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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l 04. 2024

희망을 향한 청춘의 필사적 질주

영화 <탈주> 리뷰, 결말 해석 / 신작, 한국 액션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탈주> 소개, 줄거리. 장점과 아쉬운 점

- 이제훈, 구교환 배우의 전작 <사냥의 시간>, <반도>속 캐릭터와의 공통점

- 스크린 위 가로, 세로 연출

- 아문센 책의 의미. 아문센과 스콧

- 현상이 규남을 쫓는 이유와 보좌관 류대위

- 만년필의 의미

탈주 (Escape, 2024)

희망을 향한 청춘의 필사적 질주

개봉일 : 2024.07.03.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액션

러닝타임 : 94분

감독 : 이종필

출연 : 이제훈, 구교환, 홍사빈, 서현우, 이성욱, 송강, 이솜, 이호정, 신현지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탈주>의 개봉일이 공개된 후, 나의 7월 최고 기대작은 바로 이 영화였다. 2021년 청룡영화상에서 이제훈 배우가 구교환 배우에게 공식적인 러브콜을 날린 그날부터 그들이 한 작품에서 만나길 염원하며 정권지르기를 했던 팬이기에 <탈주>의 개봉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탈주>는 10년 만기 제대를 앞두고 탈주를 준비하고 있는 중사 규남과 그를 붙잡으려는 보위부 소좌 현상의 추격전을 그린다. 규남은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번쩍 눈을 뜬다. 그리고 창문을 넘고 식당의 환기구를 거쳐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를 성큼성큼 달려간다. 무성한 풀숲, 지뢰, 철조망 등 여러 위험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그는 바로 앞에 있는 위험이 아닌 내일에 대한 희망만을 바라보며 달린다.


규남은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거대한 운명을 가로지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리고 현상은 분노, 배신감, 측은함, 자괴감 등의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규남의 뒤를 쫓는다. 탈주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규남의 발은 멈추지 않고 일직선으로 쭉 뻗어나간다. 내일을 찾아 탈주하는 규남과 내일이 아닌 오늘만을 바라보며 사는 현상의 추격전은 치열하고 또 처연하다.

<탈주>는 장점과 아쉬운 점이 명확하게 나뉘는 영화였다.


장점으로는 <탈주>가 여름 극장가에 두말할 것 없이 잘 어울리는 영화라는 점이다. 시원하고 거침없고 직선적이기에 어려울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규남은 내일을 살아가고 싶다는 본능을 따라 달린다. 이 강한 본능은 두려움마저 이긴다. <탈주>는 이 본능을 실은 규남의 달리기를 통해 희망과 작은 해방감을 선물한다.

거기에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드는 박력 있는 음악과 단단한 음향, 리드미컬한 편집이 돋보이는 장면들, 배우의 연기, 전사와 후사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성까지. 볼거리도 정말 많다. 심지어 러닝타임도 부담스럽지 않으며 선정성 없고, 폭력성도 크지 않아 가족들과 함께 가볍게 보기에도 좋다. 아무튼 누구와 봐도 괜찮은,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재밌는 영화임은 틀림없다.

아쉬웠던 점으로는 이야기가 너무 직선적이라는 점, 규남의 탈출에 지뢰, 총알 같은 위험요소가 있었던 것처럼 이 이야기에도 몇 개의 불호 위험 요소가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맹목적으로 한 지점만 보고 달리는 이야기라 시원시원하긴 한데 그 달리기에만 너무 집중해 약간의 단조로움과 밋밋함이 느껴져 아쉬웠고, 가끔 몰입감을 떨어트리는 장면과 관계성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빠른 속도감과 텐션 덕분에 큰 문제로 느껴지진 않았다.

이제훈 배우는 "영화를 보고 남겨진 감정과 생각들이 계속해서 떠오를 때. 그때, 이게 좋은 영화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계속 규남과 현상이 떠오른다. 아쉬운 점이야 어찌 됐든, 지금의 나에게 <탈주>는 좋은 영화다.

<사냥의 시간>속 준석, <반도>의 서 대위의 연장선


군인 캐릭터와 추격전이라는 <탈주>의 컨셉을 보고 이제훈, 구교환 배우의 전작 <사냥의 시간>과 <반도>가 떠올랐다. 커다란 위험, 절망으로부터 도망치며 희망을 찾던 <사냥의 시간>속 준석(이제훈)과 <탈주>의 규남(이제훈), 절망 앞에서 포기하거나 변해버린 <반도>의 서 대위(구교환)와 <탈주>의 현상(구교환)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규남과 현상이 준석과 서 대위의 연장선에 있는 캐릭터처럼 느껴져 재밌기도 했다.


