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리뷰, 해석 / 픽사 신작 성장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소개, 줄거리
- 1편과 비교했을 때 장, 단점
- 슬픔이와 닮은 불안이. 부정적인 감정은 쓸모없는 것일까?
- 라일리의 새로운 자아가 가진 의미
- 기억 산사태와 판사 풍선의 의미 / 결말 해석
개봉일 : 2024.06.12.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애니메이션
러닝타임 : 96분
감독 : 켈시 맨
출연 : 에이미 폴러, 마야 호크, 루이스 블랙, 필리스 스미스, 토니 헤일, 리자 라피라
개인적인 평점 : 4/ 5
쿠키 영상 : 엔딩 크레딧 초반에 1개, 엔딩 크레딧 이후 1개
“내가 진짜 어릴 때 이걸 봤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난 이미 성인이었지만 나보다 한참 어린 라일리를 보며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었다. <인사이드 아웃> 개봉 시기에 겪은 일은 아니지만 한창 사춘기가 절정에 닿았을 때. 나는 라일리처럼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를 겪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 나이답지 않게 벌벌 떨며 온갖 감정의 변화를 이겨내려 노력했었는데 <인사이드 아웃>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기쁘기도, 슬프기도 했다.
만약 딱 그런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이 영화를 만났다면 내 마음이 보다 더 튼튼하게 자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인사이드 아웃>은 내게 다양한 감정과 깨달음을 줬다.
<인사이드 아웃 2> 줄거리, 소개
<인사이드 아웃> 이후 9년이 지나 2024년, 속편 <인사이드 아웃 2>가 공개됐다.소녀보단 아이라는 말이 어울렸던 11살 라일리는 어느덧 13살 사춘기 소녀가 됐다. 라일리는 이제 학교와 하키팀에 완벽히 적응했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도 두 명이나 만들었다. 라일리는 여전히 하키를, 감정들은 여전히 라일리를 사랑한다.
<인사이드 아웃 2>는 모든 일이 즐겁기만 한 학령기(6~11세)를 지나 청소년기(약 12~20세)에 들어선 라일리와 감정들의 이야기다. 라일리가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생겨낸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개의 기본 감정들은 13년 동안 본부에서 일하며 라일리의 자아를 가꿔왔다.
다섯 개의 기본 감정이 만든 라일리의 자아는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현재 라일리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친구들에게 친절하고 공부도 잘하고, 하키도 잘한다.
라일리는 친구들과 호흡을 맞춰 우승 골을 넣고 고등학교 하키팀 코치에게 하키 캠프 참여 권유를 받는다. 선망하던 팀 코치가 나와 친구들을 초대하다니! 왠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다. 라일리와 감정들은 두근대는 마음으로 하키 캠프를 기다린다. 그런데 하필, 하키 캠프 날 아침. 제어판에 새로 생긴 기능을 알 수 없는 '사춘기’ 버튼이 발동되고 만다.
여전한 <인사이드 아웃>
1편과 비교했을 때 장, 단점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가 겪었던 보편적인 감정의 변화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과 눈물을 이끌어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기억들을 기발한 방법으로 시청각화하여 큰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공감과 눈물, 재미를 모두 잡은 센세이션 한 영화였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1편을 등에 업고 속편을 제작한다는 건 엄청난 모험이다. 관객이 사랑했던 ‘아는 맛’ 그대로 만들면 1편과 달라진 것이 없어 지루하다는 평을 듣기 쉽고 재미를 위해 스케일을 과도하게 확장하게 되면 1편의 맛이 사라져 실망했다는 평을 듣기 쉽다.
1편이 워낙 강력했기에 과연 2편도 1편만큼 잘 나올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인사이드 아웃 2>는 1편이 가진 정체성을 잘 지켜냈고 1편만큼이나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라일리 나이대 아이들의 심리 변화와 그에 따른 행동을 섬세하게 잘 담아냈으며 전체적인 작화 퀄리티도 픽사답게 훌륭했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감탄했던 영화의 상상력, 재미 모두 여전히 그대로다.
그리고 1편보다 다양해진 감정 캐릭터와 라일리 마음속에 새롭게 생긴 장소들이 주는 재미, 1편과 비슷한 설정들(어딘가에 갇힌 감정들의 모습, 마음 깊은 곳 추억의 인물의 등장, 라일리가 여전히 싫어하는 것 등)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1편에 비해 등장인물들이 늘어나다 보니 대화가 다소정신없게 이어지는 느낌이 있고, 기본 감정들이 라일리의 마음 깊은 곳에 떨어진 후 벌어지는 모험이 살짝 루즈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전편에선 라일리의 마음속 존재(빙봉)가 주는 감동이 있었는데, 이번엔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간 것치곤 크게 기억에 남는 캐릭터, 사건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1편에 비해 일부분이 아쉬웠다는 것이지 <인사이드 아웃 2>가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라일리가 자아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그린 <인사이드 아웃 2>
<인사이드 아웃>이 라일리와 기쁨이가 긍정,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인정하고 성장해가는 이야기였다면 <인사이드 아웃 2>는 청소년기에 들어선 라일리가 혼란 속에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제가 라일리의 사춘기 이야기라고 하기에 라일리와 사춘기 흑역사를 공유하는 느낌의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보고 나니 단순한 천방지축 사춘기의 이야기가 아닌 청소년들을 넘어 2-30대까지도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받을만한 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자기 비하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이 영화를 한 번쯤 보면 좋겠다.
<인사이드 아웃 2>는 사춘기에 흔히 겪는 불안감과 정체성 혼란을 감정들 간의 갈등으로 표현한다.
