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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l 03. 2024

뜨거운 햇살에 데인 후
뒤늦게 펼쳐보는 그늘막

영화 <아호, 나의 아들> 리뷰, 해석 / 허광한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아호, 나의 아들> 소개, 줄거리

- 하오의 상태와 사마광 이야기의 의미

- 아버지의 직업. 운전 학원 강사와 그늘의 의미

- 결말 해석

아호, 나의 아들 (陽光普照, A Sun, 2019)

뜨거운 햇살에 데인 후 뒤늦게 펼쳐보는 그늘막

개봉일 : 2020.01.24. (NETFLIX)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55분

감독 : 청몽홍

출연 : 이웬 첸, 가숙근, 허광한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아호, 나의 아들>은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운전 강사일을 하는 무뚝뚝한 아버지, 미용사로 일하며 가정을 보살피는 어머니, 어릴 때부터 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란 똑똑하고 밝은 첫째 하오, 형과 달리 사고만 치는 골칫거리 둘째 아호. 이 네 사람은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묶여있지만 교과서에 나올법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진 않다. 아빠, 엄마, 첫째, 둘째.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문제를 하나씩 안고 있지만 선뜻 털어놓지 못하고, 이들 사이엔 어색한 공기가 맴돈다.


어느 날, 안 그래도 삐걱이던 가족에게 커다란 위기가 찾아온다. 둘째 아호와 어울리던 친구 오뎅이 다른 친구의 손목을 잘라버린 것이다. 아호는 오뎅과 함께 연장을 들고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게 되고 가족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진다. 아버지는 피해자의 합의금 문제, 어머니는 아호가 쳐놓은 또 다른 사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전보다 더 어지러워진 집안에서 ‘진정한 한줄기 빛’이 되어버린 하오는 묵묵히 뜨거운 빛이 내리쬐는 길을 걷는다.

꽤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다. 중간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라 분위기를 반전시켜줄 정도는 아니다. 러닝타임도 길고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다 보니 피로를 느낄만한 지점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강한 신파 연출 없이 가족의 의미와 무게감을 담은 영화를 찾고 있다면, 허광한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찾고 있다면 <아호, 나의 아들>을 추천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뜨거운 햇빛을 피하지 못한 한 사람, 하오
사마광 이야기의 의미


영화의 초반부, 아호의 아버지는 누군가 가족에 대해 물으면 “아들 한명(하오)이있다.”고 답한다. 하오와 아호. 두 아들이 있음에도.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고소득을 내기 어려운 직업을 가진 부모, 사고만 치고 다니는 미래가 어두워 보이는 둘째. 하오는 이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가 의사가 된다면 어딜 가서 당당하게 의사 아들이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 형편도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하오는 부모의 기대를 등에 업고 학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는 하오의 학원에 찾아가 직접 수업료를 전해주고 회사에서 받은 다이어리를 건네주며 나름의 방식으로 하오에게 마음을 표현한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쌓여가는 아버지의 다이어리와 학원비는 하오에게 더 큰 부담이 되어 돌아온다.

하오는 결국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는 지쳐 보이고 학생들로 가득찬 교실은 매우 답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하오가 갈 수 있는 곳은 학원과 집뿐이다. 학원엔 대학 진학을 기대하는 강사들, 집엔 ‘의대에 갈 아들’을 기대하고 있는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다.


둘째 아들 아호가 음지, 어둠이라면 하오는 양지, 희망이다. 하오가 바란 길이 아니라 해도 어쨌든 지금 그는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밝은 길 한가운데 서있을 수밖에 없다. 하오는 아무리 뜨겁고 버거워도 아호처럼 음지로 들어가선 안된다. 그는 가족의 유일한 희망이고 자랑이니까.


오랜 시간 양지에 선채 말라가던 하오를 움직인 건 사마광 이야기였다. 아이들과 함께 놀던 사마광이 없어진 아이 한 명을 찾기 위해 큰 항아리를 부수고 그 안에 있는 어릴 적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 그는 이 이야기에서 자신을 봤을지도 모른다.

큰 항아리에 갇혀있던 진짜 나와 가족의 기대로 만들어진 항아리 밖의 나. 나는 창밖으로 뛰어내리기 전, 하오가 거울을 통해 ‘큰 항아리에 갇혀있던 진짜 나’를 봤을 거라 생각한다.


뜨겁게 내리쬐던 가족과 타인들의 기대를 견디지 못한 착한 아들은 햇빛이 사라진 깊은 밤, 죽음을 선택한다.

순간을 잡고 길을 정해라
아버지의 직업. 운전 학원 강사와 그늘이 의미하는 것


아버지는 두 아들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하오가 죽고 아버지는 이제 한 명을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젠 정말 하나만 남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길을 정한다.


아버지는 매일 정해진 시험 코스만 달리는 운전학원 강사다. 시험 코스에선 신호 위반, 과속은 당연히 금지고 정해진 규칙을 따라가야 한다. 아버지는 정해진 시험 코스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인생 또한 정직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일하고 묵묵히 아들을 챙기며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밝은 삶.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아호를 매우 싫어한다.


영화의 후반부,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가 갑자기 방향을 튼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 남은 아들 아호를 지키기 위해서다. 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아들을 괴롭히는 친구를 해친다. 아들이 더러워진 차를 싹싹 닦아내는 사이 아버지는 질척해진 땅을 밟으며 일을 마무리한다. 깨끗한 길만 걷던 아버지는 질척한 땅을 밟고, 거친 길만 걷던 아들은 오염물을 청소한다. 심리적 변화를 겪은 아버지와 아들은 이제껏 걸었던 길과 정반대의 길에 올라서서 앞으로 나아간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아들을 위해 누군가를 해치고,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아내와 아이를 거둔다. 그리고 아들 아호는 가족을 위해 새로운 삶의 방향을 잡는다. 이들은 조용히 서로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뜨거운 현실을 피할 시원한 그늘이자 어둠을 품은 그늘을.

좁은 운전면허 학원을 벗어나 탁 트인 언덕에서 아버지가 자신이 한 일을 고백하는 장면을 보며 내 숨도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고백과 함께 지금껏 분노 외엔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일부가 무너져내리는 순간, 실로 슬프고 복잡한 감정이 피어났다. 결국 잃고만 아들과 하나 남은 아들 사이에서, 밝은 햇빛과 어두운 그늘 사이에서 아버지가 찾은 최선의 길. 나는 그 길 위에 꽤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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