이제훈, 구교환 배우의 팬이거나 위 영화를 모두 본 관객이라면 은근히 닮아있는 캐릭터 간의 비주얼(이제훈 배우의 소년 같은 짧은 머리와 구교환 배우의 정장/제복 패션 등..)과 각각의 캐릭터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하며 보는 것도 새로운 관람 포인트가 될 것 같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막고 있는 것은 가로지르고 위를 향해 총구를 겨누다.
스크린 위 가로, 세로 연출


북한 비무장지대 민경부대. 붉은색 조명 아래 규남이 눈을 뜬다. 그는 매일 밤 따뜻한 노란빛으로 밝혀진 남쪽을 향해 달린다. 사체와 지뢰, 무성한 풀과 어둠. 수많은 위험이 있지만 그의 발은 멈추지 않는다.


징병되어 군대에 온 지 10년. 규남은 만기 제대를 앞두고 있다. 군인의 신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규남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정받는 자유일 것이다. 후임의 말에 따르면 규남의 신분은 상, 중, 하층도 아닌 하층 중에서도 가장 밑에 있는 똥간에 해당한다고 한다.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해도 규남은 국가에서 정해주는 대로 광부 또는 농부가 되어야 할 운명이다.

규남은 누군가에게 정의된 채로 누군가 정해준 길 위만 달려온 사람이다. 동혁의 돌발 행동 이후 규남에겐 탈주병이란 낙인이 찍힌다. 현상은 그를 노력 영웅으로 둔갑시킨다. 탈주병이 되어 온몸이 피범벅이 될 때, 물을 맞으며 몸의 피를 씻고 영웅이 되어 새 군복을 입을 때까지 규남은 그 어떤 말도 반항도 하지 못한다.


현상은 새 단장한 규남을 자신의 차에 태워 운전하게 만든다. 두 사람이 달리고 있는 도로 옆엔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라는 커다란 사인 표지판이 세워져있다. 규남은 인민을 위하는 국가가 만든 도로를 따라 정직하게 달리고 있다. 규남은 그 길 위를 달리면서도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냥 달리라고 하니, 그 길로 가라고 하니 갈 뿐이다. 평생을 그렇게 국가에 의해 정해진 길만 달려온 규남의 탈주는 이 커다란 사인 표지판을 정면으로 부수며 시작된다.

극 중에서 규남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것들을 척척 가로지르며 희망과 의지를 쌓아간다. 규남이 처음 차를 훔쳐 달아나는 장면을 보면 그는 스크린 기준 세로로 달려나가고 있고, 가로로 달려오던 현풍리 경무부 차량이 규남의 앞을 막는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극복해낸다. 그리고 규남이 본격적으로 탈주를 시작한 이후, 규남은 계속해서 가로 방향으로 달려가고 세로 방향에선 그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스크린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세로로 길게 이어져있는 철조망과 지뢰 구역을 표시한 줄, 세로 방향에서 떨어지는 조명. 규남은 이것들을 넘어가거나 깨부수며 남쪽을 향해 달려간다. 특히 규남이 동혁의 죽음 직후 위(스크린의 세로 방향)에서 떨어지는 조명을 하나하나 직접 사격하며 나아가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탐험가 아문센과 함께 남극점으로 간 스콧
남쪽으로 달려가는 규남과 현상. 두 사람 사이의 간극


규남과 현상이 피아노 형과 그의 동생 규남이었던 시절, 현상은 규남에게 탐험가 아문센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한다. 아문센은 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한 탐험가인데, 규남은 그를 보며 탐험가라는 꿈을 키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탈주를 결심한다.


아문센의 남극점 모험기엔 아문센과 정복 대결을 펼쳤던 해군 대령 스콧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문센은 1911년 10월 20일 노르웨이에서, 스콧은 1911년 10월 24일 영국에서 각자 남극을 향해 출발한다. 아문센은 투박한 털 가죽 옷을 입고 남극점을 향해 전진한다. 그는 틈틈이 땅에 저장소를 만들며 짐을 줄여나갔고 남극점을 정복하는데 성공한다. 아문센보다 늦게 출발한 스콧은 멋진 모직 옷을 입고 여러 명의 과학자와 무거운 짐을 지고 남극점을 향해 가다가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규남과 현상은 아문센, 스콧과 닮아있다. 투박한 털 가죽 옷과 깔끔한 모직코트로 나뉘었던 아문센과 스콧의 옷차림처럼 규남과 현상의 옷차림도 투박한 군복과 깔끔한 제복으로 나뉜다.