사춘기가 된 라일리에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키가 쭉쭉 자랐고 얼굴엔 여드름이 생겼다. 아이돌 섬이 사라진 대신 우정 섬이 커졌고, 세 가족이 꼭 붙어있던 커다란 가족 섬은 세 가족이 거리를 둔 채 서있는 조그만 가족 섬으로 바뀌었다. 라일리 자아의 뿌리가 되어주는 신념 저장소도 새로 생겼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본부는 엉망진창으로 리모델링 되었고 새로운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라는 감정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린 라일리는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친구와 어울리고 하키를 재밌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본부에서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던 감정은 기쁨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이 되자 하키는 재밌는 게임이 아닌 ‘내가 잘 해내야만 하는 것’으로 변해버린다. 이 시점에 등장한 불안이는 여러 계획을 뽐내며 단숨에 제어판을 차지한다.
지금껏 라일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 골라내 라일리의 자아를 가꿔오던 기본 감정들은 불안이가 주가 되어 라일리를 괴롭게 하는 새로운 감정들의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의견을 가진 감정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주도권을 잡은 새 감정들은 이미 형성된 둥근 자아들을 뽑고 기존 감정들을 쫓아내기에 이른다.
긍정적인 감정? 부정적이고 나쁜 감정?
슬픔이와 새로운 감정들은 쓸모없는 것일까?
불안이가 본부를 점령한 후 라일리가 실수를 반복하고 불안해하는 모습만 보면 마치 불안이가 라일리를 괴롭히는 빌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1편에서 슬픔이의 첫인상과 비슷하다. 기쁨이는 처음 감정들을 소개할 때 ‘슬픔이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며 은근히 그를 배척하려 하지만 종반부에 가서는 슬픔이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다른 감정들과 함께 라일리의 기억을 다양한 색으로 채워간다.
<인사이드 아웃 2>의 이야기도 1편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기본 감정들은 라일리를 힘들게 하는 불안이와 새로운 감정들의 등장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모두가 힘을 모아 라일리의 자아를 꼭 껴안아 지켜낸 후, 9개의 감정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방법은 달랐지만 어쨌든 모두 라일리가 더 좋은 결과를 내고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나를 발전하게 만들어줄 약간의 불안과 당황도 필요하다. 표면적으론 긍정적/부정적인 감정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 모든 감정들은 나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이를 부정하고 숨필 필요가 없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다시 깨달았다.
“우린 있는 그대로 너희를 사랑해.”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아.
본부에 신념 저장소가 생기고 라일리의 자아가 형성된 후 기쁨이와 기본 감정들은 라일리의 안 좋은 기억들을 모두 마음 깊은 곳으로 날려버리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기쁨이는 이 부끄럽고 모자란 기억들을 없애는 게 라일리를 지켜주는 일이라 믿었다. 그 덕분에 라일리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며 둥글고 예쁜 자아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이 자아는 라일리의 발전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부담이 되기도 한다. ‘좋은 사람’인 라일리는 착한 친구, 착한 딸, 팀원들과 잘 어울리고 실력도 좋은 하키 선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걸 챙기려다가 몇 가지를 놓치기도 하고 고민과 실수를 반복하다 자신이 부족한 선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크게 절망한다.
기쁨이가 멀리 보냈던 수많은 기억 구슬들이 신념 저장소에 쏟아지고 라일리는 엄청난 고민 끝에 여러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라일리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뛰어난 하키 선수이면서도 잘못 인사를 하는 우스운 실수를 하는 사람. 좋은 딸이면서도 화가 나면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철없는 딸이 되기도 하는 사람. 라일리는 그런 사람이다.
라일리의 새로운 자아(다양한 형태의 자아)가 형성될 때 기쁨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라일리를 정할 순 없어.”
기쁨이가 예쁜 기억들만 모아 신념 저장소에 넣었던 것처럼 살다 보면 나를 판단하고 정의하는 타인을 만나는 경험을 심심치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이 정의하는 정체성이 곧 내가 될 순 없고, 그들이 나의 정체성을 대신 만들어줄 수도 없다.
라일리가 새로운 정체성을 꽃피우는 공간이 많은 선수들이 뒤엉키는 경기장이 아닌 홀로 앉아 시간을 보내는 페널티 룸이라는 것도, 차후에 라일리가 밸 선배의 오해(라일리의 고향을 착각함)를 정정한 것도 이러한 의도가 담긴 연출이 아닐까.
<인사이드 아웃 2>은 라일리의 성장기이자 기쁨이의 성장기이다. 라일리는 감정들이 골라준 예쁜 기억들을 통해서가 아닌 유년기부터 저장되어 온 수많은 기억의 산사태 속에서 스스로의 자아를 찾는다.
기쁨이는 라일리의 마음속을 모험하며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본부로 돌아와서 불안이와 새로운 감정들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는 리더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디어 폭풍을 만난 기쁨, 버럭, 까칠, 소심이는 타고 있던 판사 풍선을 놓고 폭풍에 휩쓸리는 장면이 있다. 기쁨이가 판단, 판결을 내리는 직업인 판사 풍선을 놓았다는 건 기쁨이가 위와 같은 깨달음(우리가 라일리를 판단할 순 없음)을 얻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종반부에선 불안이가 제어판에 다가가려 하자 그를 편안한 의자에 앉혀 진정시키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인사이드 아웃 2>은 부정적인 기억들을 더해 새롭게 완성된 라일리의 다양한 자아를 통해 꼭 한결같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 기쁜 기억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그 또한 자아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엔딩 크레딧에 떠오른 “우린 있는 그대로 너희를 사랑해.”라는 담백한 이 한마디에 울컥했다면 너무 주접인 걸까 싶은데, 아직 철들지 못한 어른은 픽사에서 또 한 번 위로를 받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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