졌을 때 AI 바이리는 목숨을 걸고 모래 폭풍을 뚫은 후 중앙 시스템에 접근해 손을 뻗어보지만 스크린 너머 해리에게 닿지는 못한다. 한 걸음만 가면 퐁당 빠져들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현실과 원더랜드 사이엔 허물 수 없는 벽이 있다.


현실과 원더랜드가 겉으론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 이어질 수 없는 다른 세계인 것처럼 현실과 원더랜드 속 인물도 완전히 같은 인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AI 바이리, 태주, 진구는 거울 속 바이리, 태주, 진구 같은 느낌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일단 겉모습은 나랑 똑같은 거울 속 내가 서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걸 진짜 나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내가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AI들이 딱 그렇다. 분명 내가 알던 사람과 닮아있는데 어딘가 이질적인 존재.


이 소중하고도 어색한 존재와의 관계를 잘 풀어냈다면 <원더랜드>는 한국형 AI 영화의 좋은 시초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서 이게 무슨 얘기인 거지?"였다.

<원더랜드>가 말하려고 했던 것?


<원더랜드>는 이 애매모호한 AI와의 관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처음엔 사랑과 이별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았다가 그다음엔 AI 기술의 이면과 그리움이 만든 부작용을 보여주는 것 같다가, 또 그다음엔 추억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도, 제시하는 이야기도 좋은데 어느 하나 무겁게 파고드는 느낌이 없다. 이런 감정, 저런 감정 다 발끝만 담가보다 끝나버린다. 마치 수많은 조각이 나부끼고 있는 미완성된 꿈같았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 몰입이 되지 않아서인지 영화 속 현실 인물들보단 종료된 서비스 속에 남게 된 AI들의 서사가 더 기억에 남았고, 감상 후 가장 크게 남은 건 감정의 동요가 아닌 "만약 이런 기술이 나온다면 나도 가입하고 싶어질까?"하는 답하기 모호한 질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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