아문센이 스콧보다 먼저 남극점을 향한 탐험을 시작한 것처럼 규남은 현상보다 빨리 남쪽을 향해 달린다. 규남이 경무원과 몸싸움을 벌이다 도로 위 사인을 들이박았던 때, 현상은 군인들을 이끌고 규남을 잡으러 온다. 규남은 남쪽으로 달려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데 현상은 규남과 반대 방향(북)을 보며 무심하게 총소리가 시끄럽다고 중얼거리고 있다. 그 후로도 현상은 규남을 직접 추격하지 않고 추격대를 보내 멀리서 지시만 내린다. 그러다 규남이 철조망을 넘어간 이후, 직접 규남의 뒤를 쫓으며 늦게나마 그와 함께 남쪽으로 달리게 된다.


하지만 짐이 적어 가볍게 앞으로 나아갔던 아문센처럼 가진 것 없었던 규남은 망설임 없이 남쪽을 향해 나아가고 집, 가족(아내와 아이), 사회적 지위 등 묵직한 짐을 가진 현상은 스콧처럼 남쪽에 도착하지 못한다.

현상이 규남을 쫓는 이유
현상의 현재를 바꾼 규남과 현상의 그림자, 류대위


현재 규남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지위, 가족, 돈.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규남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남쪽으로 달린다. 그가 가진 건 과거에 아버지와 현상이 심어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뿐이다.

현상은 가진 게 많다. 직위, 재능, 가족. 돈, 안정적인 미래까지. 대신 현상에겐 미래가 없다. 현상 또한 규남처럼 정해진 길을 따라 달려온 사람이다. 그는 피아노와 사랑.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마도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또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군인이 됐을 것이다.


현상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의 선택을 후회하는듯하지만 규남처럼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가진 게 많아 포기할 게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상은 주어진 것을 수용하고 보위부 소좌로서 잘 살아가는 현재를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믿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규남이 갑자기 주어진 운명을 부정하며 탈주를 하는 순간 현상의 현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현상은 규남을 막으려 한다. 자신의 보좌관인 류대위에게 말했던 것처럼 현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현상은 산에서 규남과 동혁을 잡기 위해 무전으로 작전 지시를 내린다. 현상의 보좌관 류대위는 열심히 규남을 쫓지만 무장 단체의 총소리에 속아 규남을 놓치고 만다. 분노에 찬 현상은 몽둥이로 류대위를 마구 팬다. 그리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너는 군인이 맞지 않으니 하고 싶은 걸 하라"라고 말한다. 류대위는 당연히 아니라 답하고 현상은 "현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라."라고 명령한다.


이 장면부터 지뢰를 밟아 쓰러질 때까지. 류대위는 현상의 그림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현상의 옆을 계속 따라다니는 실체 있는 그림자이자 그의 과거를 뜻하는 실체 없는 그림자다. 류대위는 꼭 잡아야 하는 탈주병을 놓쳤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한 군인을 하겠다는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현상을 따라 지뢰밭을 밟지만 제대로 걸음을 떼보기도 전에 지뢰에 한쪽 다리를 잃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현상은 꼭 잡아야 하는 사랑(피아노와 선우민)을 놓쳤다. 그리고 그것을 포기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군인으로서 한 걸음을 내딛지만 그는 피아노와 사랑, 자신의 일부를 잃게 된다. (현상은 사단 행사에서 피아노를 쳐달란 사람들에게 피아노 치는 법을 '모두 잃어버렸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후 지뢰를 밟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류대위처럼 현상은 자신의 일부를 잃은 그 자리, 보위부 소좌로 일하고 있는 현재에 그대로 멈춰 서게 된다.


류대위를 향했던 폭발적인 분노와 증명하라는 명령은 현상이 자기 자신에게 쏟아내고 싶었던 것들일지도 모른다.

피아노 형과 보위부 소좌 사이에서


현상은 정해진 길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그는 때때로 규남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규남의 탈주를 보며 분노와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보위부 소좌 현상은 규남 앞에서 잠시 피아노 형이었던 시절로 돌아간다. 현상은 규남에게 형이라 불리고 싶어하고 반갑게 규남의 이름을 부르며 과거 추억을 이야기하고 규남의 입에 알사탕을 직접 넣어주기까지 한다. (차 바닥에 떨어트린 사탕이긴 하지만 주기 전에 호호 먼지를 불어주는 스윗한 행동도 한다..)

규남에게 희망을 선물했던 피아노 형의 마음과 피아노와 사랑을 포기했던 과거의 나의 마음. 탈주병을 잡아야 하는 현재 소좌 리현상의 마음, 즉 과거를 포기한 슬픔과 분노, 후회, 미래를 찾아 달리는 규남에 대한 부러움과 애정 등이 뒤섞이며 현상을 흔든다.


현상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규남을 뒤쫓으면서도 망설인다. 그는 규남을 충분히 잡을 수 있음에도 총구를 겨눌 뿐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규남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맞추지 않았고, 동혁이 죽은 후 규남이 있는 곳에 연속적으로 총을 쏜 장면에선 탈주병에 대한 분노와 내가 정말 규남을 죽인 걸까? 싶은 두려운 마음이 섞인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리고 남방 한계선(터널 쪽)을 향해 언덕을 내려가는 규남을 쫓을 땐 현상이 규남보다 높은 곳에 있었음에도 맞추기 쉬운 상체가 아닌 다리를 먼저, 그 다음은 심장과 먼 오른쪽 어깨를 맞춘다.


현상은 군사분계선에 근처에 도착했을 때 "형도 하고 싶은 거에 도전해 보시라요."라는 규남의 말에 처음으로 반쯤 돌아버리는 상태가 되기도 하는데, 사실 현상은 남쪽으로 가도 원하던걸 전부 이룰 수 없고(선우민이 북쪽에 있으니까) 북쪽에 남아도 이룰 수 없는 상태이기에 규남의 말에 크게 자극을 받은 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론 이 장면을 제외하고는 현상이 규남을 정말 해치려 한다기보단 그가 계속 갈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옳은 선택을 한 현상과 그를 증명한 규남
현상이 되찾아준 만년필의 의미


현상은 선 앞에서 쓰러진 규남을 보고 갈등한다. 소좌 리현상으로서 옳은 선택은 탈주병을 죽이거나 끌고 가는 것이다. 규남에게 희망을 심어줬던 피아노 형으로서 옳은 선택은 그를 살려주고 남쪽으로 가 행복하길 빌어주는 것이다. 현상은 피아노 형과 소좌 리현상의 사이에서 고민하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규남을 놓아주는 선택을 한다. 현상은 자신이 정말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북쪽으로 돌아간다. 그는 그저 자신이 선물한 책 속 규남의 행복을 빌어주는 짧은 편지를 통해 아마도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 같다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살아남은 규남은 현상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음을 그의 새로운 삶을 통해 증명한다. 그는 어릴 적 꿈꿨던 탐험가처럼 여행 상품을 계획하는 사업을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


규남은 현상이 되찾아준 아버지의 유품인 만년필로 글을 쓴다. 만년필은 규남이 지도를 그릴 때, 통행증에 필요한 도장을 훔칠 때, 무기 대용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주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규남이 행복하길 바랐던 아버지, 어머니와 현상의 마음, 그들이 규남에게 심어준 희망을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동혁의 돌발행동으로 규남이 잡혀갔을 때, 탈주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만년필은 증거품으로 압수된다. 처벌위원회에 참석한 현상은 규남을 영웅으로 둔갑시켜 실적을 올리자며 지휘관들을 회유하고 자연스레 증거품인 만년필에 손을 뻗는다. 현상은 이 만년필이 규남의 아버지가 남긴 유품임을 알고 그것을 빼내 규남의 가슴 근처 포켓에 직접 넣어준다. “간수 잘 하라”라고 말하면서. (이어 허튼 생각 말고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희망을 간수 잘 하라는 말을 더 먼저 한 걸로 보아 현상의 진심은 규남이 탈출하길 바라는 쪽에 가까웠던 게 아닐까.)

이어 현상은 규남을 영웅, 사단장 직속 보좌의 신분으로 만들어 준다. 그 덕분에 규남은 다시 탈주를 시도할 기회를 얻고, 그의 계획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현상은 규남이 어릴 때 아문센 책으로 한번, 빼앗긴 만년필을 되찾아주며 한번. 그렇게 총 두 번 규남의 마음에 희망을 심어준다.


1년이 지난 지금, 규남은 어릴 적 꿈꿨던 탐험가처럼 여행 사업 창업을 준비하며 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희망을 찾은 그는 북에 있을 때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그 라디오에 만년필로 사연을 써서 보낸다. 그때 자신이 들었던 것처럼 새로운 시작과 희망에 대한 내용이 담긴 사연을 적어서. 규남이 어머니와 현상의 '행복하라'는 편지에 힘을 얻고 달려간 것처럼 규남의 편지 사연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앞으로 달려갈 힘을 줄 것이다.


살아남은 규남은 현상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음을 그의 새로운 삶을 통해 증명한다. 현상은 규남을 따라 끝까지 남쪽으로 달리진 못했지만 그가 규남에게 남긴 마음과 희망은 여전히 규남과 함께하고 있다.


영화는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희망을 향해 달려가는 규남의 살아있는 눈빛과 현상이 남긴 흐릿한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그들의 세상을 그려보고 있다. 특히 "그저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릴 거야."라고 말하며 정말 미래만 보고 남쪽으로 달려간 규남과 다르게 계속 뒤돌아보며 결국 북쪽에 묶여버린 현상의 미래와 과거를 계속 상상하게 된다. 아무튼 규남도 현상도 이제는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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